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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난과 맞장 뜬 목사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허기복/미디어윌/[뉴스앤조이 제공]
밥상공동체 대표 허기복(50) 목사는 가난과 원수진 사람이다.
아버지는 놀음과 술에 빠지고, 산업 전선에 뛰어든 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도 신발을 수십 번씩 기워 신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신발을 들고 다녔다. 오래 신어야 하니까. 길에 버린 빵도 주워 먹었다. 사이다가 먹고 싶으면 마을을 돌며 사이다병을 모았다. 병에 남은 음료수 맛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허기'가 무슨 '복'이라고, 그는 가난을 이름에 달고다닌다. 어릴 적 별명도 '허기져' 혹은 '허기진'이었다. 어린 시절 그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가난에 지지 않겠다는 '깡'과 어머니였다.
허 목사는 지금도 허기와 싸운다. 서울에서 교세를 제법 키운 교회를 훌쩍 떠났다. '여건이 안 돼서 목사를 못 모시는 교회가 있다면 저를 불러주십시오'라는 공고를 몇 군데 냈더니 원주의 어느 교회가 그를 불렀다. 1998년엔 아예 교회라는 울타리를 떠났다. 가난한 이들과 밥상을 나누기 위해서다. 가난한 이들이 희망을 갖고 사는 세상, 가난한 이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게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허기복 지음/ 미디어윌 펴냄/ 207쪽/ 9800원)은 허 목사가 밥상공동체를 시작하면서 겪은 일에 대한 기록이다. 허 목사는 교회 돈과 인력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무작정 교회를 나와 밥상공동체를 시작했다. 곧바로 노숙자를 돕겠다고 하다가 노숙자가 될 위기에 놓였다. 잠시 처가 신세를 지고, 할 수 없이 전직 간호사였던 아내가 병원에 취직했다.
혁명을 꿈꾸는 목사
그런데 그에게 파랑새가 기적을 물고 찾아왔다. 학교에 도시락을 납품하는 회사의 이사 김태균 씨가 남는 도시락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내 것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니, 파랑새가 만나를 물고왔다고 기뻐했다. 곧바로 원주천 쌍다리에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방학이 오자 '쌀 한 되 모으기 운동'을 벌여 30가마를 모았다. 추운 겨울이 올 때는 따뜻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1000원의 사랑을 모으는 운동인 '천사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 2시에도 초인종을 누르면서도, 그는 당당했다. 아니 당당해야만 했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그 늦은 밤에도 문을 열어주었을까?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남편일 줄 알았다가 자초지종을 듣고는 후원인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덕분에 보증금 2000만 원을 마련해 밥상공동체 전셋집을 마련했다. 2003년에는 전세가 껑충 뛰어도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돈을 있을 터였고, 필요한 사람이 그 돈을 가져다 쓸 수 있는 방법 또한 있을 것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는 세상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자기 것인양 착각하는 돈키호테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곧 잘 호응했다. 진심을 통하는 법이다.
얼마 뒤 후원금과 몇 푼 되지 않는 사재를 털어 땅을 사고, 가건물을 세웠다. 밥을 먹으러 오는 노숙자들이 건설 현장에서 합판과 보온 덮개를 얻어왔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스티로폼을 날랐다. 그러나 2004년 창립 6주년 행사를 마친 이틀 뒤 전기 누전으로 불이 났다. 그래서 허 목사는 절망했냐고? 원래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는데,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였다. "언제나 나를 지탱하는 힘은 '없음'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던가."
이번에 등장한 파랑새는 정부에서 노인, 네티즌까지 다양했다. 강원도지사가 찾아와 다시는 불이 나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으라며 5000만 원을 지원했다. 그리고 '사랑의 개미군단. 1만 원, 1만 명 운동'을 벌였다. 관공서·병원·학교·회사 등에서 후원인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할머니가 3만 원을 주고 가고, 고물 수거하는 할아버지도 힘을 보탰다. 초등학생들이 힘내라며 30만 원이라는 거금을 줬을 때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한 포털 사이트가 공동 캠페인을 벌인 덕도 톡톡히 봤다. 그래서 지금의 밥상공동체 깔끔한 2층 건물을 세웠다.
만나를 물고 온 파랑새들
허 목사는 끊임없이 일을 만든다. 밥상공동체를 문을 열더니, 2002년 말에는 연탄은행을 개설했다. "자식이 연탄 한 장보다 못해"라는 어느 할아버지의 말이 가슴에 와 박힌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언론을 타면서 연탄은행은 전국으로 퍼져, 문을 연 곳이 16개 지점이 이르렀다.
밥을 먹으로 오는 이들에게 일자리는 찾아주는 것도 그의 일이다. 그는 노숙자를 보면서 처음에는 '얼마나 삶이 고되고 힘들면 자존심을 버리고 밥을 먹으로 온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보기로 했다. '무료 급식이라고 먹으려고 하는 삶의 의지는 얼마나 멋진 것인가' 하는 식으로.
그들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기 위해 일이 필요했다. 일자리 찾는 방식은 늘 그렇듯이 무작정 돌진하는 것이다. 건설 현장 소장에게 찾아가 담판을 짓듯이 일자리를 달라고 요청했다. 동네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공터에 '구두대학'(구둣방)을 열고, '로드마켓'(노점상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니까 그렇게 지었다)을 창업하는 데 지원했다. 사무실에는 노인일터센터를 만들어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감을 가져왔다. 또 그는 오전에 밥을 짓고, 오후에는 노숙자들과 고물과 파지를 수거하러 다녔다. 보물상(지칫 고물처럼 버려질 수 있었던 인생을 보물처럼 가꿔가는 곳이다)까지 차렸다. 그렇게 해서 많이 벌면 하루에 1만 원. 그 작은 돈을 모아 방을 마련해서 쉼터를 퇴소하는 사람도 생겼다. 물론 술로 탕진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물 인생을 보물로 바꾸는 사람
그는 밥상공동체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지친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고물상 대신 보물상, 구둣방 대신 구두대학을 쓰듯이. 그가 원주에 제일가는 갑부에게 1000원 후원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하자, 이렇게 말한다. "풍요로운 이 시대에 가난은 자기를 성찰하고 이웃을 생각하게 하며, 절제의 미덕을 갖게 한다. 가난은 자유를 향한 날개다.… 부자는 빚진 자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그가 만난 파랑새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이야기가 실렸다. 보물상 주인 이도열 씨, 쌀을 시주한 보살, 구두대학 총장 이 아무개 씨, 희망의 포장마차 사장 김세진 씨, 나눔의 천사 정애리 문근영 씨, 그리고 봉사 중독증에 빠진 사람들….
그는 이들을 소개하며, "나는 교회 대신 사람과 함께하는 목회자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목사가 목회는 안 하고 고물 줍고, 밥이나 나눠 주냐고 묻는다. 허 목사는 "가난한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에 버팀목이 되고 싶다"고, "삶이 곧 성전이고, 만나는 사람이 곧 성서이다"고 대답한다.
뉴스앤조이 제공
주재일 기자
밥상공동체 대표 허기복(50) 목사는 가난과 원수진 사람이다.
아버지는 놀음과 술에 빠지고, 산업 전선에 뛰어든 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도 신발을 수십 번씩 기워 신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신발을 들고 다녔다. 오래 신어야 하니까. 길에 버린 빵도 주워 먹었다. 사이다가 먹고 싶으면 마을을 돌며 사이다병을 모았다. 병에 남은 음료수 맛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허기'가 무슨 '복'이라고, 그는 가난을 이름에 달고다닌다. 어릴 적 별명도 '허기져' 혹은 '허기진'이었다. 어린 시절 그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가난에 지지 않겠다는 '깡'과 어머니였다.
허 목사는 지금도 허기와 싸운다. 서울에서 교세를 제법 키운 교회를 훌쩍 떠났다. '여건이 안 돼서 목사를 못 모시는 교회가 있다면 저를 불러주십시오'라는 공고를 몇 군데 냈더니 원주의 어느 교회가 그를 불렀다. 1998년엔 아예 교회라는 울타리를 떠났다. 가난한 이들과 밥상을 나누기 위해서다. 가난한 이들이 희망을 갖고 사는 세상, 가난한 이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게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허기복 지음/ 미디어윌 펴냄/ 207쪽/ 9800원)은 허 목사가 밥상공동체를 시작하면서 겪은 일에 대한 기록이다. 허 목사는 교회 돈과 인력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무작정 교회를 나와 밥상공동체를 시작했다. 곧바로 노숙자를 돕겠다고 하다가 노숙자가 될 위기에 놓였다. 잠시 처가 신세를 지고, 할 수 없이 전직 간호사였던 아내가 병원에 취직했다.
혁명을 꿈꾸는 목사
그런데 그에게 파랑새가 기적을 물고 찾아왔다. 학교에 도시락을 납품하는 회사의 이사 김태균 씨가 남는 도시락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내 것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니, 파랑새가 만나를 물고왔다고 기뻐했다. 곧바로 원주천 쌍다리에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방학이 오자 '쌀 한 되 모으기 운동'을 벌여 30가마를 모았다. 추운 겨울이 올 때는 따뜻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1000원의 사랑을 모으는 운동인 '천사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 2시에도 초인종을 누르면서도, 그는 당당했다. 아니 당당해야만 했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그 늦은 밤에도 문을 열어주었을까?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남편일 줄 알았다가 자초지종을 듣고는 후원인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덕분에 보증금 2000만 원을 마련해 밥상공동체 전셋집을 마련했다. 2003년에는 전세가 껑충 뛰어도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돈을 있을 터였고, 필요한 사람이 그 돈을 가져다 쓸 수 있는 방법 또한 있을 것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는 세상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자기 것인양 착각하는 돈키호테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곧 잘 호응했다. 진심을 통하는 법이다.
얼마 뒤 후원금과 몇 푼 되지 않는 사재를 털어 땅을 사고, 가건물을 세웠다. 밥을 먹으러 오는 노숙자들이 건설 현장에서 합판과 보온 덮개를 얻어왔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스티로폼을 날랐다. 그러나 2004년 창립 6주년 행사를 마친 이틀 뒤 전기 누전으로 불이 났다. 그래서 허 목사는 절망했냐고? 원래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는데,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였다. "언제나 나를 지탱하는 힘은 '없음'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던가."
이번에 등장한 파랑새는 정부에서 노인, 네티즌까지 다양했다. 강원도지사가 찾아와 다시는 불이 나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으라며 5000만 원을 지원했다. 그리고 '사랑의 개미군단. 1만 원, 1만 명 운동'을 벌였다. 관공서·병원·학교·회사 등에서 후원인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할머니가 3만 원을 주고 가고, 고물 수거하는 할아버지도 힘을 보탰다. 초등학생들이 힘내라며 30만 원이라는 거금을 줬을 때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한 포털 사이트가 공동 캠페인을 벌인 덕도 톡톡히 봤다. 그래서 지금의 밥상공동체 깔끔한 2층 건물을 세웠다.
만나를 물고 온 파랑새들
허 목사는 끊임없이 일을 만든다. 밥상공동체를 문을 열더니, 2002년 말에는 연탄은행을 개설했다. "자식이 연탄 한 장보다 못해"라는 어느 할아버지의 말이 가슴에 와 박힌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언론을 타면서 연탄은행은 전국으로 퍼져, 문을 연 곳이 16개 지점이 이르렀다.
밥을 먹으로 오는 이들에게 일자리는 찾아주는 것도 그의 일이다. 그는 노숙자를 보면서 처음에는 '얼마나 삶이 고되고 힘들면 자존심을 버리고 밥을 먹으로 온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보기로 했다. '무료 급식이라고 먹으려고 하는 삶의 의지는 얼마나 멋진 것인가' 하는 식으로.
그들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기 위해 일이 필요했다. 일자리 찾는 방식은 늘 그렇듯이 무작정 돌진하는 것이다. 건설 현장 소장에게 찾아가 담판을 짓듯이 일자리를 달라고 요청했다. 동네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공터에 '구두대학'(구둣방)을 열고, '로드마켓'(노점상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니까 그렇게 지었다)을 창업하는 데 지원했다. 사무실에는 노인일터센터를 만들어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감을 가져왔다. 또 그는 오전에 밥을 짓고, 오후에는 노숙자들과 고물과 파지를 수거하러 다녔다. 보물상(지칫 고물처럼 버려질 수 있었던 인생을 보물처럼 가꿔가는 곳이다)까지 차렸다. 그렇게 해서 많이 벌면 하루에 1만 원. 그 작은 돈을 모아 방을 마련해서 쉼터를 퇴소하는 사람도 생겼다. 물론 술로 탕진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물 인생을 보물로 바꾸는 사람
그는 밥상공동체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지친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고물상 대신 보물상, 구둣방 대신 구두대학을 쓰듯이. 그가 원주에 제일가는 갑부에게 1000원 후원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하자, 이렇게 말한다. "풍요로운 이 시대에 가난은 자기를 성찰하고 이웃을 생각하게 하며, 절제의 미덕을 갖게 한다. 가난은 자유를 향한 날개다.… 부자는 빚진 자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그가 만난 파랑새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이야기가 실렸다. 보물상 주인 이도열 씨, 쌀을 시주한 보살, 구두대학 총장 이 아무개 씨, 희망의 포장마차 사장 김세진 씨, 나눔의 천사 정애리 문근영 씨, 그리고 봉사 중독증에 빠진 사람들….
그는 이들을 소개하며, "나는 교회 대신 사람과 함께하는 목회자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목사가 목회는 안 하고 고물 줍고, 밥이나 나눠 주냐고 묻는다. 허 목사는 "가난한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에 버팀목이 되고 싶다"고, "삶이 곧 성전이고, 만나는 사람이 곧 성서이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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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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