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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나의 노년의 기록들/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종철/지훈/[강도헌]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이룬 과학적 업적은 전 세계 교과서에 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아인슈타인에 관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 정작 아인슈타인이 쓴 글을 찾기는 쉽지 않은 가운데 본서는 그의 노년에 생각들을 기록한 글들이라 가슴을 두근거리며 책장을 폈다.
이 글들은 짐작컨대 노년에 기고하였던 기고문들을 모아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라 느껴진다. 아주 짧은 글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기고되지 않았던 수필도 포함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인간의 뇌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사람, 천재적인 머리를 소유했던 사람, 아인슈타인 노년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생각들을 살펴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념과 믿음, 과학, 공적인 일들, 과학과 인생, 인물들, 나의 민족’으로 총 6장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소논문에 해당한 글과 에세이들은 그 시대의 주요 이슈와 갈등의 요소들이 그대로 녹아져 있으며,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경제와 정치에 대한 견해들은 인류를 향한 그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여러 곳에서 인간은 한계가 있으며,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 과학만능주의 한 복판에서 그 과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의 발언은 내심 충격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과학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는 넓은 시야를 가졌던 지식인이었음을 입증하는 바이다. 과학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하며, 과학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분명한 그의 소신은 과학을 단순히 돈벌이의 도구나, 개인적 영달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보다 나은 다음 세대를 위하여 헌신한 한 사람의 과학자임을 발견하게 된다.
본서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내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이다. 그가 말년에 국제 정치와 경제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그는 이 무서운 살인 병기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 그의 마지막 삶을 소진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는 교육과 국제정치, 경제 사상들에 다 동의를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 당시 상황과 정세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판단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과학자로서의 책임감에 모두 그를 위대한 과학자라고 부르는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하는 일에는 완벽한 것이 없다. 그래서 인간은 발전하고 성장하는 존재이며, 계속 성장 해야만 하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본서 또한 그것을 피해 갈 수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과학과 인생’이라는 주제의 사용이다. 본 장의 내용을 차라리 과학쪽에 붙이고 5장으로 편집을 했었더라면 큰 실수는 피해 갔으리라 생각되지만 지식인들의 구미를 당기는 거창한 ‘과학과 인생’이라는 주제에 과학만 있고 인생은 빼놓았다는 것은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저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자 철학자로 칭송 받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Ulm)에서 유대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상대성 이론은 뉴튼 물리학을 넘어서는 과학적 업적으로 평가받았으며 1921년 이론물리학 분야에서의 공헌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아인슈타인은 타고난 자유주의자로서 권위와 규율을 거부하고 특히 징병제와 전쟁을 극도로 혐오했다. 제1차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반유대주의 운동이 확산되자 아인슈타인은 열렬한 시온주의 지지자가 되었으며 히틀러가 집권하자 1933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초청을 받아들여 독일을 떠나 프린스턴에 정착했다.
2차세계대전이 임박한 1939년 8월 아인슈타인은 동료 과학자들의 요청에 따라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원자폭탄 개발을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이 편지가 미국이 원자탄 개발에 착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원자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원자탄이 개발되는지도 몰랐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그는 전쟁의 영원한 종식과 원자력의 국제적 통제를 위해서는 세계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일에 몰두했다. 1952년 이스라엘의 대통령직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이룬 과학적 업적은 전 세계 교과서에 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아인슈타인에 관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 정작 아인슈타인이 쓴 글을 찾기는 쉽지 않은 가운데 본서는 그의 노년에 생각들을 기록한 글들이라 가슴을 두근거리며 책장을 폈다.
이 글들은 짐작컨대 노년에 기고하였던 기고문들을 모아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라 느껴진다. 아주 짧은 글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기고되지 않았던 수필도 포함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인간의 뇌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사람, 천재적인 머리를 소유했던 사람, 아인슈타인 노년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생각들을 살펴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념과 믿음, 과학, 공적인 일들, 과학과 인생, 인물들, 나의 민족’으로 총 6장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소논문에 해당한 글과 에세이들은 그 시대의 주요 이슈와 갈등의 요소들이 그대로 녹아져 있으며,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경제와 정치에 대한 견해들은 인류를 향한 그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여러 곳에서 인간은 한계가 있으며,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 과학만능주의 한 복판에서 그 과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의 발언은 내심 충격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과학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는 넓은 시야를 가졌던 지식인이었음을 입증하는 바이다. 과학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하며, 과학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분명한 그의 소신은 과학을 단순히 돈벌이의 도구나, 개인적 영달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보다 나은 다음 세대를 위하여 헌신한 한 사람의 과학자임을 발견하게 된다.
본서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내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이다. 그가 말년에 국제 정치와 경제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그는 이 무서운 살인 병기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 그의 마지막 삶을 소진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는 교육과 국제정치, 경제 사상들에 다 동의를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 당시 상황과 정세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판단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과학자로서의 책임감에 모두 그를 위대한 과학자라고 부르는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하는 일에는 완벽한 것이 없다. 그래서 인간은 발전하고 성장하는 존재이며, 계속 성장 해야만 하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본서 또한 그것을 피해 갈 수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과학과 인생’이라는 주제의 사용이다. 본 장의 내용을 차라리 과학쪽에 붙이고 5장으로 편집을 했었더라면 큰 실수는 피해 갔으리라 생각되지만 지식인들의 구미를 당기는 거창한 ‘과학과 인생’이라는 주제에 과학만 있고 인생은 빼놓았다는 것은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저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자 철학자로 칭송 받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Ulm)에서 유대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상대성 이론은 뉴튼 물리학을 넘어서는 과학적 업적으로 평가받았으며 1921년 이론물리학 분야에서의 공헌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아인슈타인은 타고난 자유주의자로서 권위와 규율을 거부하고 특히 징병제와 전쟁을 극도로 혐오했다. 제1차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반유대주의 운동이 확산되자 아인슈타인은 열렬한 시온주의 지지자가 되었으며 히틀러가 집권하자 1933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초청을 받아들여 독일을 떠나 프린스턴에 정착했다.
2차세계대전이 임박한 1939년 8월 아인슈타인은 동료 과학자들의 요청에 따라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원자폭탄 개발을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이 편지가 미국이 원자탄 개발에 착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원자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원자탄이 개발되는지도 몰랐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그는 전쟁의 영원한 종식과 원자력의 국제적 통제를 위해서는 세계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일에 몰두했다. 1952년 이스라엘의 대통령직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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