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세기 기독교 탐구, 우리의 신학자가 한 걸음을
1세기 기독교에 대한 연구 도서는 대부분 해외 신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 나라 신학자 박영호 목사가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IVP, 2021년)라는 제목으로 1세기 교회에 대한 연구물을 출판하였다. 기독교 근원에 대한 연구가 우리 학자의 손에서 출판되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박영호 목사는 시카고 대학에서 초기 기독교 문서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런데 교수 연구자가 아닌 목사로 활동하는 것도 특이한 모습이다. 목회 활동과 함께 매우 전문적인 학술 업적을 발간한 것은 도전적인 모습일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를 접하면서, 우리나라 신학교에서도 초기 기독교 문서를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하며, 우리나라 신학교 연구자들이 방대한 연구 업적이 발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학문은 가장 오랜 인내를 가져야 할 분야이다. 학문을 산업이라고 한다면 한 세대에 이익을 얻을 수 없는 분야이지만, 다음 세대에 그 다음 세대에는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분야이다. 그래서 한 생애를 위한다면 절대 투자할 수 없는 분야이다. 서양 학계가 고고학, 언어학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사회로서 자기 근원에 대한 탐구가 사회적으로 충분하게 동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근원은 고조선으로 성경 문화와 전혀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기독교 근원인 1세기 고대 근동 사회를 탐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기독교를 한국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1세기 기독교 이해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역사 이해가 없는 현재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한국 교회가 튼튼하다는 것은 1세기 기독교, 기초 역사와 학문 업적이 든든하게 있어야 한다. 서양 학자의 글을 번역하여 정보를 확립하는 것과 함께, 우리 신학자들의 연구물이 축적되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1세기 문서로 1세기 고대근동의 상황을 탐구할 수 있다. 그 탐구는 문서 혹은 고고 유물에 근거하기 때문에 제한적이지만 그 과정을 수행해야 한다. 박 목사는 매우 전문적인 학자이지만 목회자로서 연구하였기 때문에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집필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에서 가장 전문 분야이기 때문이다. 꾸준하게 탐구하고 접하면 우리들도 1세기 기독교에 대한 방대한 학문 저술을 발간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한 학생이 장학생에서 탈락되는 문화 차이를 표현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이름에 캐슬(castle)이 있는 것이고, 캐슬에 사는 사람에게 장학금을 줄 수 없다고 결정한 해프닝이다. 동 시대에 다른 지역에서도 문화 충격이 있는데, 2,000년의 시간과 전혀 다른 공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 어휘의 착시(예 두란노)들을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두란노 서원”을 “두란노 공장”으로 이미지로 제시하였다. 저자는 “아래로부터 역사”를 목표로 한 사회사적 관점을 성경 이해에 도입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사회사적 성경 읽기”는 성경 연구의 한 방법이다. 위와 다른 방법은 “계시로 성경 읽기”가 대조된다. 저자는 “영웅적 성경 읽기”를 거부하는데, 다른 말로 하면 “모범적 성경 읽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성경 묵상, 큐티를 강조하는데, 큐티의 오류는 “모범적 성경 읽기”일 것이다. 1세기 사회를 그리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깊은 성경 이해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는 다양한 1세기 교회와 관련된 여러 이슈를 망라하여 간략한 정보를 제시하고 있다. 간략한 정보지만 그 정보는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 혹은 오류에 대한 도전 혹은 교정할 수 있는 정보들이다. 유대 사회를 그린 이미지를 고찰하며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좋은 저술이다. 저자에게 1세기 기독교 문서에 대한 좀 더 전문적인 신학 저술을 집필해 줄 것을 제언한다.
부록으로 ‘성경 해석과 사회사’에 관한 고찰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각 장마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들”을 수록하여 독서 후기로 독서를 점검할 수 있고, 소그룹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1세기 교회, 기독교, 성경 배경에 관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나 독자들이 읽는다면 좋겠다. 1세기 기독교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더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기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