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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만 같다. 사적인 미디어 방송에서 동성연애,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고 공영방송에서도 이제 쉽게 성 혁명의 결과물을 발견한다. 사회 저명한 학자, 강사나 지도자,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지금의 시대 정신이 옳고 바른 길로 가는 중이라고 외친다. 대중의 다수가 이 흐름에 동조한다. 군대에서 동성끼리 성관계를 맺은 행위는 무죄, 이를 조사한 행위는 조사받는다. 자기 스스로 여성이라 느끼는 남성 수영선수가 여성 수영대회 상을 휩쓸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왜 이렇게 우리 정신을 지배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바뀐 것일까?
칼 트루먼은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상 현상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 분석한다. 철학, 예술, 과학, 문화, 정치 모든 요소가 지금의 시대 정신을 받치고 있는 지지대가 됐다. 먼저 저자는 루소,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다윈 등의 철학을 분석하는데, 공통점은 절대자를 제거하고 개인의 자아를 신의 자리에 앉힌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는 외부적 권위는 부정하고 내부적 권위만을 인정한다. 외부적 권위는 오히려 자아가 마음껏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표현하고 실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압제자다. 대표적인 원수는 기독교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걸 ‘죄’라고 말하고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외부의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트루먼의 분석에 따르면 예술은 철학을 대중적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는데, 낭만주의 예술은 철학자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대다수의 대중이 위에서 분석한 현대 자아의 개념을 갖게 했다. 왜 대중에게 동성애나 트랜스젠더에 관한 생각을 물을 때 ‘개인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 않나?’라고 말하며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반응할까? 왜 근친상간이나 소아성애에 관해서는 아직 부정적인 반응이 더 클까? 트루먼은 절대적인 기준이 그 둘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개인이 느끼는 감각이 아직은 근친상간과 소아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윤리는 철저히 개인의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오빠와 여동생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대중은 곧 이 윤리적 문제를 망각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정치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칼을 쥐고 선을 장려하고 악을 징벌해야 할 권세가 절대자를 부정하고 개인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트루먼은 이를 성 혁명의 결과로 보며 미국 여러 법정에서 승리를 거둔 사례를 보여준다. LGBTQ+ 운동은 그들이 대변하는 이들의 행복을 위해 그 행복을 방해하는 이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연합체를 이루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자신들을 피해자, 그들의 정체성에 반대하는 이들을 압제자로 삼아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점에서 같다. 나아가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혐오자’로 낙인찍고 법적인 처벌을 가하기 위한 정치 운동을 지속해서 일으키고 있다.
칼 트루먼은 이 책을 통해 교회의 대응을 일으키기를 원한다. 세상은 교회의 가치관이 케케묵은 전통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단순히 성경의 기준을 들이미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대 사상의 뿌리를 공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말세의 고통하는 때,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했다(딤후 3:2).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시대 정신을 지배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한 것이라면, 내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생물학적 정체성도, 도덕적-윤리적 기준도, 법과 정치도 걸리적거리는 방해물이 될 뿐이다. 근본적으로 나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주권, 선과 악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심판하실 하나님의 기준을 무시하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최우선이 된 세상은 브레이크 없는 대형버스와 같다. 거기 실린 인류는 자기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문화나 정치도 환영할 것이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상관없다. 현재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비통한 일은 교회 가운데 이런 세상의 흐름에 박수를 보내는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외치는 ‘자유’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유’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과연 어떤 복음일까? 소돔과 고모라에 실제로 살았던 롯과 그 가족들은 불과 유황의 심판이 임할 때 하나님의 천사의 도움을 받아 불타는 도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롯의 사위들은 장인의 경고를 비웃으며 구원의 길을 거절했다. 만일 오늘날 교회가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롯과 같다면, 우리는 세상에 물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거짓을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말을 비웃는 이들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손을 잡고 불로 심판받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트루먼의 이 책은 독자가 참교회로서 어떻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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