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철학과 믿음, 철학과 신학
“철학으로 세계를 묻고 믿음으로 다시 보다”, 마치 틸리히(Paul Tillich)의 상관 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틸리히는 '실존의 물음'과 '신학의 대답'을 추구했다. 그러나 안영혁 박사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는 그런 관계성 유지보다는, 한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 살면서, 신학을 하면서 겪은 철학에 대한 좌충우돌 사고(思考)를 고대철학에서 현대철학까지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안영혁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를 읽으면서, 불현듯 존 프레임의 <서양 철학과 신학의 역사>이 생각났다. 책의 분량은 비교가 되지 않지만, 신학자가 철학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절체절명의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안영혁은 좀 더 즐거운 자세로 진술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프레임은 정확하게 제시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안영혁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기본 지식에 십 수년 동안 신학을 연구하면서 축적된 사유 지식으로 보였다. 프레임 박사는 “인간의 사고 영역에서 벌어지는 영적 싸움의 역사”로 부제를 제시했다. 철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예단할 수 있겠다. R,C 스프로올의 <신학자가 풀어쓴 서양 철학 이야기>는 단순 진술로 보인다. 안영혁의 철학 진술은 사유에 녹아 있는 자기 이해를 제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어쩔 때는 재미있는 장면도 있다고 본다. 그 재미는 저자가 유도한 재미가 아니라, 어떤 관점을 저가가 독특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정신이 번쩍드는 즐거움이다.
많은 사역자들이 철학을 학부에서 전공했지만, 연계해서 철학 담론으로 저술을 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안영혁 박사는 신학을 하면서도 철학과 끊임없이 사유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 시절에 몇 가지 구체적인 담론들이 형성되었다고 추측해보기도 한다. 그래서 십수년이 지난 뒤에 한 덩어리의 사유로 집약되어 출판되었다. 더 깊은 사유와 진전으로 자기 이해로 형성된 멋진 인문학 저서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보기도 한다.
안영혁은 철학에서 고대 철학과 중세 철학에 대해서는 매우 짧게 구성시켰다. 근대, 현대 철학에 대해서 상당히 세밀하게 제시했고, 또 현재 시대의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까지 제시한 것은 사유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도 철학적 사유를 탐구하면서 신학에서 어떻게 답변을 해야할지 탐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영혁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는 저자가 학문에 함께하며 즐기고 있다. 독자들도 저자의 즐김에 동참하고 함께 즐긴다면 멋있는 하모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철학 저서가 얼마나 많은가? 전문 철학 저술을 그리스도인이 본다면 상당히 답답할 것이다. 아니 그 책에 아에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안영혁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는 우리의 신학 연구자가 서양 철학에 대해서 담론을 진행하는데, 자기가 고민한 흔적들이 많고, 또 개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철학에 대해서 좀 더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저술이다. 저자가 자기가 이해한 바를 제시하기 때문에 더 좋은 저술이다.
사유 저서, 특히 철학 저서는 한 번에 냉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철학 저술이 잘 판매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철학적 도서를 읽어내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세계정신사의 한 줄을 꿰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