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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승리
승리하는 기독교/마틴 로이드 존스/정상윤/복있는사람/[조영민]
“ 이제 분명히 아시겠습니까? 저는 제가 한 주 동안 삶에 대해 고찰한 바를 전하려고 매주 이 강단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복음 전파가 아닙니다. 저는 단순히 제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해설자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모든 내용은 제 앞에 있는 이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의 메시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하기 위해 저의 말로 제시하는 것 뿐입니다.”(47)
1년 동안 기다렸던 책이었다. 1권을 읽고 정말 좋았다. 2권을 읽고는 역시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3권 역시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만한 책이었다.
저자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이 저자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설교라면, 그의 설교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라도 사게 될 만큼 유명한 저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설교의 깊이와 명료성에 대해서는 이미 정설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강해 설교가들이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에서 도전을 받았고, 그러한 강해 설교가들에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처럼 여겨지고 아직도 연구되어지는 설교가가 바로 이 저자이기 때문이다.
이 책 ‘승리하는 기독교’는 1966년도에 설교된 내용이다. 시간적으로 이미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공간적으로도 한국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영국에서 선포된 메시지이다. 하지만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저자의 메시지인 ‘이천년 전에 쓰여진 성경 속의 사도행적의 인간들과 오늘날(1966년) 인간이 다르지 않고 그 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오늘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뀌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그 후 40년을 지난 지금에도 여전한 무게로, 동일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메시지였다. 절대적 가치의 상실이라는 시대 속에서 절대적 가치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성경이며 그것이 왜 초대 교회에서 선포된 메시지 속에 있는지에 대해서 그는 보여주고 있었다. 왜 그의 설교를 설교의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는지 새삼 느끼게 했다. 그 시대 속에서 설교한 메시지였지만 그 시대만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오는 모든 세대가 그 설교에 감동받게 설교되어진 그의 설교문을 읽으면서 저자의 위대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도행전 3권인 이 책은 5장 17절부터 6장 9절까지의 설교이다. 총 21편으로 설교된 이 설교 집에서는 5:29-32절을 총 13번 설교하고 있다. 단어 하나하나 중요한 수식어 하나하나 서술어 하나하나 그리고 그 문장의 분위기에 대해서 배경에 대해서 설교가는 설교하고 있다. 단 한 개의 단어를 해석하기 위해 성경 전체를 오가며 그 단어가 정확하게 그곳에 쓰여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천착해 가고 그 단어가 그곳에 있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밝혀가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만큼의 스릴이 느껴졌다. 한편 한편에 설교에 목숨을 건 설교가의 피와 땀이 느껴지고, 그 진지함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이 저자의 설교문을 대할 때마다 그 설교문 앞에서 나의 설교문(전임사역자로서 매주 몇 편의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하고 있다)을 살펴보게 하고 한없이 부끄러워지는가 한다.
이 강해설교가 전도설교로 선포된 설교였기에 한편 한편의 설교들을 읽으며 점점 더 명확해지는 초대교회 속에 나타난 ‘복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되었고, 각 장의 끝 부분 결말 부분에 가면 저자의 설교에서는 잘 찾을 수 없었던 도전과 결단의 촉구가 있었다. 저자가 ‘결단의 촉구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라고 평가하는 분들의 견해가 조금은 틀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노골적인 복음에 대한 촉구가 들어 있었다. 여러모로 저자의 다른 설교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강력한 어조들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이 책을 대하면서 얻게 된 개인적 유익은 -저자의 글이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낄 보편적인 유익 외에- ‘저자 자신의 등장이 많다’라는 것에 있다. 다른 그의 설교문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저자의 생각이나 상상력, 저자의 개인적인 고백들이 행간에 포함되어 있었다. 로마서 강해나 에베소서 강해에서는 잘 찾을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정밀하게 주해해 나가는 다른 설교집과는 다르게 이 강해집에서는 저자의 감정이나 고백 등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왜 내가 복음을 전하는지? 내가 강단에 오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성경이 2000년이 지나도 여전한 무게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는 “제가”라는 주어가 붙는다. 성경을 해석했고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합리성을 갖는다고 설명하는 보편적인 설명보다는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개인적 고백들과 주장들이 곳곳에서 독자들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노출 때문에 저자에 대한 어떤 설교문들 보다 저자가 잘 보였고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이 전 시대의 인물인 저자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할아버지 목사님이 참 좋아 보였다.
또다시 그가 설교가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거대한 산’임을 절감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그 산이 무척이나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을 가진 할아버지 같은, 그리고 어서 자기를 밟고 올라서서 더 높아지라고 그래서 그가 평생을 외쳤던 ‘그 복음’이 더 편만해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그런 따스한 목소리를 접했다.
어서 4권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
저자 마틴 로이드존스(Martyn Lloyd-Jones, 1899-1981)
남웨일즈 카디프 출신의 전도 유망한 젊은 내과의사였던 그는 1927년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목회를 시작했다. 인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공허감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복음"을 처방전으로 들고 나선 것이다.
그의 첫 사역지인 샌드필드 아벨라불의 B.F.M 교회에는 기도와 인내로써 옮겨야 할 장애물이 놓여 있었다. 샌드필드는 당시 경제 공황으로 인해 가난해진 사람들이 교회마저 멀리하는 분위기였고, 목회자들 사이에도 역사적인 칼빈주의가 퇴조하고 낙천적인 자유주의가 득세할 때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많은 책들을 읽으며 칼빈주의 감리교도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그는 능력 있는 전도 설교를 통해 교회 부흥을 일으켰다.
탁월한 복음주의자인 로이드 존스는 학문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대중적 강해설교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베드로후서 강해설교"를 시작으로 성경의 한 책에 대한 연속 설교를 본격적으로 시작, 21년 동안 줄곧 연속 설교를 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은 "산상수훈 강해설교"와 5년에 걸쳐 끝마친 "에베소서 강해설교", 그리고 장장 12년이나 걸린 "로마서 강해설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0여 권이 넘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가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또한 한국 강단에서 강해설교의 물결을 일으킨 설교자들을 살펴보면 모두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저술들을 통해 그를 만날 때에는 설교관과 해석학적 원리나 방법 등을 연구하는 일 외에 그가 지닌 영적 능력의 비결을 먼저 발견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 이제 분명히 아시겠습니까? 저는 제가 한 주 동안 삶에 대해 고찰한 바를 전하려고 매주 이 강단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복음 전파가 아닙니다. 저는 단순히 제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해설자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모든 내용은 제 앞에 있는 이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의 메시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하기 위해 저의 말로 제시하는 것 뿐입니다.”(47)
1년 동안 기다렸던 책이었다. 1권을 읽고 정말 좋았다. 2권을 읽고는 역시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3권 역시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만한 책이었다.
저자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이 저자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설교라면, 그의 설교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라도 사게 될 만큼 유명한 저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설교의 깊이와 명료성에 대해서는 이미 정설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강해 설교가들이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에서 도전을 받았고, 그러한 강해 설교가들에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처럼 여겨지고 아직도 연구되어지는 설교가가 바로 이 저자이기 때문이다.
이 책 ‘승리하는 기독교’는 1966년도에 설교된 내용이다. 시간적으로 이미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공간적으로도 한국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영국에서 선포된 메시지이다. 하지만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저자의 메시지인 ‘이천년 전에 쓰여진 성경 속의 사도행적의 인간들과 오늘날(1966년) 인간이 다르지 않고 그 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오늘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뀌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그 후 40년을 지난 지금에도 여전한 무게로, 동일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메시지였다. 절대적 가치의 상실이라는 시대 속에서 절대적 가치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성경이며 그것이 왜 초대 교회에서 선포된 메시지 속에 있는지에 대해서 그는 보여주고 있었다. 왜 그의 설교를 설교의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는지 새삼 느끼게 했다. 그 시대 속에서 설교한 메시지였지만 그 시대만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오는 모든 세대가 그 설교에 감동받게 설교되어진 그의 설교문을 읽으면서 저자의 위대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도행전 3권인 이 책은 5장 17절부터 6장 9절까지의 설교이다. 총 21편으로 설교된 이 설교 집에서는 5:29-32절을 총 13번 설교하고 있다. 단어 하나하나 중요한 수식어 하나하나 서술어 하나하나 그리고 그 문장의 분위기에 대해서 배경에 대해서 설교가는 설교하고 있다. 단 한 개의 단어를 해석하기 위해 성경 전체를 오가며 그 단어가 정확하게 그곳에 쓰여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천착해 가고 그 단어가 그곳에 있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밝혀가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만큼의 스릴이 느껴졌다. 한편 한편에 설교에 목숨을 건 설교가의 피와 땀이 느껴지고, 그 진지함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이 저자의 설교문을 대할 때마다 그 설교문 앞에서 나의 설교문(전임사역자로서 매주 몇 편의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하고 있다)을 살펴보게 하고 한없이 부끄러워지는가 한다.
이 강해설교가 전도설교로 선포된 설교였기에 한편 한편의 설교들을 읽으며 점점 더 명확해지는 초대교회 속에 나타난 ‘복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되었고, 각 장의 끝 부분 결말 부분에 가면 저자의 설교에서는 잘 찾을 수 없었던 도전과 결단의 촉구가 있었다. 저자가 ‘결단의 촉구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라고 평가하는 분들의 견해가 조금은 틀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노골적인 복음에 대한 촉구가 들어 있었다. 여러모로 저자의 다른 설교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강력한 어조들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이 책을 대하면서 얻게 된 개인적 유익은 -저자의 글이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낄 보편적인 유익 외에- ‘저자 자신의 등장이 많다’라는 것에 있다. 다른 그의 설교문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저자의 생각이나 상상력, 저자의 개인적인 고백들이 행간에 포함되어 있었다. 로마서 강해나 에베소서 강해에서는 잘 찾을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정밀하게 주해해 나가는 다른 설교집과는 다르게 이 강해집에서는 저자의 감정이나 고백 등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왜 내가 복음을 전하는지? 내가 강단에 오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성경이 2000년이 지나도 여전한 무게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는 “제가”라는 주어가 붙는다. 성경을 해석했고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합리성을 갖는다고 설명하는 보편적인 설명보다는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개인적 고백들과 주장들이 곳곳에서 독자들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노출 때문에 저자에 대한 어떤 설교문들 보다 저자가 잘 보였고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이 전 시대의 인물인 저자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할아버지 목사님이 참 좋아 보였다.
또다시 그가 설교가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거대한 산’임을 절감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그 산이 무척이나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을 가진 할아버지 같은, 그리고 어서 자기를 밟고 올라서서 더 높아지라고 그래서 그가 평생을 외쳤던 ‘그 복음’이 더 편만해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그런 따스한 목소리를 접했다.
어서 4권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
저자 마틴 로이드존스(Martyn Lloyd-Jones, 1899-1981)
남웨일즈 카디프 출신의 전도 유망한 젊은 내과의사였던 그는 1927년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목회를 시작했다. 인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공허감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복음"을 처방전으로 들고 나선 것이다.
그의 첫 사역지인 샌드필드 아벨라불의 B.F.M 교회에는 기도와 인내로써 옮겨야 할 장애물이 놓여 있었다. 샌드필드는 당시 경제 공황으로 인해 가난해진 사람들이 교회마저 멀리하는 분위기였고, 목회자들 사이에도 역사적인 칼빈주의가 퇴조하고 낙천적인 자유주의가 득세할 때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많은 책들을 읽으며 칼빈주의 감리교도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그는 능력 있는 전도 설교를 통해 교회 부흥을 일으켰다.
탁월한 복음주의자인 로이드 존스는 학문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대중적 강해설교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베드로후서 강해설교"를 시작으로 성경의 한 책에 대한 연속 설교를 본격적으로 시작, 21년 동안 줄곧 연속 설교를 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은 "산상수훈 강해설교"와 5년에 걸쳐 끝마친 "에베소서 강해설교", 그리고 장장 12년이나 걸린 "로마서 강해설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0여 권이 넘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가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또한 한국 강단에서 강해설교의 물결을 일으킨 설교자들을 살펴보면 모두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저술들을 통해 그를 만날 때에는 설교관과 해석학적 원리나 방법 등을 연구하는 일 외에 그가 지닌 영적 능력의 비결을 먼저 발견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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