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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보수주의 신학의 거두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박용규/총신대학교출판부/[최유정]
오늘날,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는 주장 속에서 교의에 대한 중요성이 희박해져가는 실정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메시지 즉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세워진 삶의 방식이다.
잘 알려진 조직신학자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는 그의 저서 『조직신학』에서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 진리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진리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만 계시된 것이 아니라 이것들에 대해 성경에 나오는 해석에서도 계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생명을 받는 것은 그저 신비적으로 은혜를 주입하는 데 달려있거나 인간의 올바른 윤리적 행동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그 조건이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교의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조직신학 즉 교의신학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모은 교리적 진리 전체를 조직적인 방식으로 제시한 것으로써, 진리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판단기준이 된다.
한국 신학자로는 처음으로 이같은 조직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 바로 박형룡 박사이다.
“청교도 개혁신학”이라고 하는 한국 신학의 큰 산맥을 이룬 박형룡 박사의 전기를 다룬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은 박용규 교수가 편집, 총신대학교 출판부에서 1996년에 발행한 책으로서, 한 사람의 단독 기록이 아니라 그 분께 직접 배운 제자들을 중심으로 여러 박사들의 논고로 편집되어서 객관적이고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 설교, 인간적인 면과 아울러 비판적인 면까지 다루고 있어서 균형 있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1897년, 평안북도 벽동에서 박기수 씨의 4남중에서 장남으로 출생한 박형룡은 신성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26세의 나이에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 구 프린스톤 신학교에 입학하여 찰스 핫지와 워필드의 장로교 정통신학을 깊이 연구한 그는. 보수주의 거장인 메이첸 박사 밑에서 직접 신학교육을 받았으며 메이첸 박사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르쳐 본 동양 학생 가운데 가장 탁월한 학생“이라고 평가받기도 하였다.
이후 신학사와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금의환향하여 숭실전문학교와 평양장로회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 저술하는 일에 전무하였다.
그는 실로 한국이 낳은 첫 신학자로서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교리를 정립하고 개혁주의 신학을 체계화하여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한 신앙과 학문의 교부적인 지도자였다.
그가 이처럼 한국교회에 미친 그의 신학사상이란 어떤 것인가?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이 되는 그의 신학사상인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앙”은 “구주대륙의 칼빈 개혁주의 신학에 영미의 청교도적 특징을 가미한 신학”이다. 그는 이 개혁신학이 정통신학이므로 이 신학이 세상을 살릴 뿐 아니라 교회가 실제로 믿고 바라는 신앙은 이것임을 강조하였다.
박형룡 박사의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은 첫째로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믿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유효소명(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확신이요, 셋째는 주일성수와 경건생활에 치중하는 훈련이요, 넷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특히 박형룡 박사는 성경만이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사상을 좌우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신앙과 행위의 절대적이며 최종적인 권위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성경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개인 신앙의 부요함과 교회의 발전에 위대한 관건이 되어 왔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 한국교회가 세계에 모범적인 교회로 부흥 발전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에 충실했다는데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형룡 박사의 많은 저서 가운데서도 특히 뛰어난 것은 한국 신학사상 처음으로 『교의신학』을 7권으로 엮어 낸 신학적 업적이다.
그는 저술의 목적을 정통적인 신학사상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과 그 자신의 계시인 무오한 기록인 성경의 권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필자의 본의는 칼빈주의 개혁파 정통신학을 그대로 받아서 전달하는 데 있지 감히 무엇을 창작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오직 한국교회의 성도들을 바른 신앙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서양의 선진 정통신학자들의 사상을 되도록 정확하게 소개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박형룡 박사의 목적은 창작에 있지 않고 “사도적 정 신앙(使徒的 正 信仰)”의 확립에 있었던 것이다.
조직신학자인 차영배는 이 책에서 박형룡의 신학의 방법은 전통적인 정통개혁신학을 성경적 주석과 더불어 신앙적, 이성적 방법으로 종합한 것이며, 그의 신학의 원리는 대체적으로 바빙크-벌코프의 개혁신학의 노선을 걸은 칼빈주의에 입각한 원리 곧 성경을 객관적 원리로 삼고 신앙을 내적 원리로 삼아 오직 계시의존 신앙으로 신학을 세워야 한다는 원리에 거의 일치한다고 박형룡 신학에 대해 결론을 짓고 있다.
즉 박형룡 박사는 미국 토양에서 개진된 개혁신학이 아니라 구라파 특히 화란개혁신학을 채택하였다. 그것은 카이퍼의 칼빈주의 부흥운동을 결과한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신학에 접근하고 그에게서 비롯된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자기의 신학으로 채택한 것임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서구의 개혁주의 신학을 한국적 사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한국적 틀로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교의신학에서 사상적 청중분석이 없이 서구 개혁주의 신학을 그대로 꽃다발로 엮었다는 점 즉 성경의 사상으로 한국인의 사상을 변혁시키는 방향에서 교의신학을 다루고 그것을 한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이해의 틀로 개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구의 정통신학을 바르게 소개함으로써, 신학자로서의 평생을 오직 한국에 있어서 보수주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그 신학을 지키는 데 있었던 박형룡 박사의 노력은 참으로 값진 것이었다.
한국교회에 박형룡 박사가 없었다면 초대 선교사들이 심어준 칼빈주의 신학이 열매를 맺지 못함은 물론 오히려 자유주의 신학에 도태되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박형룡 박사는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신앙을 잘 대변하는 신학자인 동시에 또한 그러한 신앙을 더욱 굳게 확립하는 데 크게 공헌한 학자요, 교사였다.
저자 박용규
성균관대학교와 총신대학 신대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에 유학하여 웨스턴복음주의 신학대학원,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무처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동 대학원에서 역사 신학 교수로 있다.
오늘날,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는 주장 속에서 교의에 대한 중요성이 희박해져가는 실정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메시지 즉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세워진 삶의 방식이다.
잘 알려진 조직신학자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는 그의 저서 『조직신학』에서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 진리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진리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만 계시된 것이 아니라 이것들에 대해 성경에 나오는 해석에서도 계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생명을 받는 것은 그저 신비적으로 은혜를 주입하는 데 달려있거나 인간의 올바른 윤리적 행동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그 조건이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교의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조직신학 즉 교의신학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모은 교리적 진리 전체를 조직적인 방식으로 제시한 것으로써, 진리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판단기준이 된다.
한국 신학자로는 처음으로 이같은 조직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 바로 박형룡 박사이다.
“청교도 개혁신학”이라고 하는 한국 신학의 큰 산맥을 이룬 박형룡 박사의 전기를 다룬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은 박용규 교수가 편집, 총신대학교 출판부에서 1996년에 발행한 책으로서, 한 사람의 단독 기록이 아니라 그 분께 직접 배운 제자들을 중심으로 여러 박사들의 논고로 편집되어서 객관적이고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 설교, 인간적인 면과 아울러 비판적인 면까지 다루고 있어서 균형 있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1897년, 평안북도 벽동에서 박기수 씨의 4남중에서 장남으로 출생한 박형룡은 신성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26세의 나이에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 구 프린스톤 신학교에 입학하여 찰스 핫지와 워필드의 장로교 정통신학을 깊이 연구한 그는. 보수주의 거장인 메이첸 박사 밑에서 직접 신학교육을 받았으며 메이첸 박사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르쳐 본 동양 학생 가운데 가장 탁월한 학생“이라고 평가받기도 하였다.
이후 신학사와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금의환향하여 숭실전문학교와 평양장로회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 저술하는 일에 전무하였다.
그는 실로 한국이 낳은 첫 신학자로서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교리를 정립하고 개혁주의 신학을 체계화하여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한 신앙과 학문의 교부적인 지도자였다.
그가 이처럼 한국교회에 미친 그의 신학사상이란 어떤 것인가?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이 되는 그의 신학사상인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앙”은 “구주대륙의 칼빈 개혁주의 신학에 영미의 청교도적 특징을 가미한 신학”이다. 그는 이 개혁신학이 정통신학이므로 이 신학이 세상을 살릴 뿐 아니라 교회가 실제로 믿고 바라는 신앙은 이것임을 강조하였다.
박형룡 박사의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은 첫째로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믿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유효소명(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확신이요, 셋째는 주일성수와 경건생활에 치중하는 훈련이요, 넷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특히 박형룡 박사는 성경만이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사상을 좌우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신앙과 행위의 절대적이며 최종적인 권위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성경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개인 신앙의 부요함과 교회의 발전에 위대한 관건이 되어 왔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 한국교회가 세계에 모범적인 교회로 부흥 발전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에 충실했다는데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형룡 박사의 많은 저서 가운데서도 특히 뛰어난 것은 한국 신학사상 처음으로 『교의신학』을 7권으로 엮어 낸 신학적 업적이다.
그는 저술의 목적을 정통적인 신학사상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과 그 자신의 계시인 무오한 기록인 성경의 권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필자의 본의는 칼빈주의 개혁파 정통신학을 그대로 받아서 전달하는 데 있지 감히 무엇을 창작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오직 한국교회의 성도들을 바른 신앙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서양의 선진 정통신학자들의 사상을 되도록 정확하게 소개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박형룡 박사의 목적은 창작에 있지 않고 “사도적 정 신앙(使徒的 正 信仰)”의 확립에 있었던 것이다.
조직신학자인 차영배는 이 책에서 박형룡의 신학의 방법은 전통적인 정통개혁신학을 성경적 주석과 더불어 신앙적, 이성적 방법으로 종합한 것이며, 그의 신학의 원리는 대체적으로 바빙크-벌코프의 개혁신학의 노선을 걸은 칼빈주의에 입각한 원리 곧 성경을 객관적 원리로 삼고 신앙을 내적 원리로 삼아 오직 계시의존 신앙으로 신학을 세워야 한다는 원리에 거의 일치한다고 박형룡 신학에 대해 결론을 짓고 있다.
즉 박형룡 박사는 미국 토양에서 개진된 개혁신학이 아니라 구라파 특히 화란개혁신학을 채택하였다. 그것은 카이퍼의 칼빈주의 부흥운동을 결과한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신학에 접근하고 그에게서 비롯된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자기의 신학으로 채택한 것임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서구의 개혁주의 신학을 한국적 사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한국적 틀로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교의신학에서 사상적 청중분석이 없이 서구 개혁주의 신학을 그대로 꽃다발로 엮었다는 점 즉 성경의 사상으로 한국인의 사상을 변혁시키는 방향에서 교의신학을 다루고 그것을 한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이해의 틀로 개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구의 정통신학을 바르게 소개함으로써, 신학자로서의 평생을 오직 한국에 있어서 보수주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그 신학을 지키는 데 있었던 박형룡 박사의 노력은 참으로 값진 것이었다.
한국교회에 박형룡 박사가 없었다면 초대 선교사들이 심어준 칼빈주의 신학이 열매를 맺지 못함은 물론 오히려 자유주의 신학에 도태되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박형룡 박사는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신앙을 잘 대변하는 신학자인 동시에 또한 그러한 신앙을 더욱 굳게 확립하는 데 크게 공헌한 학자요, 교사였다.
저자 박용규
성균관대학교와 총신대학 신대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에 유학하여 웨스턴복음주의 신학대학원,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무처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동 대학원에서 역사 신학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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