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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전통을 지켜온 기독교 역사가들에 관한 책
전통을 지켜온 기독교 역사가들/마이클 바우만/라은성/이레서원/[박상돈]
결국 본인은 본서를 통해 역사 서술의 중요함과 다양함, 그리고 계시 의존적 삶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게으르지 않고 분투하면서 연구에 몰두하였던 모든 역사가들의 그 공통점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특히 도어선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독교 문화 비평과 역사학 연구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교회사와 역사에 대한 연구를 깊이 있게 해야 되겠다는 각성이 일게 되었다.
● 저자 마이클 바우만
미시간 주 힐스데일 대학교의 기독교 연구원 대표와 문화신학과 교수이다.
또 시몬 그린리프대학교의 변증학 방문교수로 역사, 신학, 정치학에 대한 수많은 저서를 쓴 분이다.
● 서평
"역사 서술이 과연 객관적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절대적인 객관성은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식해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동시에 인식해야 할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서술이 최대한 객관적인 타당성을 갖추면서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도록 역사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Michal Bauman & Martin I. Klauber 의「전통을 지켜온 기독교 역사가들」에 보면 그러한 감화력 있는 역사 서술을 위해 모든 혼신을 다해 헌신했던 기독교 역사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지나온 기독교 교회사의 그 흔적과 발자취를 알게 되며 미래를 향해 어떠한 방향으로 전인적인 걸음을 내딛어야 할 것인지에 관한 통찰을 얻게 되기도 한다.
본서에서 소개된 인물들 중에는 개혁주의의 노선에서 심각하게 벗어난 역사가들도 있으며, 정통 신앙에 매우 충실했던 역사가들도 망라되어 소개되고 있다.
물론 역기능적인 역할을 하였던 역사가들의 그 서술 내용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걸러 낼 필요가 있지만, 어쨌든 각기 그 학구적인 발자취 속에서 나름의 역할들을 실행함으로써 그 역사가들에 대한 상호 비교를 통해서라도 올바른 역사적 의미들이 밝혀지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어떤 기독교 역사가는 구약과 신약 성경의 역사가들의 전례를 따라서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본래적 의도나 뜻을 제대로 밝혀내고 조망해 낼 만한 신앙과 연구 방법을 통해 - 물론 그것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였지만, 반대로 어떤 이들은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고 하겠다.
특히 구약의 신명기적 역사가들과 역대기적 역사가들은 철저히 계시 의존적 사색을 통해 역사를 기술하면서 당대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진실한 뜻과 섭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미래적 소망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고도 감동적으로 제시해 주었다.
이러한 계시 의존적 사고를 따라 신약의 누가 역시 그리스도의 계시와 그것에 정초한 사도적 케리그마에 충실하여 역사를 기술하였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섭리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성경 저자들에 관하여는 그 역사 서술 과정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성령께서 개입하시고 주관하시어 그 저자들에게 신적 감동을 주심으로써 그 내용이 무오류하도록 역사해주셨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완벽한 역사 서술은 성령에 의해 오직 정경을 이루고 있는 그 역사 서술에서만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완벽한 역사 서술(계시)에 근거하여 최대한 계시 의존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며 서술하려고 했던 교회사의 인물들을 우리는 본 책에서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선 그러한 인물의 대표격으로 어거스틴을 보게 된다. 그는 처음에 계시 의존 사색과는 상관없이 헬라의 철학들과 마니교에 심취하였지만 성령께서 그를 거듭나게 하사 계시에 근거한 사고 체계로 전환시키셨고 그의 말대로 그가 가지고 있었던 제 학문들은 'spoiling egyption'의 예처럼 복음 승리의 전리품들이 되어 그의 계시 의존 사색을 깊이 있게 확장하는데 좋은 도구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에 대해서도 하나님 중심적인 탁월한 안목을 갖게 되었고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가 시간 속에 실현되는 것이라는 정확한 견해를 피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매 순간을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며 우리에게 큰 감화를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특히 어거스틴의 표현처럼 우리의 역사와 심지어 우리 개인의 역사까지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모자이크로 묘사될 수 있으리라! 때로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섭리일지라도 훗날 되돌아 보면 그 모든 매 순간의 삶의 파편들이 하나님의 이끄심 속에서 모아져서 아름다운 그림과 작품을 이루는 모자이크와 같은 것임을 생각해 볼 때에 거기에 삶의 소망이 있는 것인데 어거스틴은 그러한 동일한 맥락에서 "인류 역사를 노래나 교향곡과 같이 잘 구성되고 잘 짜여진 편물"로 설명하면서 지금도 우리에게 영감어린 통찰력(insight)을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무시간의 개념이나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시간의 순환이라는 개념으로 역사를 바라보지 않고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일직선적인 역사관을 제시함으로써 기독교 역사관을 명확하게 설명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러한 역사관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단회성과 관련된 아이디어에서 말미암았다는 점에서 그의 계시 의존적 사색의 일면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알레고리적인 성경 해석과 적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의 예들이 실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가 십자가 구속의 단회성과 역사관을 연결시킨 것도 그 범주에 속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성경적인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도 분명 역사는 일직선이라는 설명이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또한 그가 "아직도 아니다(not yet)"라는 개념을 그 당시 이미 정리했다는 점 역시 그가 얼마만큼 계시 의존 사색을 깊이 있게 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본서에서는 이러한 어거스틴의 경우처럼 성경 계시 의존적인 사색 또는 다른 말로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역사 서술을 그래도 충실하게 해냈던 인물들이 나온다. 본서에 근거하여 판단해 보건대 비드, 존 폭스, 드바이네, 커닝함, 라이트푸트, 린세이, 라토렛 등이 그들이다. 특히 비드는 그의 작품 전반에서 성경적인 태도가 진지하게 배여 있으며 주님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순수성을 간직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존 폭스는 그리스도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하는 삶을 격려하고 준비시켰다는 점에서 칭송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드바이네는 정통 개혁파이자 칼빈 연구의 달인으로서 진리에 충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도 적절하게 도입하여 사실 존중의 문화를 통해 그의 역사 서술을 기했으며, 역사가의 임무는 제 2원인을 통하여 명시된 제 1원인을 찾는 것이라는 창조적인 사고와 겸허한 열정을 가졌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커닝함은 스코틀랜드의 최고의 신학자로서 성경적 교리의 발전을 위한 객관적 기반을 두었으며 칼빈과 베자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짚으면서 성경 계시를 존중하는 개혁주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라이트푸트는 교부신학의 최고 대가로서 지칠줄 모르는 연구열정과 신약 주석을 통해 당시 튀빙겐 학파의 주장들을 잠재웠다는 점에서, 또한 린세이는 초대 교회에 있어서 목회 자취를 깊이 있게 조망하고 종교 개혁사를 심도깊게 연구, 정리하되 '믿음'의 의미를 강렬하게 남겼다는 점에서, 그리고 라토렛은 하나님 나라와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갖고 선선교 역사를 교회사의 중요한 부문으로 부각시키며 선교적 열정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하나님 나라에 크게 공헌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러한 인물들을 빛나는 보석과 같은 기독교 역사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아름다운 섭리를 역사 속에 어떻게 시작하셨고 진행하시며 이루어 가시는 지를 인류에게 나타내셨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사 서술에 있어서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난 인물들의 역사 서술도 있었다. 이러한 인물들이 그렇게 벗어나게 되었던 것은 성경 계시 자체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신의 관점이나 논점을 더욱더 강조했기 때문이다. 즉 마땅히 성경을 우위에 두고 겸손히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대에 충격적인 이슈를 일으키고 대단히 탁월하게 보이는 연구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유세비우스를 들 수 있다 그는 비록 정통 신학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 연구에 있어서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자료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해석하는 면에 있어서 제국 신학 혹은 어용 신학의 입장을 따라 자료들을 다루면서 이 땅에서의 교회의 모습을 편향되게 그리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그래서 소위 성공주의 혹은 승리주의의 논지로 연결될 수 있는 왜곡된 경향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훗날 어거스틴은 그의 저작 '하나님의 도시(The City of God)'에서 유세비우스가 세운 역사 신학의 입장을 교정하였고 사이비 메시아적인 관점에서 로마를 보는 유세비우스의 경향은 정당하지 못한 것임을 밝혔던 것이다. 결국 유세비우스는 계시에 철저히 기반하지 않고 현세적인 외형에 더욱더 근거하였던 것이다.
또한 바우어는 아예 성경에 기록된 계시를 무시하고 헤겔 철학(말년에는 칸트 철학)과 과학 위에 자신이 만든 스스로의 종교 신조와 역사관을 기초했다는 점에서는 그의 재능이 탁월했음에도 불구하고 방향성 자체가 왜곡되고 말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초자연적인 기독교를 없애버리고 새로운 신조를 짜려고 했던 그의 시도는 오만한 것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헨리 뉴먼 역시 성경 계시 의존적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관심을 가진 고전과 전통에 더욱더 큰 비중을 두었다고 하겠다. 그는 전통과 성경을 동일시함으로써 그의 역사 서술은 과녁을 빗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예로서 카톨릭 중심 주의적 관점으로 역사를 기술한 헨리 쉘던, 그리고 문화적 접근을 시도한 역사가 도어선도 넓은 의미에서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또한 당대에 윤리적 하나님 나라관의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기독교를 만들어 보려던 하르낙 역시도 성경에 기록된 계시에 의존하기 보다는 인간의 지성과 윤리성만을 강조하였고, 사도신경 자체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크게 곡해하는 우(愚)를 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계시 의존적인 태도에서 떠나게 되면 반드시 자기 중심적인 논지와 관점을 내세우면서 올바른 역사 서술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본서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틴 루터가 그의 쟁송(Anfectung)의 경험을 겪으며 그리스도의 의의 빛을 만났을 때에 그의 삶이 변화된 것을 보며, 진정한 쟁송 없이는 영적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있게 새겨 본다. 그리하여 이러한 루터의 경험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루터의 그러한 쟁송을 심리학적으로 왜곡되게 분석한 에릭슨 - 에릭 프롬도 그의 저서 '자유에로의 도피'에서 이러한 에릭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루터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강한 존재에게는 전적으로 복속되는 경향과 반항하는 경향이 동시에 나타나는 갈등을 겪었다고 주장함 - 의 논지는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죄로 심히 죄되게 하여 은혜의 깊이를 알게 하는 것처럼 루터 역시 그러한 체험을 한 것은 철저히 종교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과 관점과 성경과 사물을 판단하려고 하는 일들은 그 본질을 곡해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
아무튼, 그래도 이상에서 언급한 왜곡된 논점을 가졌던 역사가들 역시도 나름대로 학문적 발전에 기여하였고 - 분투하며 최선을 다하였던 그 삶만큼은 배워야 한다 - 그리하여 반면 교사로서 그들을 통해 올바른 의미들이 더욱더 대조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루어지는 것을 깊이 생각한다면 계시 의존성에서 벗어난 제 역사 서술들은 계속해서 비평을 받으면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본인은 본서를 통해 역사 서술의 중요함과 다양함, 그리고 계시 의존적 삶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게으르지 않고 분투하면서 연구에 몰두하였던 모든 역사가들의 그 공통점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특히 도어선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독교 문화 비평과 역사학 연구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교회사와 역사에 대한 연구를 깊이 있게 해야 되겠다는 각성이 일게 되었다.
결국 본인은 본서를 통해 역사 서술의 중요함과 다양함, 그리고 계시 의존적 삶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게으르지 않고 분투하면서 연구에 몰두하였던 모든 역사가들의 그 공통점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특히 도어선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독교 문화 비평과 역사학 연구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교회사와 역사에 대한 연구를 깊이 있게 해야 되겠다는 각성이 일게 되었다.
● 저자 마이클 바우만
미시간 주 힐스데일 대학교의 기독교 연구원 대표와 문화신학과 교수이다.
또 시몬 그린리프대학교의 변증학 방문교수로 역사, 신학, 정치학에 대한 수많은 저서를 쓴 분이다.
● 서평
"역사 서술이 과연 객관적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절대적인 객관성은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식해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동시에 인식해야 할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서술이 최대한 객관적인 타당성을 갖추면서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도록 역사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Michal Bauman & Martin I. Klauber 의「전통을 지켜온 기독교 역사가들」에 보면 그러한 감화력 있는 역사 서술을 위해 모든 혼신을 다해 헌신했던 기독교 역사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지나온 기독교 교회사의 그 흔적과 발자취를 알게 되며 미래를 향해 어떠한 방향으로 전인적인 걸음을 내딛어야 할 것인지에 관한 통찰을 얻게 되기도 한다.
본서에서 소개된 인물들 중에는 개혁주의의 노선에서 심각하게 벗어난 역사가들도 있으며, 정통 신앙에 매우 충실했던 역사가들도 망라되어 소개되고 있다.
물론 역기능적인 역할을 하였던 역사가들의 그 서술 내용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걸러 낼 필요가 있지만, 어쨌든 각기 그 학구적인 발자취 속에서 나름의 역할들을 실행함으로써 그 역사가들에 대한 상호 비교를 통해서라도 올바른 역사적 의미들이 밝혀지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어떤 기독교 역사가는 구약과 신약 성경의 역사가들의 전례를 따라서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본래적 의도나 뜻을 제대로 밝혀내고 조망해 낼 만한 신앙과 연구 방법을 통해 - 물론 그것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였지만, 반대로 어떤 이들은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고 하겠다.
특히 구약의 신명기적 역사가들과 역대기적 역사가들은 철저히 계시 의존적 사색을 통해 역사를 기술하면서 당대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진실한 뜻과 섭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미래적 소망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고도 감동적으로 제시해 주었다.
이러한 계시 의존적 사고를 따라 신약의 누가 역시 그리스도의 계시와 그것에 정초한 사도적 케리그마에 충실하여 역사를 기술하였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섭리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성경 저자들에 관하여는 그 역사 서술 과정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성령께서 개입하시고 주관하시어 그 저자들에게 신적 감동을 주심으로써 그 내용이 무오류하도록 역사해주셨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완벽한 역사 서술은 성령에 의해 오직 정경을 이루고 있는 그 역사 서술에서만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완벽한 역사 서술(계시)에 근거하여 최대한 계시 의존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며 서술하려고 했던 교회사의 인물들을 우리는 본 책에서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선 그러한 인물의 대표격으로 어거스틴을 보게 된다. 그는 처음에 계시 의존 사색과는 상관없이 헬라의 철학들과 마니교에 심취하였지만 성령께서 그를 거듭나게 하사 계시에 근거한 사고 체계로 전환시키셨고 그의 말대로 그가 가지고 있었던 제 학문들은 'spoiling egyption'의 예처럼 복음 승리의 전리품들이 되어 그의 계시 의존 사색을 깊이 있게 확장하는데 좋은 도구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에 대해서도 하나님 중심적인 탁월한 안목을 갖게 되었고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가 시간 속에 실현되는 것이라는 정확한 견해를 피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매 순간을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며 우리에게 큰 감화를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특히 어거스틴의 표현처럼 우리의 역사와 심지어 우리 개인의 역사까지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모자이크로 묘사될 수 있으리라! 때로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섭리일지라도 훗날 되돌아 보면 그 모든 매 순간의 삶의 파편들이 하나님의 이끄심 속에서 모아져서 아름다운 그림과 작품을 이루는 모자이크와 같은 것임을 생각해 볼 때에 거기에 삶의 소망이 있는 것인데 어거스틴은 그러한 동일한 맥락에서 "인류 역사를 노래나 교향곡과 같이 잘 구성되고 잘 짜여진 편물"로 설명하면서 지금도 우리에게 영감어린 통찰력(insight)을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무시간의 개념이나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시간의 순환이라는 개념으로 역사를 바라보지 않고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일직선적인 역사관을 제시함으로써 기독교 역사관을 명확하게 설명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러한 역사관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단회성과 관련된 아이디어에서 말미암았다는 점에서 그의 계시 의존적 사색의 일면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알레고리적인 성경 해석과 적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의 예들이 실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가 십자가 구속의 단회성과 역사관을 연결시킨 것도 그 범주에 속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성경적인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도 분명 역사는 일직선이라는 설명이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또한 그가 "아직도 아니다(not yet)"라는 개념을 그 당시 이미 정리했다는 점 역시 그가 얼마만큼 계시 의존 사색을 깊이 있게 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본서에서는 이러한 어거스틴의 경우처럼 성경 계시 의존적인 사색 또는 다른 말로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역사 서술을 그래도 충실하게 해냈던 인물들이 나온다. 본서에 근거하여 판단해 보건대 비드, 존 폭스, 드바이네, 커닝함, 라이트푸트, 린세이, 라토렛 등이 그들이다. 특히 비드는 그의 작품 전반에서 성경적인 태도가 진지하게 배여 있으며 주님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순수성을 간직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존 폭스는 그리스도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하는 삶을 격려하고 준비시켰다는 점에서 칭송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드바이네는 정통 개혁파이자 칼빈 연구의 달인으로서 진리에 충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도 적절하게 도입하여 사실 존중의 문화를 통해 그의 역사 서술을 기했으며, 역사가의 임무는 제 2원인을 통하여 명시된 제 1원인을 찾는 것이라는 창조적인 사고와 겸허한 열정을 가졌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커닝함은 스코틀랜드의 최고의 신학자로서 성경적 교리의 발전을 위한 객관적 기반을 두었으며 칼빈과 베자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짚으면서 성경 계시를 존중하는 개혁주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라이트푸트는 교부신학의 최고 대가로서 지칠줄 모르는 연구열정과 신약 주석을 통해 당시 튀빙겐 학파의 주장들을 잠재웠다는 점에서, 또한 린세이는 초대 교회에 있어서 목회 자취를 깊이 있게 조망하고 종교 개혁사를 심도깊게 연구, 정리하되 '믿음'의 의미를 강렬하게 남겼다는 점에서, 그리고 라토렛은 하나님 나라와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갖고 선선교 역사를 교회사의 중요한 부문으로 부각시키며 선교적 열정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하나님 나라에 크게 공헌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러한 인물들을 빛나는 보석과 같은 기독교 역사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아름다운 섭리를 역사 속에 어떻게 시작하셨고 진행하시며 이루어 가시는 지를 인류에게 나타내셨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사 서술에 있어서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난 인물들의 역사 서술도 있었다. 이러한 인물들이 그렇게 벗어나게 되었던 것은 성경 계시 자체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신의 관점이나 논점을 더욱더 강조했기 때문이다. 즉 마땅히 성경을 우위에 두고 겸손히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대에 충격적인 이슈를 일으키고 대단히 탁월하게 보이는 연구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유세비우스를 들 수 있다 그는 비록 정통 신학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 연구에 있어서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자료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해석하는 면에 있어서 제국 신학 혹은 어용 신학의 입장을 따라 자료들을 다루면서 이 땅에서의 교회의 모습을 편향되게 그리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그래서 소위 성공주의 혹은 승리주의의 논지로 연결될 수 있는 왜곡된 경향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훗날 어거스틴은 그의 저작 '하나님의 도시(The City of God)'에서 유세비우스가 세운 역사 신학의 입장을 교정하였고 사이비 메시아적인 관점에서 로마를 보는 유세비우스의 경향은 정당하지 못한 것임을 밝혔던 것이다. 결국 유세비우스는 계시에 철저히 기반하지 않고 현세적인 외형에 더욱더 근거하였던 것이다.
또한 바우어는 아예 성경에 기록된 계시를 무시하고 헤겔 철학(말년에는 칸트 철학)과 과학 위에 자신이 만든 스스로의 종교 신조와 역사관을 기초했다는 점에서는 그의 재능이 탁월했음에도 불구하고 방향성 자체가 왜곡되고 말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초자연적인 기독교를 없애버리고 새로운 신조를 짜려고 했던 그의 시도는 오만한 것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헨리 뉴먼 역시 성경 계시 의존적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관심을 가진 고전과 전통에 더욱더 큰 비중을 두었다고 하겠다. 그는 전통과 성경을 동일시함으로써 그의 역사 서술은 과녁을 빗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예로서 카톨릭 중심 주의적 관점으로 역사를 기술한 헨리 쉘던, 그리고 문화적 접근을 시도한 역사가 도어선도 넓은 의미에서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또한 당대에 윤리적 하나님 나라관의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기독교를 만들어 보려던 하르낙 역시도 성경에 기록된 계시에 의존하기 보다는 인간의 지성과 윤리성만을 강조하였고, 사도신경 자체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크게 곡해하는 우(愚)를 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계시 의존적인 태도에서 떠나게 되면 반드시 자기 중심적인 논지와 관점을 내세우면서 올바른 역사 서술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본서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틴 루터가 그의 쟁송(Anfectung)의 경험을 겪으며 그리스도의 의의 빛을 만났을 때에 그의 삶이 변화된 것을 보며, 진정한 쟁송 없이는 영적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있게 새겨 본다. 그리하여 이러한 루터의 경험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루터의 그러한 쟁송을 심리학적으로 왜곡되게 분석한 에릭슨 - 에릭 프롬도 그의 저서 '자유에로의 도피'에서 이러한 에릭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루터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강한 존재에게는 전적으로 복속되는 경향과 반항하는 경향이 동시에 나타나는 갈등을 겪었다고 주장함 - 의 논지는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죄로 심히 죄되게 하여 은혜의 깊이를 알게 하는 것처럼 루터 역시 그러한 체험을 한 것은 철저히 종교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과 관점과 성경과 사물을 판단하려고 하는 일들은 그 본질을 곡해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
아무튼, 그래도 이상에서 언급한 왜곡된 논점을 가졌던 역사가들 역시도 나름대로 학문적 발전에 기여하였고 - 분투하며 최선을 다하였던 그 삶만큼은 배워야 한다 - 그리하여 반면 교사로서 그들을 통해 올바른 의미들이 더욱더 대조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루어지는 것을 깊이 생각한다면 계시 의존성에서 벗어난 제 역사 서술들은 계속해서 비평을 받으면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본인은 본서를 통해 역사 서술의 중요함과 다양함, 그리고 계시 의존적 삶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게으르지 않고 분투하면서 연구에 몰두하였던 모든 역사가들의 그 공통점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특히 도어선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독교 문화 비평과 역사학 연구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교회사와 역사에 대한 연구를 깊이 있게 해야 되겠다는 각성이 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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