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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누구나 '악의 축'이 될 수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이 쓴 악의 심리에 관한 역작이다. 스캇 펙은 정신과 전문의로서 정신 치료 현장에서 맞닥뜨린 악에 대한 생생한 경험들을 사례로 들면서 거짓의 실체가 무엇인지 파헤친다.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해서 악을 행하게 되는지, 나아가 그 악을 어떻게 직면하고 극복할 것인지 그 치료책을 제시한다.
저자는 강박증, 자폐증, 아동학대, 베트남 전쟁, 인종 청소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악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 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또한 그는 개인의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집단 악의 문제에 접근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을 성찰하면서 저자는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 악한들의 국가가 되고 만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악의 심리를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궁극적인 치료책으로서 진정한 ‘사랑’을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악의 치유에 대한 희망을 던져 주고 있다.
● 저자 스캇 펙(M. Scott Peck)
스캇 펙 박사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했다. 심리상담자로서 미 행정부의 요직을 맡기도 했던 그는 1978년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출간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신망 받는 의학자이자 영적 상담자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현재 미 코네티컷 주 뉴 밀퍼트에서 정신과 의사로 개업해 있으면서 밀퍼트 종합병원 정신건강 치료센터의 책임자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열음사), 『영혼의 부정』(김영사), 『해리 이야기』(청양) 등이 있다.
● 서평
아무 생각 없이 건넨 선물, 당신도 '악의 축'이 될 수 있다.
관계라는 이름의 모든 전쟁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쪽은 언제나 약자이거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때리는 사람은 맞는 사람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타인을 의도적으로 억압하거나 고통을 주는 가해자는 드물다. 대개 우리가 받는 상처는 상대방과 내가 가진 권력의 차이, 그로 인한 입장의 차이 때문이다. 물론 이 차이를 이해해야 하는 사람은 사회구조적 차원에서든 개인 간 감정의 권력 관계에서든, 힘없는 자다. 이라크 침략을 지지하는 미국인이나, 아내는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남편이나, 지역할당제를 역차별로 생각하는 서울 사람들 모두, ‘가해자’로서의 죄의식보다는 피해의식이 큰 사람들이다. 이들 각자는 특별히 악한 사람들이 아니다. 사람을 고문하면서 옆 동료와 자녀에게 무슨 장난감을 사 줄까를 의논하는 경찰은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일까. 아니, 어떨 때 우리는 나쁜 사람이 될까 정말 누가 ‘악의 축’일까 왜 악은 악을 지목해야만 생존이 가능할까 인간의 역사에서, 개인의 삶 속에서 악의 개념을 정의할 수 있다면, 이 책은 가장 탁월한 저작 중 하나일 것이다. 위험한 매력으로 가득 찬 이 책의 저자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 할 길』 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이 강한 미국의 정신과 의사다. 미국에서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제목은 『악의 심리학』이었다. 악의 심리라는 말이 다소 종말론적이고 심판자적이지만, 이 책은 악에 대한 대단히 정치(精緻)한 다학문적 분석서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악을 접근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이 책의 종교적인 분위기가 어색할 수도 있지만, 읽다보면 저자와 별로 갈등하지 않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강박증, 자폐, 아동학대, 베트남 전쟁, 제노사이드(인종청소)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사례들은 공히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며 성찰적 긴장을 요구한다. 저자는 위험한 책이라고 양해를 구하는데, 내가 보기엔 위협적일 정도다. 스코트 펙은 나의 목에 칼을 들이민다. 악은 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심리와 행위에 내재한다. 권총으로 자살한 형의 죽음에 충격 받은 둘째아들에게 크리스마스에 총을 선물하는 부모의 사례가 나온다. 아들은 이 선물을 자살 명령으로 받아들이지만, 부모는 자기 행동의 의미를 전혀 모른다. 오히려 아이가 문제라고 비난한다. 부모로서의 권력,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고 잘못을 약자에게 미룬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 관계에 참여하는 개인/집단의 사회적 위치와 지위는 다르다. ‘강자’가 그것을 성찰하지 않을 때 ‘가해자’가 된다. 약자의 상처와 고통은 필연적이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악이다. 생각하기를 미루는 것, 생각하지 않는 것, 방관하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악이다. 그는 또한 공격하는 방어 기제, 투사(投射)도 대표적인 악의 모습으로 본다. 자신과 직면하기를 두려워할 때, 자신의 정신적 성장을 피하기 위해 타자를 찾는 순간, 누구나 ‘악의 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한겨레 책과사람, 정희진(여성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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