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온유한 사람이여
온유한 사람이여
서론
모세의 일대기를 읽었다.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으로 살아간 그의 내면을 보고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다. 만약 모세가 애굽에서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는 동족에 대한 연민과 긍휼과 히브리인으로서의 연대의식 없이 애굽에서 호위호식하고 최고의 권력을 누리며 절대자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난 그는 동족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후 애굽사람과 동족을 살인한 후, 민족에 대한 배신감과 하나님께 대한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광야로 던져진 모세.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모세가 지도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진 이유는 애굽의 학문을 배워서가 아니라 보이는 않는 하나님을 보는 믿음을 지녔기 때문이고,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마치 신음하는 백성의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은혜를 주신 것처럼 모세는 신음하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 응답할 수 있었던 지도자였다.
광야1
두 번의 광야를 거치는 모세. 홀로 있는 광야의 시간 동안 자신의 옛사람의 존재를 벗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신을 신으며 자신의 존재를 그 안에 담는다. 지금까지 자신의 이력과 역사를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살아야한다. 모세가 모세될 수 있었던 것은 광야에서의 외로움과 연단의 시간 동안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것이고 그 사귐 가운데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인생은 그 누구도 이런 체험과 만남 없이는 진정한 자아로 살아갈 수 없다.
홀로 있는 광야에서 이전에는 모든 것을 누렸던 그가 이제는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결핍의 시간을 보낸다. 인생은 없다가 있으면 행복해 하지만 있다가 없어지면 버티기 힘들어한다. 그러나 이런 결핍과 축소의 과정은 힘든 시간이지만 인생의 진정한 주인을 보게 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한다. 모세는 광야에서 자신에게 주어졌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철이 들은 것일까? 인생의 밑바닥과 불행과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는 없음을 알고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깨닫는다.
적막한 곳에서 40년의 시간을 보내는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을 대면하고 부르심을 받는다. 이전에도 자주 갔던 호렙산과 익숙한 떨기나무와 광경. 그러나 아주 일반적인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니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되었다. 매일 가는 곳이었고 눈 감고도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산이었는데 하나님이 계시니 거룩한 장소가 되었다. 우리는 특별한 장소를 찾고 색다른 감격을 원하고 이전과 다른 짜릿함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환경을 변화시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에 우연처럼 필연으로 찾아오신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보여주시고 인도해주신다. 우리가 매일 가는 그곳과 그 자리에서 새롭게 만나주신다. 물론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복하는 일과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자가 특별한 곳에 간다고 갑자기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겠는가?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내 눈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해야한다.
광야2
80세가 된 후 모세는 다시 한 번 광야 40년을 보낸다. 이곳에서도 여러 가지 시험과 연단과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더 훈련하고 연단될게 남았나보다.... 그는 백성들에게 분노하고 하나님께 저항하였기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한 번의 격렬한 짜증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죽을 고생한 모세의 헌신에 비하면 너무 야속한 처사 같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서운해 하거나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느보산 꼭대기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며 걸었던 것처럼 가나안에서 펼쳐진 믿음의 세대를 믿음의 눈으로 보며 편안히 눈을 감는다.
지금까지 누구도 모세의 무덤을 찾은 사람이 없다. 아마 무덤이 있었다면 그곳은 성지가 되었을 것이고 인간 모세는 백성들에게 우상 같은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모세는 자신의 죽음 후에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선지자이니 이 정도는 예측했을 것이 분명하고 죽을 날도 알았을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온 것만으로 감사하고 감격인데 하나님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높임 받는 모습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품에서 눈을 감았을 것이다.
모세가 위대한 이유가 무엇일까? 두 번째로 광야를 지나는 동안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과 시비를 보고 있노라면 지도자로서 도망가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정도이다. 최고의 지도자로서 지팡이로 바위를 치듯 모든 분노와 질책을 쏟아놓아야 할 지경이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권력과 권세와 위치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백성들을 쓸어버리겠다고 하는 하나님을 말리며 자신을 죽여주시되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향해 그 특권을 부러워하여 비난하고 정죄하여도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징계하지 않는다. 최고 지도자로서 말 한 마디로 끝내버릴 수 있는 일인데도 하나님께 맡기며 엎드릴 뿐이다. 애굽의 황제를 상대할 때도 그렇고 악한 자들을 대면할 때도 그는 한결같이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고 구하고 엎드린다. 자신이 심판자가 되거나 손에 칼을 묻히는 안타까운 일을 행하지 않는다. 여일하게 관계와 사역과 부당함과 억울함과 고통스런 일에도 하나님께 엎드리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도 하나님 가슴에 안길 뿐이다.
결론
모세가 지도자인 이유가 그의 삶을 보니 이제야 알겠다. 광야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어떤 고통과 환란도 흔들 수 없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강인하고 뿌리 깊고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아니었다. 그의 삶을 보라. 이처럼 기구한 운명이 어디 있는가! 신세를 한탄하고 자신의 태생을 거부하며 동족을 멸시하고 분노의 화신으로 괴물이 되어도 거대한 괴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모세다운 사람이 되어서 모세로서 예수님을 반영하고 예수의 향기를 날리는 인생이 된다. 복되도다 모세여!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을 가진 모세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모든 걸 맡기는 모세가 세상이 보기에 바보 같으나 가장 큰 믿음의 사람이다. 자신을 감추고 예수를 드러내는 사람. 어려운 일에는 앞장서고 박수 받는 일에는 뒤로 물러서는 사람. 한결같이 하나님께 엎드리는 사람. 광야를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로 삼은 사람.... 온유한 사람 모세.... 나도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