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HOME > 서평 > 서평

서평

본회퍼의 그리스도인 삶 안내서

조정의 | 2023.03.17 16:45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스티븐 니콜스/김광남/아바서원/조정의 편집인

에릭 메택시스는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의 부제를 “목사, 순교자, 예언자, 스파이”라고 지었다. 독일의 악명 높은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 교회 성도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직접 본으로 보이고 글로 써서 강력하게 촉구했던 본회퍼에게 ‘스파이’라는 오명(?)이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발키리 작전으로 알려진 히틀러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본회퍼는 그 일에 가담한 이름들 사이에 언급되어 투옥되었고 결국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실제로 본회퍼가 스파이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파이는 그의 가르침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는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 세상 시민과 함께 살면서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기적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와 국가를 극단적으로 분리한 대다수의 독일 기독교 리더들과 달리 종교와 국가를 모두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했다.

1932년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간구하는 공동체의 기도” 중에 본회퍼는 “하나님 나라는 영원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 그러나 새 땅은 현실적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 나라도 이 세상에, 새로운 약속의 땅에, 옛 창조의 땅에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교회의 말씀 안에서 증언하는 부활의 세계, 국가가 가리키는 부활의 세계를, 우리는 장차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분열 상태 그대로 머물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은 전부가 되실 것이며, 그리스도는 자신의 나라를 하나님께 바칠 것이며, 그러면 완전한 나라가 현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디트리히 본회퍼, <성경의 기도서> (복있는사람, 2023), 79p). 그는 세상을 부정하는 둔세주의자가 아니었고, 세상을 맹목적으로 좇는 세속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이 땅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 그 나라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고 가르쳤던 사람이다.

2014년 아바서원에서 출간된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2023년 개정되어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로 제목과 부제가 뒤바뀐 채 출간됐다. 본회퍼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이 책을 저술한 사람은 리포메이션 성경 대학의 학장인 스티븐 니콜스로 교회사를 탁월하게 가르치고 관련 저술을 많이 했으며 본회퍼에 이어 최근엔 R. C. 스프로울의 전기를 쓰기도 했다. 이 책은 본회퍼의 삶보다 가르침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굉장히 신학적이고 교훈적이다. 본회퍼가 열정적으로 외친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떻게 그리스도론(기독론), 교회론, 윤리학이 성경을 근간으로 굳건한 기둥처럼 받치고 서 있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그에 따른 적용과 교훈을 독자에게 거침없이 제시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 이 질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제대로 알아야만 그분을 바르게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니콜스는 본회퍼의 세계가 기독론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처형, 부활의 명백한 사실과 함의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빚는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신 것처럼 겸손히 아버지께 의존하여 살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처럼 고난을 끌어안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실천하고,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소망을 자기 소망으로 삼아 어떤 상황에서든지 부활의 소망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본회퍼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신학자였다. 오늘날 지나치게 개인주의적 성격을 띠는 기도, 성경, 고백, 성례가 공동체 안에서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선포한 사람이 바로 본회퍼다. 그는 사실 공동체의 소중함을 감옥에서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느꼈을 것이다. 기도는 서로의 짐을 짊어지기 위한 기도이고, 성경은 피차 가르치고 선포하고 권면하기 위한 것이며, 공동체의 고백으로 신학을 말과 삶으로 실현하고, 성례를 통해 공동체에 주시는 하나님 은혜를 함께 맛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본회퍼 사상의 가장 큰 장점은 세속성에 있는데(나쁜 의미가 아니라 바른 의미에서), 일과 결혼, 정부와 교회 모두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스도인은 잠시 하나님 나라 백성에 맞춰 살다가 대부분의 시간에는 땅에 맞춰 살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 모든 관계(결혼 생활을 포함하여), 세워진 국가나 교회 안에서의 활동 모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사는 것이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은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일터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가정의 주인도 주님이시다. 국가와 교회에서도 주님은 최고의 자리에 앉으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해,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본회퍼는 저항 신학자로 알려졌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고, 악한 정부에 대항했다. 많은 사람이 그래서 본회퍼를 인용하며 저항을 요구하고 두둔하려 한다. 하지만 스티븐 니콜스가 이 책을 통해 바르게 지적한 것처럼, 본회퍼의 저항은 궁극적으로 국가나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자꾸 잊어버리는 옛사람, 지나치게 개인주의로 흐르는 죄인의 본성,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려는 악인의 성질에 대한 거룩한 반항이 본회퍼 사상의 핵심이었다. 요컨대 나는 나를 바꿀 뿐이고, 그렇게 공동체가 변화되며, 하나님께서 개인과 공동체와 국가가 변화되는 일에 앞장서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르겠는가? 먼저 그 길을 뒤따른 본회퍼의 바른 안내를 이 책을 통해 받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