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창세기에서 출바벨론을 보다
창세기에서 출바벨론을 보다
창세기는 전통적으로 인류의 기원과 이스라엘의 시작을 다룬 책으로 인식해 왔다. 1-11장까지는 원역사로 우주와 인간과 만물의 시작을 다루는 부분이다. 12-15장까지는 족장들을 통해 펼쳐지는 이스라엘의 시작과 믿음의 행진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본서는 기존의 해석을 인정하고 수용하지만 창세기와 성경을 더욱 풍성하고 은혜롭게 볼 수 있는 시각과 틀을 제공해준다. 성경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저자의 깊은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의 기사는 저자의 감정과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거나 천사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은 것도 아니다. 성경은 저자의 전 인생과 감성과 지식과 은사를 활용하여 하나님의 감동으로 지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시고 성령님께서 감동감화하셔서 저자는 자신의 수준과 실력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과 작문실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그 기원이 하나님이고 주 예수님을 통해 성령님에 의해 저자에게 역사되어졌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자가 하나님의 영으로 글을 쓰지만 서술되는 시대배경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술하는 시대의 독자를 위해 책을 썼다는 것이다. 서술되는 시대의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라 그 시대의 수신자가 일차 독자라는 것이다.
물론 오경을 제외한 구약의 책들과 신약서신들은 저자가 서술되는 시대를 배경으로 그 시대의 독자를 위해 작성하였다. 그러나 창세기의 저자는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도 아니고 야곱과 이삭과 함께 살았던 인물도 아니며 더더욱 아담을 만나본 사람도 아니다. 애굽에서의 삶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광야에서의 행렬은 귀로만 들었던 역사이다. 그래서 창세기의 저자는 아브라함과 족장의 시대의 배경보다 그와 동일한 시대에 사는 자를 위해 일차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본 책의 저자 민경구 교수는 창세기를, 성경의 배열순서도 하나님의 뜻과 신학이 있다고 믿으며, 히브리 성경의 배열을 따라 출바벨론의 관점으로 해석한다. 필자는 이런 해석을 본 적이 없었는데 저자의 관점과 해석을 따라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과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창세기의 독자들에게 충분한 신앙적 교훈과 은혜가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브리 성경의 마지막은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의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대하 36:22-23) 고레스칙령으로 종결된다.
그리고 그 이후에 히브리 성경의 역사는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개역개정을 가지고 있기에 이후에 에스라-느헤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은 순서가 다르게 배열되어서 포로 귀환의 역사가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때 창세기의 수신자가 되는 포로귀환의 공동체는 그 은혜로운 출바벨론의 역사를 시작함에 있어서 창세기가 감동이 되고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필자는 창세기가 제2의 출애굽이라 불리우는 출바벨론만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창세기와 그 본문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와 구원과 교훈과 훈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창세기를 출바베론이라는 고정적인 관점으로만 볼 때 그 사건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놓치고 무리한 적용과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위험도 보였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 배열의 신학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 관점은 우리에게 성경을 보는 눈을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스토리를 보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제사장 나라를 세우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볼 수 있다. 실제 창세기 독자들은 선조들의 시대배경을 아는 것을 넘어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을 얻고 감동하였을 것이다. 인류와 민족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창세기를 보며 민족의 재시작을 울리는 말씀에 용기와 힘을 얻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이 외에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들이 있다. 저자가 원문과 문맥을 근거로 차분하고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고대근동의 배경을 따라 왕을 대신하는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가 인간으로 이해했다. 물론 이것도 문화와 배경지식을 가지고 적절한 해석이지만 저자는 고대의 이방형상의 의미를 넘어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의미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대부분 이스마엘을 부정적인 인물로만 여기고 있는데 성경을 통해 그에게도 임한 하나님의 축복을 설명하고,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사이에서도 대부분 보디발의 아내를 악녀로만 알고 있는데 보디발의 직위와 그 아내의 답답했던 속내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흥미있고 유익한 내용들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창세기를 새롭게 보고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더 풍성히 접하길 기대한다.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며 살아야 하는 성도에게 성경이 말하는 소리를 일차적으로 들을 수 있는 안내를 해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