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부검과 해부의 차이
부검과 해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부검은 이미 죽은 시신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해부는 살아있는 것을 대상한다. 부검과 해부는 영어 단어상으로는 실수하기 좋을 정도로 비슷하다. autopsy와 antomy... 단어상으로 비슷하지만 그 단어가 갖는 의미와 방향성은 다른 듯 싶다.
톰 레이너의 전작인 ‘죽어가는 교회를 부검하다’가 더 이상 죽어가는 교회가 생기지 않도록 이미 생명을 다한 교회의 시신을 통해 죽음으로 몰아간 사인을 찾는 것이라면 ‘살아나는 교회를 해부하다’는 죽을 뻔하였다가 다시 살아나는 교회를 통해 다른 죽어가는 교회를 살릴 방법을 찾자는 희망에서 해부의 시도가 나온다.
부검이나 해부는 하는 과정은 비슷해 보이지만 이미 죽은 시신에 대해는 더 이상의 기대치가 없지만 해부는 생명이 있기에 그곳에서 소망을 찾는다. 한쪽은 죽어감을 막는 것이라며 또 다른 한쪽은 생명을 부어놓는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살아나는 교회를 해부하다’(‘살아난’이 아니라 ‘살아나는’이다. 앞서가 현재의 상태라면 후자는 진행형이다. 현재의 상태는 꼭 지금 희망적이라 말할 수 없다)는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망적이다. 살아나는 교회를 언급하지만 살아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와 과정이 요구되기에 이 책은 전작처럼 죽어가게 만드는 요인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그저 죽어가는 것을 막는 급급함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적극성을 보여준다. 어떤 때 이 희망과 적극성에 나타난 방법들이 그저 수적 부흥이나 부흥처럼 비쳐지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재활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훈련과 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실천성과 실제적인 방법들이 제시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은 이것을 이루기 위해 교회의 힘만으로는 될 수 없음을 전작에서도 다룬 기도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교회의 성장을 지향하지 않는다(종종 이런 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다루는 책들 대부분이 기도를 다루긴 한다. 하지만 적지않은 이들이 기도를 강조하면서도 그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 책은 저자의 전작과 더불어 짝을 이루어 읽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