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청교도 지도자가 목회의 본질을 밝히다
리처드 백스터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참 목자상>(원제: ‘개혁된 목회자’, The Reformed Pastor)은 목회자의 자아 성찰과 목회 자세에 관한 위대한 고전이다. 그는 교회와 회중을 가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가족에 대해서 부모로서의 교역을 수행하는 것이 목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어버이로서의 목사는 일방적으로 무엇을 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목사)는 부드럽고 겸손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침과 동시에 교훈이 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백스터에 따르면 “목회 하는 데에 있어 주요한 문제는 일반적으로 영적인 문제, 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문제나 양떼를 구원하는 문제”이다. 목회자는 양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들의 감독관이다. 그의 사명은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귀하에 여기며 그들을 보살피는 일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는 “가족이 한가할 때 무엇을 하는지, 기도는 할 줄 아는지, 성경이외 다른 경건한 서적은 읽고 있는지를 살펴서 가족들이 모두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가장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고 성도들도 그리 하도록 살펴야 한다”고 했다.
백스터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설교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설교를 통해서 그가 목회한 도시를 변하게 했으며, 영혼을 치료하는 목회자의 모델이 되었다. 그가 목회한 키더민스터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가족은 교리문답을 공부하고 가정예배을 드렸으며, 회중은 성경과 경건서적을 가까이했다. 백스터는 정기적으로 심방을 하면서 소그룹 사역을 했고, 권징을 신실하게 시행하였다.
그는 목회자의 언행일치를 강조했다: "아, 목회자들 중에 설교는 무척 조심스레 하면서 그 삶은 부주의하게 사는 사람을 나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설교를 매우 세심하고 정확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설교에는 흠잡을 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실천의 문제로 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저들은 교회 밖으로만 나오면 부주의해져서 언행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얼마나 큰 불명예가 초래됩니까."
특히 그는 목회자의 덕목으로서 ‘겸손’을 강조했다. 목회자는 자신이 최고의 지식의 소유자인 것처럼 그의 주장만 내세워서는 안 되며 교인들과 의견이 서로 의견이 엇갈린다고 해서 그들은 경멸해서는 안된다. 교만한 천서를 쫓아내신 하나님은 교만한 설교자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는 자신이 종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악하고 분명한 죄 가운데 하나는 교만입니다. 이 죄는 우리 중 아주 훌륭한 목회자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는데 다른 이의 교만보다 목회자의 교만은 더욱 심각하고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는 교만이 죄의 뿌리하고 했다. 교만은 죄의 뿌리가 되어 다른 모든 죄를 양육한다. 이 뿌리에서 목사들의 시기와 투쟁과 불평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교만한 사람은 배울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리처드 백스터는 목회의 모든 과정이 양떼들에 대한 부드러운 사랑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목회자는 그의 기쁨이 신자들의 유익에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 안에 이루어지기까지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가 진실하게 양떼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면 그들은 무슨 말이나 순종하고 견디며 목회자를 따를 것이라는 것이다.
<강단의 거성들>의 저자 도널드 디머레이는 <참 목자상>이 “목회자의 과업에 대한 고전적 문헌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했고, 목사요 찬송가 작시자(209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인 필립 도드리지(Philip Doddridge, 1702-1751)는 말하기를, 젊은 목회자는 모두 목회 일선에 나가기 전에 반드시 이 책을 숙독해야 한다고 했다.
백스터가 설교자로서 후대에 남긴 가장 유명한 교훈은 아마도 설교자가 “죽어가고 있는 자들에게 죽어가고 있는 자로서의” 동정심을 가지고 진리를 전하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백스터의 청교도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교리에 대한 단순한 동의보다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목회자의 덕목을 제시한 설교자 리처드 백스터
리처드 백스터는 1615년 11월 12일 잉글랜드 슈롭셔(Shropshire)의 로우턴(Rowton)에서 태어났다. 금세기 최후의 청교도라고 불리는 제임스 패커는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목사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를 가리켜, 청교도의 실제적이고 경건한 가르침을 가장 잘 전한 목회자, 전도자, 그리고 저술가라고 평가했다. 백스터는 1638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1641년부터 1660년까지 키더민스터(Kidderminster)에서 목회를 했고, 후에는 찰스 2세가 즉위하자 궁정 목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사도행전 20:28을 그의 목회 좌우명으로 삼았다.
백스터는 1638년에 영국 국교회(성공회)에서 안수를 받았으나 실은 비국교도 목사였다. 그는 영국 국교회내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나 일단의 예배 의식과 규율에 얽매이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영국 시민전쟁 당시 그는 의회파를 지지하였으나 그 후 그는 올리버 크롬웰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1660년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자 그는 궁정목사가 되었으며 교회 안에서 비국교도를 보호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그 일로 인하여 그는 1685년 투옥되어 18개월의 옥살이를 해야 했다.
키더민스터(Kidderminster)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그는 그 도시 안에 있는 모든 교단의 성직자들을 모아 하나의 협회를 구성하였다. 그래서 그는 영국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조로서 자주 이야기되고 있다.
그는 늘 그의 죽음의 문턱에서 있는 건강문제로 인하여 "죽어가는 사람으로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살아있는 설교를 하게 만들었다. 그의 모든 설교는 양심과 심령을 겨냥한 설교였으며, 불같은 열정을 가지고 설교하였다. 그는 죄 회개를 강력히 촉구하였고, 죄의 비참함을 절대적인 거룩의 차원에서 표출시켰다. 백스터는 그의 눈에 마치 천국과 지옥을 보는 것처럼 설교하였다. 그의 메시지를 들은 자는 분명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1691년 말까지 그의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설교를 하였고 후에는 매일 자기 집에서 문을 열어놓고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렸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설교를 듣도록 하였다. 그는 매일 매일을 그의 생애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는 런던시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주님! 이 불쌍하고 무지한 이도시를 긍휼히, 긍휼히, 긍휼히 여기소서". 그의 나이 76세인 1691년12월 8일 주님의 평강 가운데서 백스터는 눈을 감았다. 그의 시신은 먼저 간 그의 부인이 잠든 뉴 게이트가에 있는 크라이스트 교회(Christ Church) 뜰에 안장되었다.
<더 읽어볼 책>
리처드 백스터 지음, 최치남 옮김, 《회개했는가》, 규장, 2008.
리챠드 백스터 지음, 최치남 옮김, 《회심》, 지평서원, 2005.
리처드 백스터 지음, 김기찬 옮김, 《성도의 영원한 안식》, 크리스챤다이제스트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