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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믿음과 행위라는 균형추
거룩한 열정/존 비비어/윤종석/두란노/[북뉴스]
오래 전 리뷰를 통해 의미를 되새겼던 책을 다시 꺼내놓고 읽은 건 최근 겪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늦게 포도원을 찾아든 품꾼에게도 동일한 삯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새삼 가슴을 복받치게 했다. 방언의 은사가 덤으로 주어졌고, 그 과정에서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는 말씀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됐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을 향한 열정 가운데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그 여정에 존 비비어의 『거룩한 열정』이 또 다른 깨달음을 주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이 일었던 것이다.
존 비비어는 '의도'와 '욕심'을 구별해내고 있다. 아무리 선한 의도(또는 의지)가 있다해도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바라는 만큼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목사가 있었다. 담배를 끊기 위해 그런 자신을 회중 앞에서 고백하고, 수없이 기도하던 그였지만 정작 같은 문제가 있던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로 끊을 수 있었던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에 분개했단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말만하고 끊을 욕심은 없었던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그후로 다신 담배를 피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회에 갈 때마다, 또한 어떤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내 안에선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여기까진 좋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런 생각만으로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몇 달이 가버린다. 의지는 있지만 그 의지가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 건 저자의 말대로 욕심 때문이다. 편하게, 물론 그것이 편한 것이 아니라는 게 나중에 밝혀지지만, 앉아서 신앙서적을 읽는다든지, 교제하고 만다든지 하는 일견 크리스천적인 행위로 마감하는 것 등등의 유사 신앙 행위를 버리지 않는 데서 하나님의 은혜는 설자리를 잃고 만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무작정 피동적으로 받아야 하는 입장에만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오르기 위해선 옷을 빠는 성결이 있어야 했다. 성결은 이스라엘 시대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의무인 것이다. 누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이야말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의무를 방기할 수 있는 차원의 것도 아니다.
믿음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따르는 합당한 행위 또한 필요함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과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외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믿음의 허구성을 돌아보면 양자 사이의 균형이 왜 필요한지 보다 분명해진다. 믿음은 이웃 사랑이라는 실천으로, 또한 동역이라는 실제로 바뀌어야 한다.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는 성경 말씀은 그런 경우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은 '연단된 금'과 '옳은 행실을 나타내는 흰옷', '그분의 눈으로 보게 하는 안약'을 사는 데서 출발한다. 모두 성결한 삶을 위한 필수 도구이다. 그것들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결한 동역자를 찾으신다. 불완전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을까 싶지만 하나님 편에선 그게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셨으며, 멀리는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구애하듯이 우리를 찾으신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고자 열망함이 마땅하잖을까.
성결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최소한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를 원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건 전적으로 우리 속에 있는 작고 큰 죄 때문이다.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또한 우리가 벗고자 원하는 그 죄악에서 벗어나려는 부단한 믿음의 경주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안다고 믿으면서도 실제 영적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부분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일러주고 있다. 더불어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적절하게 드러내 보이는 통찰력으로 번득인다. 이에 못지 않게 '믿음'과 '행위'라는 균형추를 어느 한쪽, 특히 믿음으로만 옮겨 놓고 있던 신앙적 오류를 바로잡아주는 탁월한 미덕을 갖추고 있다.
글 김정완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오래 전 리뷰를 통해 의미를 되새겼던 책을 다시 꺼내놓고 읽은 건 최근 겪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늦게 포도원을 찾아든 품꾼에게도 동일한 삯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새삼 가슴을 복받치게 했다. 방언의 은사가 덤으로 주어졌고, 그 과정에서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는 말씀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됐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을 향한 열정 가운데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그 여정에 존 비비어의 『거룩한 열정』이 또 다른 깨달음을 주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이 일었던 것이다.
존 비비어는 '의도'와 '욕심'을 구별해내고 있다. 아무리 선한 의도(또는 의지)가 있다해도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바라는 만큼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목사가 있었다. 담배를 끊기 위해 그런 자신을 회중 앞에서 고백하고, 수없이 기도하던 그였지만 정작 같은 문제가 있던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로 끊을 수 있었던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에 분개했단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말만하고 끊을 욕심은 없었던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그후로 다신 담배를 피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회에 갈 때마다, 또한 어떤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내 안에선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여기까진 좋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런 생각만으로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몇 달이 가버린다. 의지는 있지만 그 의지가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 건 저자의 말대로 욕심 때문이다. 편하게, 물론 그것이 편한 것이 아니라는 게 나중에 밝혀지지만, 앉아서 신앙서적을 읽는다든지, 교제하고 만다든지 하는 일견 크리스천적인 행위로 마감하는 것 등등의 유사 신앙 행위를 버리지 않는 데서 하나님의 은혜는 설자리를 잃고 만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무작정 피동적으로 받아야 하는 입장에만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오르기 위해선 옷을 빠는 성결이 있어야 했다. 성결은 이스라엘 시대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의무인 것이다. 누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이야말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의무를 방기할 수 있는 차원의 것도 아니다.
믿음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따르는 합당한 행위 또한 필요함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과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외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믿음의 허구성을 돌아보면 양자 사이의 균형이 왜 필요한지 보다 분명해진다. 믿음은 이웃 사랑이라는 실천으로, 또한 동역이라는 실제로 바뀌어야 한다.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는 성경 말씀은 그런 경우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은 '연단된 금'과 '옳은 행실을 나타내는 흰옷', '그분의 눈으로 보게 하는 안약'을 사는 데서 출발한다. 모두 성결한 삶을 위한 필수 도구이다. 그것들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결한 동역자를 찾으신다. 불완전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을까 싶지만 하나님 편에선 그게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셨으며, 멀리는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구애하듯이 우리를 찾으신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고자 열망함이 마땅하잖을까.
성결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최소한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를 원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건 전적으로 우리 속에 있는 작고 큰 죄 때문이다.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또한 우리가 벗고자 원하는 그 죄악에서 벗어나려는 부단한 믿음의 경주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안다고 믿으면서도 실제 영적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부분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일러주고 있다. 더불어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적절하게 드러내 보이는 통찰력으로 번득인다. 이에 못지 않게 '믿음'과 '행위'라는 균형추를 어느 한쪽, 특히 믿음으로만 옮겨 놓고 있던 신앙적 오류를 바로잡아주는 탁월한 미덕을 갖추고 있다.
글 김정완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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