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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복음진리의 횃불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원광연/크리스챤다이제스트/[북뉴스]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독일의 종교개혁은 성만찬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표명에서 충돌하게 되었다.
특히 16세기의 정치적 혼란으로 하이델베르크에 칼빈주의자들이 속속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결과 하이델베르크에는 루터파와 칼빈파와 쯔빙글리파가 혼합되어 발전되는 양상을 갖게 되었다. 이들 간 신학 논쟁의 주요 요점은 성찬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한 임재의 양식에 있었다. 루터가 주장한 “공재설”에 대한 입장 표명에 따라서 각 분파는 심하게 충돌하게 되었다. 바로 이런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사람이 프레드릭 3세(Frederick Ⅲ)였다.
프레드릭 3세는 각 교파를 화해시키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칼빈주의 신학에 많은 호감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신학적인 혼란을 제거하고 또한 후손들의 건전한 종교교육에 건전한 기초가 될 수 있는 신앙교육서를 제정하고자 하는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처럼 독일의 선제후인 프레드릭 3세(Frederick Ⅲ)의 명령에 의하여,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교수인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Zacharius Ursinus)와 궁정 설교자인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에게 본 요리문답을 작성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개혁 교회의 모든 지역에서 폭넓게 호응을 받았다. 이후 개혁교회는 이 요리문답을 신앙교육 체계의 기초로 삼았다. 저자의 말처럼 요리문답은 어떤 특정한 교리의 초보적인 내용에 대해서 입의 말로 주어지는 간단하고도 초보적인 교육을 뜻한다. 즉 기독교 신앙의 첫째가는 원리들에 대한 교육 체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요리문답의 체계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글들에서 추출하여 낸 기독교 교의를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하여 간단하고도 평이하게 해명하는 것이다.
저자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결국 우리의 위로와 구원에 그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요리문답이 지닌 교의의 대상이시며 최고선이신 하나님 자신의 탁월하심을 알게 되고, 그런 교육 과정을 통해서 그 최고선을 알며 그에게 속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무한히 더 중요하고 바람직한 것임을 깨닫는 놀라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최고선을 누리는데 있다고 말한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위로는 내세에서 - 물론 이 땅의 삶에서도 이미 맛을 보기 시작하지만 - 이 최고선을 충만하고도 완전히 누릴 것에 대한 확신과 분명한 기대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이 최고선은 그것을 누리는 자들을 진정 복된 자들로 만들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은 영원히 버림받은 비참한 자들로 만들 것이다.
저자의 확언처럼 이 교의를 완전한 체계와 틀을 지성적으로 터득하게 될 때, 우리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견고한 복음진리의 토대 위에 굳게 서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의 교의 전체의 골자를 분명하고도 체계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소명을 받은 교회의 교사들에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이 책이 다소 무겁고 딱딱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 영혼을 건강하고 살찌게 해줄 것이 분명하다.
몇 가지를 부언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책에 나타난 은혜 복음의 감동과 감격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주는 율법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설명은 과연 개혁신앙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다. 하지만 재세례파(아나밥티스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는 저자의 관점은 교회사적인 검증을 통해 재고해야 할 부분이다. 교회사의 배경이 없는 독자들은 여과 없이 저자의 관점을 따름으로써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 필자는 교회사를 연구하면서 재세례파 또한 복음 안에서 형제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또한 저자는 유아세례에 대해 맹목적인 루터식 해석을 따르고 있는데, 그 점 또한 재고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내용들은 저자가 속한 시대적인 분별의 한계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시대의 거울을 통해서 역사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시대적 신학의 결함과 한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몇 가지 사항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늘날 헛되이 구원을 약속하는 다양한 (기독교)철학과 여러 이단 종파들이 주창하는 다른 복음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복음진리의 기수 역할을 할만하다. 또한 누군가 이 책을 높이 들어올리기만 한다면 복음진리의 횃불로 환히 타오를 것이다. 당신도 이 대열에 참여하지 않겠는가?
이종수/ 크리스찬북뉴스 부운영자
저자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독일의 종교개혁자, 신학자.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나 1550-1557에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2)의 작성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요리문답은 멜란히톤의 정신이 가득 들어있으며, 그가 좋아한 신학자 페트루스마터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1557년에 제네바에서 오래 머물면서 공부한 뒤 브레슬라우에서 가르쳤고, 1559년에 그곳에서 성례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여 면직당하였다. 베르미글리의 요청으로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1561년에 우르시누스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교수로 임명하였다. 우르시누스는 1568년까지 그것에서 교의학을 강의하였다. 1570년에 프리드리히는 우르시누스의 긴급한 요청에 따라 자기 관할 지역에 대한 교회권징안을 채택하였다. 우르시누스는 1577년에 노이슈타트에서 잔키우스와 계속해서 함께 있기 위해 하이델베르크를 떠났다. 두 사람의 영향으로 멜란히톤의 <신학총론>은 하이델베르크의 개혁파 목사들에게 대대로 표준도서가 되었다.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독일의 종교개혁은 성만찬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표명에서 충돌하게 되었다.
특히 16세기의 정치적 혼란으로 하이델베르크에 칼빈주의자들이 속속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결과 하이델베르크에는 루터파와 칼빈파와 쯔빙글리파가 혼합되어 발전되는 양상을 갖게 되었다. 이들 간 신학 논쟁의 주요 요점은 성찬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한 임재의 양식에 있었다. 루터가 주장한 “공재설”에 대한 입장 표명에 따라서 각 분파는 심하게 충돌하게 되었다. 바로 이런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사람이 프레드릭 3세(Frederick Ⅲ)였다.
프레드릭 3세는 각 교파를 화해시키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칼빈주의 신학에 많은 호감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신학적인 혼란을 제거하고 또한 후손들의 건전한 종교교육에 건전한 기초가 될 수 있는 신앙교육서를 제정하고자 하는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처럼 독일의 선제후인 프레드릭 3세(Frederick Ⅲ)의 명령에 의하여,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교수인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Zacharius Ursinus)와 궁정 설교자인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에게 본 요리문답을 작성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개혁 교회의 모든 지역에서 폭넓게 호응을 받았다. 이후 개혁교회는 이 요리문답을 신앙교육 체계의 기초로 삼았다. 저자의 말처럼 요리문답은 어떤 특정한 교리의 초보적인 내용에 대해서 입의 말로 주어지는 간단하고도 초보적인 교육을 뜻한다. 즉 기독교 신앙의 첫째가는 원리들에 대한 교육 체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요리문답의 체계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글들에서 추출하여 낸 기독교 교의를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하여 간단하고도 평이하게 해명하는 것이다.
저자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결국 우리의 위로와 구원에 그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요리문답이 지닌 교의의 대상이시며 최고선이신 하나님 자신의 탁월하심을 알게 되고, 그런 교육 과정을 통해서 그 최고선을 알며 그에게 속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무한히 더 중요하고 바람직한 것임을 깨닫는 놀라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최고선을 누리는데 있다고 말한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위로는 내세에서 - 물론 이 땅의 삶에서도 이미 맛을 보기 시작하지만 - 이 최고선을 충만하고도 완전히 누릴 것에 대한 확신과 분명한 기대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이 최고선은 그것을 누리는 자들을 진정 복된 자들로 만들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은 영원히 버림받은 비참한 자들로 만들 것이다.
저자의 확언처럼 이 교의를 완전한 체계와 틀을 지성적으로 터득하게 될 때, 우리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견고한 복음진리의 토대 위에 굳게 서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의 교의 전체의 골자를 분명하고도 체계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소명을 받은 교회의 교사들에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이 책이 다소 무겁고 딱딱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 영혼을 건강하고 살찌게 해줄 것이 분명하다.
몇 가지를 부언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책에 나타난 은혜 복음의 감동과 감격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주는 율법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설명은 과연 개혁신앙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다. 하지만 재세례파(아나밥티스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는 저자의 관점은 교회사적인 검증을 통해 재고해야 할 부분이다. 교회사의 배경이 없는 독자들은 여과 없이 저자의 관점을 따름으로써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 필자는 교회사를 연구하면서 재세례파 또한 복음 안에서 형제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또한 저자는 유아세례에 대해 맹목적인 루터식 해석을 따르고 있는데, 그 점 또한 재고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내용들은 저자가 속한 시대적인 분별의 한계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시대의 거울을 통해서 역사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시대적 신학의 결함과 한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몇 가지 사항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늘날 헛되이 구원을 약속하는 다양한 (기독교)철학과 여러 이단 종파들이 주창하는 다른 복음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복음진리의 기수 역할을 할만하다. 또한 누군가 이 책을 높이 들어올리기만 한다면 복음진리의 횃불로 환히 타오를 것이다. 당신도 이 대열에 참여하지 않겠는가?
이종수/ 크리스찬북뉴스 부운영자
저자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독일의 종교개혁자, 신학자.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나 1550-1557에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2)의 작성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요리문답은 멜란히톤의 정신이 가득 들어있으며, 그가 좋아한 신학자 페트루스마터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1557년에 제네바에서 오래 머물면서 공부한 뒤 브레슬라우에서 가르쳤고, 1559년에 그곳에서 성례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여 면직당하였다. 베르미글리의 요청으로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1561년에 우르시누스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교수로 임명하였다. 우르시누스는 1568년까지 그것에서 교의학을 강의하였다. 1570년에 프리드리히는 우르시누스의 긴급한 요청에 따라 자기 관할 지역에 대한 교회권징안을 채택하였다. 우르시누스는 1577년에 노이슈타트에서 잔키우스와 계속해서 함께 있기 위해 하이델베르크를 떠났다. 두 사람의 영향으로 멜란히톤의 <신학총론>은 하이델베르크의 개혁파 목사들에게 대대로 표준도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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