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서평
영원히 보장된 우리의 구원
성도의 견인/존 오웬/조은화/생명의 말씀사/[권지성]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변함없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영원히 사랑하겠노라는 고백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체면에 걸린 듯 강한 믿음으로 바라본다.
사랑의 충만한 감정 안에서 우리는 영원토록 이 약속이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순간 믿지만, 우리는 수 많은 기혼자들의 고백과 연애 기사 속에서 이것이 거짓임을 잘 알고 있다.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연인들이라고 생각했으나, 얼마나 많은 스타들과 유명인들이 이혼으로 그들의 약속을 파기하는가. 누구도 그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고 아무것도 깨뜨릴 수 없다고 굳게 다짐하지만, 그 약속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머지않아 드러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의 강도와 결실도 처음의 애정에서 많이 멀어지고 그 충만한 감정들도 바로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인간사에서 가장 깊다고 여겨지고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도 깨어지는 데 하물며 다른 약속들이야 불 보듯 뻔하다. 선거철만 되면 듣는 정치인들의 공약들, 회사 CEO들의 임직원들을 향한 밝은 연봉 인상의 약속들, 부모와 자녀간의 약속들, 과학자의 백신에 대한 약속들, 운동선수의 승리에 대한 약속들, 국가와 국가간의 조약들 등 수 없이 많은 약속들이 있지만, 냉정한 이성의 소유자라면 이것이 거짓임을 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약속은 어떠할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들을 과연 지키실까?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까?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았는데, 내 구원은 진짜 보장되는 것일까? 의심스럽다. 우리의 구원은 정말 보장 받은 것일까? 우리의 구원은 안전한가? 한 번쯤은 깊은 고민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는 마지막 때에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모두 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는데, 나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예수 믿은 다음에 죄 많이 짓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못 살고 있는데, 숨은 죄가 많고 하나님을 기만하고 있는데,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안전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에 이러한 깊은 고민에 빠져 본 적이 있다. 의인이 천국에 가는데, 이 얻어진 구원이 하나님나라 갈 때까지 지켜 질 수 있을까? 지금도 잘 지켜지지 않는데.. 라며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는 모든 것이 Yes가 된다. 이 세상에 그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로마서 8장의 진리를 부여잡고 늘 다시 일어선다. 죽음 이후의 소망을 품는 것도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구원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그 근거는 하나님에게 있다. 우리가 아무리 죄 가운데 있고,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더라고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다. 이미 다 끝난 경기와 싸움이며, 이것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도록 우리를 견고히 붙드셔서 천국까지 데려갈 것이므로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다.
책의 특징
청교도들의 대부분의 저작들이 긴 호흡으로 한 가지의 주제를 쥐어짜서 서술하여 본래 그 진리를 완전히 설명하려 하는 것이 그들의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이지만, 이 책의 무게는 가볍다. 내가 아는 오웬의 저술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1983년 ‘ The Banner of Truth Trust’의 출판물을 요약한 축약본이었다. 이럴 수가! 오웬의 ‘성령론’을 샀을 때 맛본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고 하면 출판사에 너무 미안한 말인가.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오웬의 글을 소개하고 싶은 출판사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웬지 너무 아쉬운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사골 국과 같이 깊은 묵상과 성경 구석 구석 ‘견인’에 대한 위대한 진리들을 정리하고 체계화 시켰을 원 저서를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현대인의 입 맛에 맞추어 놓은 것을 잘 했다고 해야 할지 잘 못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골 국이 너무 만들기 힘드니까, 그냥 분말로 만들어서 진공 상태로 패킹하여서 편의점에서 사서 먹으라는 식으로 만든 것 같아서 허탈하다. 나는 요즘 소화 불량이라서 제대로 만든 음식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아쉬움은 여기에서 접자. 거대한 3시간짜리 영화를 전부 다 본다면, 정말 신나는 일이겠지만, 예고편이 본 편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가 많기에 조금은 위안을 삼자. 요약본이지만, 이 책과 교리들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이 책의 저자가 오웬인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무게감을 주는 책이다. 또한, 전체적인 책의 구조와 인용된 말씀만을 보더라도 원저의 분위기와 진리의 능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음이 확실하다.
존 오웬, 그는 영혼의 의사라고 불려졌던 17세기 청교도들 중에 가장 인간의 마음을 깊이 이해한 심리학자이며, 저술가이자, 목회자였다. 그의 깊은 저술 활동은 수도원의 영성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학자의 면모만을 취한 채 연구하기 때문에, 그 진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무너진 옥스퍼드의 학문적인 상황을 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으며, 의회 정치의 실현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싸운 정치가 였으며, 이단 사상과 그릇된 신학적 조류와 싸워서 이겨버린 영적인 거인이었다. 17세기의 영적인 거장이자, 청교도의 황태자인 그는 바로, 대부분의 청교도들이 가진 공통점인 치열한 투쟁과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오늘의 우리들의 영적인 피상성은 깊은 지성에 있지 않다. 오늘날 청교도주의의 복고에는 이것이 빠져있다. 치열한 삶과 진리를 지키려는 투쟁이 그것이다. 이것이 있을 때에만 허약하고 힘 없는 진리가 아닌 변화의 원동력으로서의 참된 경건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조
존 오웬은 성도의 견인이라는 주제를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의 공동의 사역으로 보고,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격려한다. 1장에서는 성도의 견인의 의미를 다룬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에레미야 31장 34절을 통하셔서 장래에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31: 34)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말씀을 백성들의 속에 두고, 그 마음에 기록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1:33)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항상 하나님만을 경외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렘32:39)
2장에서 6장까지는 성도의 견인에 하나님의 속성, 목적, 언약, 약속, 맹세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설명하며, 7장부터 9장까지는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과 중보사역, 그리고 성령님의 견인에 있어서의 역할을 설명한다. 10장에서는 성도의 견인은 반드시 순종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으로 반드시 이어진다고 역설하고 있다. 왜 견인의 교리가 반드시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순종의 동인이 되시며, 참된 순종은 견인의 교리를 붙든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전체 구조 속에서 삼위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반응이 동반하여 이러한 견인이 이루어 짐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반응은 어떠한가? 마지막, 11장에서는 배교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반박을 들고 있다. 견인 교리의 부당성에 대해서 반박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그릇된 성경 해석을 반박하고 견인 교리가 참된 복음이며 성경의 진리임을 오웬은 분명히 드러낸다.
“만약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거듭나기 전에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의 정죄가 따르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라.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가 거듭나고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그들은 그렇게 될 것이며, 그 중 아무도 죄 가운데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P. 78)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고 흔들릴 수 없다. 참된 성도라면 말이다. 바로 이 책을 당장 사라.
저자 존 오웬 (Jhon Owen)
1616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12세 때에 옥스포드에 있는 왕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1640년대에 올리버 크롬웰의 궁중목사로 사역하다가 옥스포드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교회(Christ Church)의 학장이 되었다. 1660년 이후, 극심한 박해 기간 동안 청교도들을 이끌었다. 그는 청교도의 경건 중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1683년에 생을 마쳤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변함없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영원히 사랑하겠노라는 고백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체면에 걸린 듯 강한 믿음으로 바라본다.
사랑의 충만한 감정 안에서 우리는 영원토록 이 약속이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순간 믿지만, 우리는 수 많은 기혼자들의 고백과 연애 기사 속에서 이것이 거짓임을 잘 알고 있다.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연인들이라고 생각했으나, 얼마나 많은 스타들과 유명인들이 이혼으로 그들의 약속을 파기하는가. 누구도 그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고 아무것도 깨뜨릴 수 없다고 굳게 다짐하지만, 그 약속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머지않아 드러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의 강도와 결실도 처음의 애정에서 많이 멀어지고 그 충만한 감정들도 바로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인간사에서 가장 깊다고 여겨지고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도 깨어지는 데 하물며 다른 약속들이야 불 보듯 뻔하다. 선거철만 되면 듣는 정치인들의 공약들, 회사 CEO들의 임직원들을 향한 밝은 연봉 인상의 약속들, 부모와 자녀간의 약속들, 과학자의 백신에 대한 약속들, 운동선수의 승리에 대한 약속들, 국가와 국가간의 조약들 등 수 없이 많은 약속들이 있지만, 냉정한 이성의 소유자라면 이것이 거짓임을 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약속은 어떠할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들을 과연 지키실까?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까?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았는데, 내 구원은 진짜 보장되는 것일까? 의심스럽다. 우리의 구원은 정말 보장 받은 것일까? 우리의 구원은 안전한가? 한 번쯤은 깊은 고민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는 마지막 때에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모두 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는데, 나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예수 믿은 다음에 죄 많이 짓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못 살고 있는데, 숨은 죄가 많고 하나님을 기만하고 있는데,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안전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에 이러한 깊은 고민에 빠져 본 적이 있다. 의인이 천국에 가는데, 이 얻어진 구원이 하나님나라 갈 때까지 지켜 질 수 있을까? 지금도 잘 지켜지지 않는데.. 라며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는 모든 것이 Yes가 된다. 이 세상에 그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로마서 8장의 진리를 부여잡고 늘 다시 일어선다. 죽음 이후의 소망을 품는 것도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구원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그 근거는 하나님에게 있다. 우리가 아무리 죄 가운데 있고,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더라고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다. 이미 다 끝난 경기와 싸움이며, 이것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도록 우리를 견고히 붙드셔서 천국까지 데려갈 것이므로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다.
책의 특징
청교도들의 대부분의 저작들이 긴 호흡으로 한 가지의 주제를 쥐어짜서 서술하여 본래 그 진리를 완전히 설명하려 하는 것이 그들의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이지만, 이 책의 무게는 가볍다. 내가 아는 오웬의 저술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1983년 ‘ The Banner of Truth Trust’의 출판물을 요약한 축약본이었다. 이럴 수가! 오웬의 ‘성령론’을 샀을 때 맛본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고 하면 출판사에 너무 미안한 말인가.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오웬의 글을 소개하고 싶은 출판사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웬지 너무 아쉬운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사골 국과 같이 깊은 묵상과 성경 구석 구석 ‘견인’에 대한 위대한 진리들을 정리하고 체계화 시켰을 원 저서를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현대인의 입 맛에 맞추어 놓은 것을 잘 했다고 해야 할지 잘 못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골 국이 너무 만들기 힘드니까, 그냥 분말로 만들어서 진공 상태로 패킹하여서 편의점에서 사서 먹으라는 식으로 만든 것 같아서 허탈하다. 나는 요즘 소화 불량이라서 제대로 만든 음식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아쉬움은 여기에서 접자. 거대한 3시간짜리 영화를 전부 다 본다면, 정말 신나는 일이겠지만, 예고편이 본 편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가 많기에 조금은 위안을 삼자. 요약본이지만, 이 책과 교리들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이 책의 저자가 오웬인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무게감을 주는 책이다. 또한, 전체적인 책의 구조와 인용된 말씀만을 보더라도 원저의 분위기와 진리의 능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음이 확실하다.
존 오웬, 그는 영혼의 의사라고 불려졌던 17세기 청교도들 중에 가장 인간의 마음을 깊이 이해한 심리학자이며, 저술가이자, 목회자였다. 그의 깊은 저술 활동은 수도원의 영성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학자의 면모만을 취한 채 연구하기 때문에, 그 진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무너진 옥스퍼드의 학문적인 상황을 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으며, 의회 정치의 실현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싸운 정치가 였으며, 이단 사상과 그릇된 신학적 조류와 싸워서 이겨버린 영적인 거인이었다. 17세기의 영적인 거장이자, 청교도의 황태자인 그는 바로, 대부분의 청교도들이 가진 공통점인 치열한 투쟁과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오늘의 우리들의 영적인 피상성은 깊은 지성에 있지 않다. 오늘날 청교도주의의 복고에는 이것이 빠져있다. 치열한 삶과 진리를 지키려는 투쟁이 그것이다. 이것이 있을 때에만 허약하고 힘 없는 진리가 아닌 변화의 원동력으로서의 참된 경건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조
존 오웬은 성도의 견인이라는 주제를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의 공동의 사역으로 보고,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격려한다. 1장에서는 성도의 견인의 의미를 다룬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에레미야 31장 34절을 통하셔서 장래에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31: 34)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말씀을 백성들의 속에 두고, 그 마음에 기록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1:33)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항상 하나님만을 경외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렘32:39)
2장에서 6장까지는 성도의 견인에 하나님의 속성, 목적, 언약, 약속, 맹세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설명하며, 7장부터 9장까지는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과 중보사역, 그리고 성령님의 견인에 있어서의 역할을 설명한다. 10장에서는 성도의 견인은 반드시 순종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으로 반드시 이어진다고 역설하고 있다. 왜 견인의 교리가 반드시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순종의 동인이 되시며, 참된 순종은 견인의 교리를 붙든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전체 구조 속에서 삼위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반응이 동반하여 이러한 견인이 이루어 짐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반응은 어떠한가? 마지막, 11장에서는 배교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반박을 들고 있다. 견인 교리의 부당성에 대해서 반박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그릇된 성경 해석을 반박하고 견인 교리가 참된 복음이며 성경의 진리임을 오웬은 분명히 드러낸다.
“만약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거듭나기 전에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의 정죄가 따르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라.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가 거듭나고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그들은 그렇게 될 것이며, 그 중 아무도 죄 가운데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P. 78)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고 흔들릴 수 없다. 참된 성도라면 말이다. 바로 이 책을 당장 사라.
저자 존 오웬 (Jhon Owen)
1616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12세 때에 옥스포드에 있는 왕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1640년대에 올리버 크롬웰의 궁중목사로 사역하다가 옥스포드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교회(Christ Church)의 학장이 되었다. 1660년 이후, 극심한 박해 기간 동안 청교도들을 이끌었다. 그는 청교도의 경건 중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1683년에 생을 마쳤다.
- 8904154847_1.gif (0B) (0)
2,664개(97/13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