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국 개신교 역사의 최초 72가지 사건

한국 개신교 14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출간된 옥성득 교수의 『한국교회 첫 사건들: 한국 개신교 역사의 최초 72가지 사건』은 단순한 역사 서적을 넘어 한국교회의 자기성찰과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2016년 출간된 『첫 사건으로 본 초대 한국 교회사』에 수록된 45가지 사건에 27가지를 추가하여, 첫 방문 선교사인 귀츨라프(1832년)로부터 시작해서 첫 한글 성경 전서의 역사(1910)까지의 사건을 풍성하게 조명하고 있다.
역사가로서의 옥성득 교수와 그의 연구 여정
옥성득 교수는 30여 년 동안 고문서실과 도서관을 누비며 한국기독교사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온 학자이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프린스턴 신학교, 보스턴 대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현재 UCLA에서 한국 근현대사와 한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의 연구는 실증적 자료에 기반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한국교회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한국교회 첫 사건들』은 단순한 사료 모음집이 아니다. 한국교회 첫 사건들』은 한국교회 안에 편만해 있는 역사적 적당주의에 도전하고 초기 교회사를 읽는 바른 방법을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또한 교계에 널리 알려진 초기 한국 개신교의 역사적 사실 가운데 잘못 전해진 오류를 검증하고, 근거 없는 신화와 치우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여 바로잡으려고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이 책은 한국 개신교가 시작된 후 1910년까지 일어났던 첫 사건 72가지를 시간 순서에 따라 다루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으로 기독교가 전래된 과정부터 시작하여 첫 방문 선교사 귀츨라프(1832년), 첫 평양 방문 선교사 토마스(1866년), 첫 세례 교인들(1879년), 첫 한글 기독교 문서(1881년), 첫 한글 복음서(1882년)와 같은 초기 사건들을 소개한다. 이어서 첫 내한 선교사 알렌(1884년), 첫 목회 선교사 언더우드(1885년), 첫 개신교회 설립(1885-1886년), 첫 장로교회와 감리교회 설립(1887년), 첫 성탄절과 성찬식(1887년) 등 한국 땅에서 기독교가 뿌리내리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첫 반기독교 운동인 영아소동(1888년), 선교사의 첫 죽음(1890년), 첫 한글 설교문(1890년), 한국인의 첫 기독교식 결혼식(1890-1894년) 등 한국 사회와 기독교의 만남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관심이 가는 사건 중 하나는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사문진(현 화원유원지)에 피아노가 최초로 소개된 사건이 등장하는 부분(62. 대구에 온 첫 피아노, 1900년)이다. 미국장로회 사이드보텀 선교사 부부에 의해 낙동강을 거슬러 피아노가 사문진으로 운반한 것을 기념하여 매년 사문진 나루터에서 100대의 피아노를 설치해 공연을 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사에서 위치와 평가
이 책의 가치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옥성득 교수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 왔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특히 첫째, 최고, 1등, 일류가 되기를 원하는 한국인의 욕망이 교회사 서술에도 영향을 미쳐 자기 교회나 교단이 어떤 일에서 최초였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비판적 접근은 한국교회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옥성득 교수는 교회의 설립일은 신앙 공동체의 출발이 아닌 교회가 조직된 날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선교 초기에 설립된 교회들이 발간한 자체 역사서를 검토해 보면 최초를 차지하기 위해 사료를 무리하게 해석한 부분이 많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첫 선교사의 정의에 대해서도 첫 방문이나 임명일이 아닌 첫 주재, 정착 및 임명지 도착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명확한 기준 제시는 한국교회사 연구의 객관성과 엄밀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미치는 영향: 역사 의식의 회복과 미래 방향 제시
옥성득 교수의 연구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역사 의식의 회복과 자기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지난 30년간 가파르게 쇠퇴하고 최근 내란 사태로 깊은 내상을 입은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초대 30년 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존재할 이유를 모색하고, 역사 의식의 빈곤이라는 병을 치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진단한다. 특히 그는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을 1920-1930년대 쇠퇴기와 비교하며 역사적 교훈을 찾는다. “1890~1900년대 한국기독교 1세대가 급성장한 후에 1920년대를 거치며 1930~40년대에 한국교회가 몰락하는 데, 1980~90년대 한국교회가 급성장한 후에 또 한 세대를 지나며 분열과 몰락이 반복되는 현실과 비슷하다”며, “과거 전환기를 잘못 맞아 쇠퇴했듯이 2000년대 전환기를 잘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한국교회가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옥 교수는 비관만 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교회의 역사적 뿌리에서 긍정적인 전통을 발견하고 이를 계승할 것을 제안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교회, 기독교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토착화한 교회, 민족독립에 헌신한 교회, 선한 자본주의 운동을 일으킨 교회, 문명 개화적인 교회, 사회에 희망을 주었던 교회 등의 긍정적 전통을 계승해 이 땅에 교회를 다시 세워나가기를 당부한다.
결론: 역사를 통한 미래 모색
『한국교회 첫 사건들』은 단순한 역사 자료집을 넘어 현재 한국교회의 위기를 진단하고 미래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옥성득 교수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 인고의 발효 시대를 살아가는 길은 그 첫 세대로 돌아가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건을 불러내어 첫 믿음, 첫 소망, 첫사랑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제안한다. 또한 불법과 허위와 교만의 사해로 흘러가는 대세를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는 역주행(逆走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며, 낯설지만 과거의 풍성하고 다양한 첫 사건을 만날 때, 현재의 허무하고 밋밋한 종교화 된 교회는 흔들리고 깨어진다고 말한다.
40년 가까이 한국교회사를 연구해온 옥성득 교수의 이 책은 한국교회가 자신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 뿌리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찾아내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어가는 시기에, 초기 한국교회가 보여준 선교적 열정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토착화의 노력은 현대 한국교회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며 새 일을 행하시는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멋진 미래를 상상하도록 초대한다. 한국교회의 첫 사건들을 통해 교훈을 배우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