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자유게시판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글- 김승태 장로님

북뉴스 | 2011.05.30 15:17
내 사랑 선영이를 가슴에 묻다




"아빠! 아빠가 일을 많이 시켜서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장학금을 50%밖에 못받게 되었잖아. 억울해 죽겠네.


그래서 이번에는 수석을 하려고 학점 신청을 많이 했어. 이번 학기에는 일 많이 시키지 마라."


너무나 좋아했던 독일어 공부를 위해 야심을 품고 지난 3월 3일 한신대학교 3학년 개강 첫수업을 하러 가던 날,


오전에 저는 선영이를 데리고 내과병원에 들렸습니다. 며칠 전부터 다리에 빨간 반점이 2월 28일 혼자 피부과에 갔었는데


혈액전문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고 추천을 해 주어서 내과에서


혈액검사를 의뢰하고 영등포역까지 태워주고 학교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후 한 시쯤 진료했던 병원에서 선영이의 혈액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조금 더 검사를 해야 하니 다시 내원해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선영이는 급히 아내와 함께 오전에 진료를 받았던 내과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선영이가 위중한 병에 걸린 것 같다며


국립암센터에 소견서를 써주고 미리 연락을 해 놓을 테니 응급실로 빨리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날 입원한지 열흘 후에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확진을 받았는데


국립암센터 열액종양센터 담당의사는 골수이식을 받으면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동생들의 혈액검사를 해 본 결과 막내 영준이와 골수가 맞아 이식을 실행했던 것이 결국 실패로 끝났고,


지난 4월 30일(토) 오전에 숨을 거둠으로써 근본적으로 병을 고쳐주려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항암치료에 들어가면서 오히려 선영이의 죽음을 재촉하여 세상을 떠나 보낸 격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했는지...




선영이가 세상을 떠난 지난 토요일부터 주일까지 비가 몹시도 많이 내렸습니다.


5월 1일(일) 오후 4시 정성진 목사님은 입관예배를 인도하시면서 하늘도 슬퍼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2개월간 선영이를 살리기 위해 저희 부부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지난 5월 2일(월) 벽제승화원에서 화장하고 벽제하늘문추모공원에 안치했습니다.


딸을 안치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내다본 차창밖의 세상 풍경은


따뜻한 봄날에 세상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심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반대로 아내는 그런 평화로운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무엇엔가 홀린듯, 딸을 누구에겐가 유괴당한듯,


너무나 황당하게 작별인사 한 마디 못하고 이렇게 딸을 떠나보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정말 선영이와의 삶은 23년간의 꿈이었습니다.


골수이식실에서 감염위험 때문에 처절한 고통과 싸우던 딸을


유리벽 밖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 아픔을 참기만 하라고 전화를 통해 기도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치료를 의사가 해야 했지만 제 기도에 아이의 변화가 없음을 느꼈을 때,


저는 거룩한빛광성교회 성도들을 비롯하여 Facebook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기도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순절 기간을 맞아 많은 분들이 함께 금식하며 기도로 간구함에도 불구하고 선영이의 병은 더 악화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영이가 간 천국은 좋은 곳이고 그곳에는 고통도 없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아직 이 모든 것이 잔인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한 순간, 사랑의 하나님이 무서운 하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비전과 의욕속에 살아왔던 딸이었기에 그럴 것입니다.




지난 4월 20일, 그 전날 선영이를 중환자실로 보내고 불안감에 휩싸였을 때,


저는 차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으로 대답해 주실 것을 구하며 성경을 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성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전도서 9:11-12)


저는 이 말씀을 읽고 통곡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무서웠고 이 말씀이 선영이와 저에게 적용되는 것이 너무나 애통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틀린 것이 없습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영이를 떠나보내며 아쉽고 슬퍼하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영이를 잃은 비통함에 빠져 있는 저에게 많은 사람들의 위로가 정말 가슴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화장하는 날 벽제로 국제이웃선교회 노득용 목사님과 행복교회 조규남 목사님이 찾아 오셔서


"하나님께서 장로님에게 선영이를 앗아가시는 것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상에서 죽게 해야만 했던 아버지 하나님의 고통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위로도, 해석도 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전해 주셨습니다.


아마 그 말씀이 저를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선영이는 독서광이었는데, 솔직히 선영이의 유품이 거의 책 뿐입니다.


자기가 좋아했던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시리즈>, <나니아 연대기> 등은 책과 영화를 열 번 이상이나 번갈아 보기도 했지요.


<타이타닉>은 영화와 음악을 거의 마스터했죠.


그 아이는 그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살았습니다.


자신을 꾸미는 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음악, 뮤지컬, 영화, 여행, 커피, 멋진 카페에서의 식사하기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있는 돈을 항상 탕진(?)해왔습니다.


음식점에서 저와 밥을 먹을 때에는 자기 돈으로 사먹을 수 없는 비싼 메뉴만 시켰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하나도 미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미래에 다양한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미래를 보며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자기의 관심사와 욕구에 항상 몰입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저의 불만을 절저히 무시했습니다.


세원고등학교에 들어간 선영이는 연극반에 들어가 자기 인생의 할 일을 찾았다며


너무나 열정적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연기도 배우고, 사물놀이도 배우고, 음향효과, 영상물 제작 등 선영이는 관심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마스터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연극반이 아이들의 정서교육과 인격교육에는 무관심한 것을 보고


연극을 강제로 그만 두도록 했습니다.


이때 선영이는 큰 방황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2005년 마침 기독교출판의 국제교류를 맡고 있던 제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관에 설치하기로 한 부스를 관리하기 위해 가면서


선영이를 데리고 2주간의 독일, 프랑스,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갔지만 그곳에서 점점 독일 문화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메세를 통해 그 아이가 좋아하는 책의 세계가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가진 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 로텐베르크의 크리스마스 샵의 아름다운 상품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너인슈반슈타인 성,


스위스 인터라켄의 알프스 산, 취리히, 루체른의 아름다운 호수 등을 바라보며


아마 그곳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선영이는 제게 제안을 했습니다.


"아빠 나 독일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 독일어 배우게 해 주면 나 마음 잡고 공부할게."


"그래 좋아."


그래서 선영이는 고2 겨울방학부터 남산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어머어마한 의욕으로 마스터해나갔습니다.


선영이는 여러 대학 중에서 하이델베르크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한신대학교 독어독문과를 택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미 몇 년 선배만큼 독일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후 선영이는 세계 각국의 문화와 여행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독서로 세계 곳곳에 자기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의 리스트를 만들어갔습니다.


작년에는 일본 오사카에 혼자 여행을 하고 했지요.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아이스크림을 무진장 좋아했던 선영이는


바리스타가 되어 미래에 멋진 카페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선영이의 유품과 그 아이가 좋아했던 책들을 유리장에 잘 간직했다가


이 숙제도 언젠가 미래에 풀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민들레 영토가 세상에 유명해지기 전에 신촌 본점과 대학로점에 서점을 디자인하여 꾸며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민들레 영토의 오너가 돈이 없어서 제가 디자인을 하여 목수를 불러다가 무료로 직접 시공을 해 주었었지요.


그때 저도 먼훗날 아주 분위기있는 카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선영이를 위해 이 숙제도 가슴에 담아봅니다.


아마 멋진 김선영 테마 북 카페가 될 것입니다.


선영이는 저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는 밤을 지새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밤샘은 제가 선영이 보다 한 수 위입니다.


저는 돈이 안 되는 일로 현실을 꾸려와야 했기 때문에


더 많은 밤을 지새웠죠.


언젠가 무균실에 있던 선영이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빠, 우리 자리가 바뀌었어. 아빠가 이리로 들어와야 하고, 내가 거기에 서 있어야지 맞잖아."


"그래 맞다 맞아. 이제라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결국 그 자리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제가 시킨 일을 하고 돈을 지불해줄 때 쯤이면 그 아이는 이미 돈을 쓸 계획을 다 마친 상태였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다시 벌 수 있으니까 당장 새로 개봉하는 뮤지컬도 주로 R서에 가서 보고


자기가 해 보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당장 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밉지 않았습니다.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한 많은 경험을 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제가 아이디어를 주어 더 부추겼는지도 모릅니다.




선영이는 위선과 가식을 싫어했습니다.


그 아이가 싫어하는 것은 남들이 아무리 유명하고 좋다고 해도 그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감에 불타던 선영이에게 사악하고 오만한 사람들은 쓰레기로 보였을 뿐입니다.


선영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신앙인은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님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계신 것처럼 정목사님은 저희가 단지 기도부탁만 드렸을 뿐이었는데


선영이가 입원한 다음날, 무균실로 옮기는 날, 골수이식하는 날, 중환자실로 옮긴 날, 입관예배, 발인예배까지 인도해 주시며

세상에서 환송하는 모든 과정에 자신의 딸처럼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정목사님의 바쁜 일정을 나무나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의외였고 파격이었습니다.


또 엄숙하고 틀에 박힌 것을 싫어하는 선영이는 거의 정장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선영이 표현처럼 자기를 낚아가신 하나님 앞에서 엄숙한 것을 싫어하는 선영이는


천국에서 어떻게 처신할 지 저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아마 또 다른 선영이만의 천국사랑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 아이만의 반항과 사랑법을 보고


하나님도 저처럼 종종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하니 선영이의 미래는 닫혀졌지만


순간순간마다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그 자세만큼은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무엇무엇에 열정을 바쳤는지 시간을 두고 추적해 볼 생각입니다.


그것이 저와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교훈이 될 터이니까요.


지난 토요일 오전 선영이가 세상을 떠난 후, 국림암센터에는 장례식장이 없어서 일산백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 장례준비를 했습니다.


오후 한 시가 넘어서부터 주일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이 조문을 오셨습니다.

아마 선영이를 안타깝게 바라본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보다 더 처절하게 우셔서 오히려 저희가 그 분을 달래야 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선영이를 하늘문추모공원에 안치하고 집에 돌아와서 선영이의 방에 들아가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는데 오직 달라진 것은 선영이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하늘나라로 간 선영이를 저희 가족과 선영이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가슴에 묻습니다.


아마 선영이를 제 가슴에서 쉽게 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러 지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영이를 향한 제 사랑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영이를 사랑하고 기리는 방법을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먼저 선영이의 학비 융자 등 뒷정리를 깨끗이 하고


선영이의 유품들을 정리하면서 차츰차츰 하나님께 인도하심을 구할 것입니다.


지난 3월 3일 선영이가 병원에 입원한 이래 꼭 두 달 동안 김선영의 투병을 위해 많은 분들이 선영이를 위해 눈물로 기도에 동참해주셨습니다.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님, 8교구담당 목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 주셨던 신동명 목사님, 119중보기도팀,

가장 먼저 달려와서 이제까지 기도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던 스포츠선교위원회 김정환 전도사님과 위원장 김용욱 집사님과 팀장님들,

청년부 윤형진 전도사님과 조성아 전도사님,

8교구와 842목장 식구들,

제가 섬기는 고등부 이현재 목사님과 정호석 집사님과 교사님들,

병상의 선영이에게 사랑과 격려의 편지를 보내주신 정시몬 목사님과 사랑부,

하영이가 섬기는 어와나의 김정준 전도사님과 중등부 교사님들, 목요찬양팀의 박민기 전도사님, 소극장선교회의 손덕기 집사님,


선영이가 입원한 아래 매일 성경 말씀을 문자로 전하며 격려해주신 허훈 장로님,

처음부터 끝까지 치료비와 장례의 모든 절차를 염려하고 곁에서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셨던 박영우 장로님, 김옥현 장로님, 이원재 장로님,


제 아내 원성삼 집사의 곁을 지키며 함께 울고 끝까지 장례식장을 챙겨주셨던 강금희 권사님과 정명희 권사님, 백효숙 권사님 등,


아내를 위로하고 지켜주셨던 꽃꽂이팀 김장미 권사님과 회원들,


저희가 선영이를 간호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맛있는 밑반찬을 만들어 주신 김인호 권사님과 신현숙 집사님,


함께 뜨겁게 기도하며 함께 해주신 새가족섬김팀 성혜옥 목사님과 팀원들,


아내와 믿음생활을 같이 하고 있는 64여선교회,


선영이가 재생불량성빈혈로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외에서 달려와

자신의 아들 익수도 같은 병인데 10년 이상이나 잘 살고 있다며

희망과 위로와 기도를 해 주신 국제이웃선교회의 김수일 목사님과 고종원 전도사님과 회원들,

중병에 걸린 선영이를 온 가족이 뭉쳐서 간병하는 것이 가족해체가 늘어나는 현대에 귀감이 되다며 소개해 주신 국민일보,

수차례에 걸쳐 전파를 통하여 선영이를 위해 중보기도를 방송해 주신 극동방송,

기독교세계관동역회의 손봉호 이사장님과 김승욱 교수님과 조성표 교수님과 회원들,

문화선교연구원의 임성빈 원장님,

선영이에게 문화소비자에서 생산자의 맛을 처음 깨닫게 해 준 세원고등학교 연극반 선생님들과 선후배들,

선영이가 가장 좋아했던 신일중학교 박세현 선생님과 동창생들,

선영이의 혈소판이 모자랄 때 학교게시판에 올려 도움을 준 한신대학교 독어독문과의 교수님과 학우들,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의 박상진 소장님,

아시아복음선교회의 손신기 목사님과 회원들,


한국기독교출판협회 박경진 회장님과 이사님들과 회원님들,

한국기독교서점협의회의 배성한 회장님과 회원들,

21세기기독교출판동우회의 민상기 회장님과 회원들,

자녀들을 위해 적금을 들었다가 해약하고 어디에 쓸까 기도하다가 선영이의 소식을 듣고

저희들이 알면 부담스러워할까봐 무명으로 전액을 보내주신 분,

제 아내가 결혼하며 떠난지 20년이 넘었는데도 항상 기도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동천교회의 교우들,


선영이가 입원한 처음부터 장례식까지 선영이를 지켜주었던 선영이 친구 김한울과 친구들,

선영이의 아픔은 내 자식의 아픔처럼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내의 곁을 지켜준 하영이 친구 엄마들과 친구들,

우리 양가의 친척들.


선영이가 혈소판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혈소판 헌혈을 해주겠다고 나섰던 300명 이상의 헌혈약속자들 등등

지면 관계상 나열할 수는 없지만 선영이를 사랑하고 아껴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영광을 홀로 받으시고, 제 딸 선영이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품어주소서.


선영아! Gute Fahrt!


23년간의 꿈같았던 세월, 너를 떠나보낸 다음에야 꿈에서 깨어나 주변을 돌아보지만

너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구나.

후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그곳에는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님 곁에서 너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을 거다.

아빠는 그분들에게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거든. 아마 너도 잘 품어주실 거다.

선영아! 사랑한다. 그리고 정말 정말 행복했다. 잘 가라.

그리고 수호천사가 되어서 네 동생 하영이와 영준이도 꼭 지켜주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뒤늦게 소식을 듣고 눈물로 위로를 보내주신 김하늬선교사님,

지금까지도 혈소판을 제공해 주시겠다고 전화를 주시는 따뜻한 분들이 있어서 기쁩니다.


여러분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2011년 5월 3일 선영이 아빠 김승태, 엄마 원성삼 올림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94개(3/15페이지)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54 오래도록 서평책이 도착하지 않아... 나상엽 2013.11.05 19:29
253 답글 RE:오래도록 서평책이 도착하지 않아... 북뉴스 2013.12.02 09:06
252 등업 부탁드립니다. 김정현 2013.06.28 01:06
251 답글 RE:등업 부탁드립니다. 북뉴스 2013.06.30 08:27
250 편집자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채천석 2013.05.28 00:32
249 등업신청합니다. 고경태 2013.04.24 14:40
248 답글 RE:등업신청합니다. 크리스찬북뉴스 2013.04.25 13:46
247 등업바랍니다 표종선 2013.03.10 17:04
246 답글 RE:등업해드렸습니다 북뉴스 2013.03.10 19:17
245 서평책 신청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재윤 2013.02.14 13:08
244 답글 RE:서평책 신청이 되었으면 합니다. [1] 북뉴스 2013.02.14 20:14
243 독서의 달인의 소개로 가입 하게 됨 감사! 꾸벅 주봉채 2013.02.07 17:25
242 YES24 기독교도서 순위 2012년 7월 17일 현재 북뉴스 2012.07.23 16:27
241 전국의 어린이 도서관 북뉴스 2012.07.17 13:30
240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 디르사 강습회 이정선 2012.07.13 19:37
239 검색방법 김영찬 2011.06.01 10:13
238 "독서가 영육간의 상처를 치유한다" 북뉴스 2011.05.30 16:58
>>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글- 김승태 장로님 북뉴스 2011.05.30 15:17
236 답글 RE: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글- 김승태 장로님 유순정 2014.02.11 13:16
235 신부의 기도 - 교회는 예수님의 생명을 낳는 어머니입니다. 이정선 2011.03.23 09:4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