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김성욱개혁신학을 사랑하여 관련 서적과 교회사를 통해 신앙선배님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고, 조국 교회에 참된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삼송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중고등부 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다.

인내

김성욱 | 2019.02.23 10:13

인내

 

기독교는 적극적으로 불의에 항거하고,

세력을 규합해서 대항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저항은 아주 소극적인 측면이며,

적극적인 측면은 '인내'이다.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된 박해에 그들은 세력을 형성하여 반대자들과 싸우지 않았고, 때로는 침묵하고 항상 인내하며, 자발적으로 화형대와 사자굴로 향했다.

 

위그노들이나 청교도들, 그리고 조선 초기에

교회가 일제 강점기하에 엄청난 성장으로 국내

1의 세력으로 규모가 커졌음에도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님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가 연합하여 항일운동에 뛰어드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복음을 가진 교회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힘을 가지고 상대와 대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복음을 가지고 참된 인내를 보여준 것이다.

 

주님께서 힘이 없으셔서 고난 당하셨겠는가?

 

칼빈은

"하나님의 복음이 사람들을 무장시켜 난동과 폭동을 일으킨다는 비난을 받는 것보다 우리 모두가 멸절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종들의 재를 뿌려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월권과 폭력은 오직 황폐함을 초래하고 말것입니다."라고 말했고, 루터도 다르지 않았다.

 

이것을 사소한 생활에 적용해본다면,

조금만 불합리하고 손해를 받는 일이 생기면 즉각적으로 합리적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일들이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아마 어떤 사람이 손해보지 않기 위해 기업에 컴플레인을 요구할 때,

그가 기독교인인 걸 안다면 상담하는 사람과

요구하는 당사자가 서로 놀랄지도 모르겠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다만 진리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박해와 손해를 기꺼이 감당했던 신앙선배님들의 모습은 천연기념물이 된지 오래다.

 

20세기의 토저 목사님이 그 시대 사람들의 특징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움'이라 하셨는데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조급함, 비열함, 냉정함, 조롱, 수군댐, 무정함, 판단함, 사랑보다 자기 의를 앞세움....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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