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조정의초등학교 5학년 때 유평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2007년 유평교회에서 보내심을 받아 미국 아이오와 주에 있는 엠마오 성경 대학교에서 성경공부 일년 코스를 마치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 LA에 있는 The Master’s Seminary(마스터스 신학대학원)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쳤습니다. 2013년 6월부터 유평교회에서 청년회교사와 주일설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5년 12월 27일 공식적으로 유평교회 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아내 김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강해서인 <야고보서>와 칼럼집 <정직한 크리스천의 솔직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이것을 생각하라(2)

조정의 | 2023.10.20 08:27

지난 칼럼에서 나는 ‘교회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는 것’이 좋은 교회를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이라고 밝혔다.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배워 지키는 제자들의 무리이다(마 28:18-20).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이다(엡 1:1). 간단한 등록을 마친 종교인의 무리, 여전히 세상에 속하여 육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행하는 자들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종교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불러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함을 받아 그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들이다(고전 1:2; 갈 1:4). 단순히 교회 다닌 연차가 오래되면 집사 등 일꾼으로 진급하는 조직이나 공동의 취미나 관심사를 가지고 끈끈한 관계를 맺어가는 사교모임이 아니다. 교회를 정확히 정의하지 않는 교회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 엄격하게 말해서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우선순위: 복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는가?

교회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지 않는 문제는 단지 실천적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빈약한 교리나 심지어 잘못된 신학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면 교회가 무엇인지 큰 관심이 없는 교회는 죄인을 성도로 바꾸는 복음의 능력과 지혜를 강조할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는 말이다. 목사나 설교자가 복음 교리를 제대로 알고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예배의 자리에서 올바른 복음이 선포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은혜의 방편(말씀과 기도)에 복음의 은혜가 흐르지 않는 것이다. 말씀 시간에 “하나님”, “예수님”, “은혜”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오지만, 그 속에 죄와 대속의 개념,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의 약속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찾기 힘들다.

설교가 청중에게 감동을 줄 수는 있다. 위로나 도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위로와 도전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단순히 ‘그리스도’라는 말을 붙이면 그만인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과 그 일을 통해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복음, 그 복음이 교회를 영적인 죽음에서 살렸고, 매일을 살게 하는 힘을 주고, 또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하는 산 소망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계속해서 그리스도 중심적, 복음 중심적 설교를 듣고 또 들어야 한다. 마크 데버는 <건강한 교회의 9가지 특징>에서 첫 번째 우선순위로 “강해설교”를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결과적으로 따져 보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만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하나님의 말씀이 개인과 교회로서의 우리의 삶에서 중심을 차지해야 하는 까닭은 성령이 우리 안에 믿음을 창조하시는 데 말씀을 사용하시기 때문임은 물론 성령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시는 데도 말씀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부흥과개혁사, 2007, 69-70pp)

교회는 태어난 순간부터 생존에 필수적인 신령한 젖줄, 복음이 오염되는 위기에 봉착했다. 갈라디아 교회는 믿음으로 얻는 은혜의 복음을 속히 떠나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거짓 복음에 미혹됐고(갈 1:6-10), 야고보는 영지주의에 빠져 특별한 계시에 심취된, 그러나 구원하는 믿음의 합당한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하는 가짜 복음의 강력한 유혹에 시달리는 교회를 꾸짖었다(약 2:14-26). 히브리서 기자는 교회가 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복음에서 어떤 이유로든 떠나 유대교가 말하는 복음으로 돌아가려는 신자들을 강력하게 책망했다. 교회를 위해 기록된 신약 서신서를 가만히 살펴보면 복음은 그들이 이미 아는 것으로 쉽게 단정하고 꼭 필요한 현실적 조언과 구체적인 실천 사항만 늘어놓지 않는다. 정확히 그 반대인데, 항상 그리스도와 복음이 앞서고 충분히 강조한 뒤 자연스럽게 복음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 실제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취한다(특별히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를 보라, 로마서는 이 부분에 있어 탁월한 예가 된다).

안타깝게도 이토록 강조된 복음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켜내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 대형교회 목사가 사역 중반에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발견했다고 양심고백 한 것처럼, 목사 중에서 복음의 능력을 맛보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다. 종교개혁 시대 마틴 루터가 당시 최고의 종교훈련과 교리 교육을 받았음에도 복음의 비밀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 신학 교육이 복음의 일꾼들에게 복음의 정수를 전수하는 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을 통해 인도받을 수많은 영혼들은 어디로 끌려가겠는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가 되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될 뿐이다(마 15:14).

참된 영적 부흥을 부르짖은 마틴 로이드 존스가 비판했던 당시 신학 교육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오늘날 신학 교육은 자유주의와 세속주의(실용주의)에 물들어 있다. 개인의 자유를 불가침 영역으로 삼고 원하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 복음이 약속한 자유라고 말한다. 실제로 개인을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악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복음이 약속한 축복이라고 가르친다. 정말 그런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개인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불가침 영역으로 두고 죄 때문에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뜻대로 원하고 생각하고 행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이 아니었던가? 무엇이든 실제로 우리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복음이 약속한 축복이 아니라 복음이 약속한 실제 축복이 우리의 참된 행복과 만족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의 심각성은 복음에 관한 무지가 아니라 복음에 관한 무관심 때문에 심화된다. 칼빈주의나 개혁주의 신학의 여러 용어와 어려운 개념을 성도들에게 주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의 풍요로운 진리를 모든 신자는 간절히 배우기 원해야 하고 또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 책임이 교회에 분명히 있다. 창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부르시고(중생)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며(칭의),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데까지(영화) 날마다 아들의 형상에 따라 빚어가시는(성화) 복음의 서정을 성도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담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전가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모든 믿는 자에게 전가되었다는 진리와 십자가 대속이 단번에 영원히 성도의 죄책을 해결했기 때문에 성도가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의 균형 잡힌 가르침,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결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죄를 가볍게 여기며 마음껏 죄 가운데 살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바르게 아는 것에 교회는 관심을 갖고 있는가?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라고 경고했다(벧후 3:17).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가 미혹에 이끌려 굳센 복음의 진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베드로는 말한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를 더 깊이 알고 더 풍성히 맛보며 그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하는 것만이 교회가 종말의 고통하는 때를 견디고 굳세게 뿌리내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고 굳건히 서서 교회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므로,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를 선택하라. 단순히 ‘복음’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에서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 반복해서 말하는 교회, 여러 가르침을 통해 복음의 깊이 있는 교리를 성경대로 전수하는 교회, 복음을 실제로 맛본 일꾼들과 성도들을 통해 공동체 전체가 복음으로 하나 되고(한 분이신 주, 하나 된 믿음, 같은 세례, 한 분 하나님), 복음으로 서로를 더 잡아당기는 교회. 교회를 서거나 무너지게 하는 것이 복음 교리라면, 복음이 없는 교회를 선택하는 것은 무너진 교회, 영적 폐허가 된 교회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복음으로 견고하게 세워진 교회, 복음으로 건강하게 살아 숨 쉬는 교회를 선택하라. 이것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적인 우선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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