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채천석서강대 영어영문학과(B. 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다. 국제선교대학원(I. G. S. T., Th. M.)에서 수학한 이후, 총신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신학 석사(Th. M.)와 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Ph. D. Cand.). 총신대학원 교회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한마음교회와 언약교회에서 협동목사로 봉사했으며, 평양신학교와 개혁신학연구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많은 기독교 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사상』, 『17인의 회심사건』(상중하), 『원자료 중심의 교회사』시리즈(심창섭 교수와 공저), 『성경의 바다』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현재 크리스찬북뉴스 발행인 겸 대표로서 출판독서문화 활동과 선교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평화의 구도자 조지 폭스(1624-1691)
폭스는 1624년에 영국 중부의 페니 드레이턴에서 한 방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2살이 되던 해에 제화업자 밑에서 도제생활을 하다 열 아홉 살 때 잉글랜드 내전이 터지자 구도자가 되었다.
그는 당시 영국 교회의 종교적 관습들을 부정적인 태도로 바라보았다. 1649년에 노팅험의 한 교회에서 성령이 모든 권위의 길잡이라고 주장하며 설교하다가 투옥 당했다. 1650년에는 더비에서 ‘신성모독자’라는 죄목으로 투옥되었고, 그곳에서 ‘케이커’(떠는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는 출소 후에 영국 북서부 지역에서 큰 반응을 얻었고 본부를 북서쪽 울버스틴 근처 스워트모어 대학에 두고 활동했다. 폭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여러 번 체포와 구금을 당했는데, 선서를 행하는 일과 십일조를 납부하는 일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폭스는 1649-73년 사이에 무려 8년 간 구금을 당했다. 그는 출감 후 감옥의 공포적인 분위기와 인권 개선을 위한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660년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자 퀘이커교도들은 더 많은 박해를 당했고, 1669년에 폭스는 아일랜드를 선교하고 돌아오던 중 마아거릿 펠과 결혼하였다.
1671-73년에는 북아메리카의 영국식민지를 방문하여 선교하였고, 1677-84년에는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을 순방하며 선교를 했다. 그러다가 1675년에 자신의 생애에 대한 대략적인 개관을 『일기』(Journal)라는 책에 썼다. 그 일기는 역사상의 유명한 자서전 중의 하나다. 본서에는 그가 경험한 여러 가지 종교 체험들과 계시들이 기록되어 있어, 그가 당시 전통주의나 형식주의에 강력히 반대했던 인물임을 뚜렷이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개인적 체험을 권위의 진정한 원천으로 간주하였다. 결국 그가 경험한 내적 체험은 성경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여 당시 청교도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폭스의 내적인 빛에 대한 강조는 평화주의를 가르쳤고, 모든 인간의 상태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했다.
많은 박해 중에서도 폭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와 평화로 맞섰다. 그는 자신의 인격과 문필로 대적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분명히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 옳다고 믿는 것은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밀고 나갔고, 이는 그가 얼마나 순수한 인물이었는지를 반증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또 다른 교회를 창설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으나 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인해 결국 ‘친우회’(퀘이커)라는 조직이 탄생되었다.
그는 1691년 1월 13일에 런던에서 사망하여 번힐 피즈 근처의 퀘이커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가 죽었을 때에 그의 신학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사람들조차도 그가 이룬 평화적 업적과 인격의 순수성을 찬양했다.
윌리암 펜은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뜻 있게 살다가 갔다. 그러나 사랑하는 폭스보다 더 그러했던 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그를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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