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영적 순례 안내서- 내 평생에 가는 길

송광택 | 2004.01.05 00:01
2004년 1월  추천도서/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내 평생에 가는 길
알리스터 맥그래스
복있는 사람, 2003

최근 아침형 인간에 관한 책들이 나왔다. 그 결과 아침 시간의 창조적 사용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신 후 조용히 한 권의 책을 펼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 평생에 가는 길>을 그에게 권하고 싶다.

지난 해 가을에 나온 이 책 <내 평생에 가는 길>은 일종의 여행지도이다. 우리의 신앙여정에는 회의, 유혹, 두려움, 고난, 낮은 자존감 등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 저자는 마르틴 루터, 수산나 웨슬리, 존 번연, 디트리히 본회퍼, C. S. 루이스, 존 스토트 등 우리의 길동무가 되어줄 신앙 선진들의 삶과 가르침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그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법을 발견하도록 인도한다.

본서는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길떠날 준비', 2부는 '광야'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좋든 싫든 우리는 다 여행 중이다... 하나님을 아는 이들의 여정은 좀더 복잡하다"고 말한다. 여행자인 우리들은 이미 앞서 간 자들로부터 끊임없는 격려와 확신을 얻어야 한다. 저자는 10년의 시간을 바쳐 진지한 독서와 묵상을 하는 가운데 기독교의 '값진 진주'의 부요함을 누리는 법을 탐구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깊이 파는 책'이다. 즉, 기독교 신앙에 너무 쉽게 접근하는 방식에 질린 자들을 위해 쓴 책이다(11쪽).

첫째로, 저자는 '영성'이란 주제에 관해서도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영성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방식, 그리고 그 만남과 경험의 결과로 우리 의식과 삶이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영성이란 믿음의 내면화라 할 수 있다. 믿음이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생각과 감정과 생활을 물들이고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20-21쪽)

저자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으로 우리는 신앙생활의 질을 심화시키고 보다 진실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신기한 사랑과 은혜를 충만히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 절박한 필요성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다. 우리는 앞에 놓인 마라톤을 위해 훈련받아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아주 간단하고 쉬어 보이지만 실천에 들어가면 그렇게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영성이 별로 뛰어나지 못한 이들의 희망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떻게 신앙 여정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여행은 이미 시작됐다. 그러므로 잠시 멈추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최선의 준비는 여행이 시작된 후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웬 뚱딴지같은 말인가?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기까지는 문제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는 법이다. 나그네 삶을 겪으면서 우리는 앞에 놓인 도전을 알고 거기에 대비할 수 있다"(22쪽). 길을 가면서 배운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이미 길을 가다가 자신의 미흡한 준비를 깨달은 자들을 위해 썼다.

서구의 계몽주의는 영성의 빈곤화를 초래했다. 읽고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상상과 감정을 희생시키며 이성을 강조했다. "영성이란 사고와 상상과 감정을 조화시켜 신앙의 부요함과 깊이를 온전히 깨우치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의 사고방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꿔 준다"(26쪽).
성경 읽기와 묵상에 있어서도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이 함께 섞여야 한다. "감정에 불을 지피고", "이해를 깨우는" 과정이 성경 묵상이다. 여기서 이해와 감정의 세계가 하나로 만난다. 거기서 훨씬 진실하고 만족스런 신앙생활의 길이 열린다.
중세 말의 작가 색소니의 루돌프(Ludolf of Saxony)에 따르면,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 이렇게 읽어야 한다.

거룩한 잉태의 순간 또 하나의 증인처럼 천사와 함께 그곳에 있으라. 당신을 위해 아기를 잉태한 처녀 마리아와 함께 기뻐하라. 충실한 보호자처럼 그분의 출생과 할례 장면에 요셉과 함께 있으라. 동방박사들과 함께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께 경배하라. 성전에서 부모를 거들어 아기를 안고 바치라. 기적을 베푸시는 선한 목자를 사도들과 함께 따라가라. 복된 어머니와 요한과 함께 그분의 죽음의 자리에 있으라. 그분께 연민을 품고 그분과 함께 슬퍼하라. 경건한 호기심으로 그분의 몸을 만지며, 당신을 위해 죽으신 구주의 상처를 하나하나 더듬어 보라.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찾으라. 그분을 찾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질 때까지 찾으라. 감람산에 제자들과 함께 선 것처럼 승천하시는 그분을 신기하게 바라보라.(29쪽)

저자는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성경을 읽었다. 복음서 이야기가 새로운 흥분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자신을 성경세계 속에 대입하려는 심리적 노력을 통해 사건의 내용이 한층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루돌프의 도움으로 나는 성경 이야기의 여러 중심 인물 곁에 서서, 그들의 눈앞-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지는 인간 구속의 드라마에 동참할 수 있었다"(30쪽).

루돌프는 자신의 접근의 일반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비록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마치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묵상해야 한다. 그럴 때 더 달게 다가온다. 이미 있었던 일을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읽으라. 과거의 행동을 현재인 양 내 눈앞에 가져다 놓으라.

그 결과, 성경읽기가 성경묵상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다시 성경으로 드리는 기도가 됐다. 중세의 유명한 영성작가 귀고 2세(Guigo II)도 이렇게 말했다:

묵상 없이 읽으면 황량하다.
읽지 않고 묵상하면 오류에 빠진다.
묵상 없는 기도는 미지근하다.

그러므로 성경의 개념이나 주제를 대할 때는 이해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무기력한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생생한 실체가 되도록 내 삶에 적용해야 한다. 기독교는 개념만이 아니라 영적 실체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둘째, 저자는 영적 '여행지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지도를 들고 여행에 나선다는 것은 '과거의 지혜'에 의존하는 일이다. 선인들이 어렵게 얻어 낸 지식의 덕을 보는 것이다. 지도의 선과 부호 뒤에는 무수한 개인의 사연이 숨어 있다. 많은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땅을 탐험했다. 영적인 의미에서도 앞서 개척자가 된 이들이 있다.
이 책의 틀은 출애굽이다. 출애굽은 오늘 우리에게도 길잡이와 격려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이 여정을 네 구간으로 나눈다. 각 구간은 세 가지 중심 주제(이정표, 광야, 오아시스)에 대한 묵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우리 각자는 일정이 다르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나만의 독특한 정체성과 하나님과 나만의 특수한 관계가 반영되기 때문이다"(193쪽). 우리가 천성길을 가는 개별적 나그네라는 사실은 인간의 필요가 저마다 독특하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의 필요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본서에 소개된 일반적 접근을 나만의 독특한 상황에 맞춤식으로 심화,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지면상 본서에 소개하지 못했지만, 토마스 아 켐피스, 존 칼빈, 존 웨슬리, 코리 텐 붐 등의 다른 길동무도 언급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나와 '파장이 같거나' '통하는 데가 있는' 작가를 찾을 필요가 있다. "그런 작가들을 찾거든 그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을 신앙여정의 길동무로 대하라. 가능하면 그들의 저작만이 아니라 전기도 읽으라. 그러면 그들도 그리스도인의 삶-그들 저서의 주제가 된-을 살았던 믿음의 남녀임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부딪친 도전, 그들이 받은 격려, 그들이 종종 어렵게 배운 교훈을 통해 배울 수 있다"(194쪽).

부딪치는 광야 체험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룬 주제들은 보편적이고 중요한 것들이다. 회의와 두려움과 실패는 우리들 대부분이 이따금씩 씨름해야 하는 문제다.
"우리는 마치 은둔자인 양 혼자 힘으로 낑낑대며 신앙생활을 해나가려 할 때가 너무 많다. 너무 자만심에 차 도움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보다, 단순히 남들이 나와 동행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소지가 높다. 머나먼 천국길의 걸음걸음마다 앞서간 이들의 모습이 서려 있고 그들의 희비의 눈물로 젖어 있다. 우리는 그들이 이미 경험한 것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이 세상 광야를 그들이 앞서 갔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다. 지금도 우리와 나란히 이 여정을 걷는 자들의 존재를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다"(195-196쪽).

셋째, 우리는 과거의 위대한 영성작가와 사상가들로부터 교훈과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의 가르침은 일종의 '영적 항해일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통찰과 교훈이다. "영적 항해일지는 우리에게 신앙 노정에서 부딪칠 수 있는 굵직한 난관들을 일러주며, 선인들이 터득한 전략들을 잘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또 우리로 하여금 영적 새 힘과 안전을 얻게 해주며 목적지에 최종 도달하는 비전을 품게 해준다"(49쪽).

항해일지는 한마디로 항해사가 항해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공책이다. 다른 배들은 그 길만 따라가면 안전했다. 공책에는 목적지 도달과 귀국 경위가 정확히 적혀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무역로의 항해일지를 '극비 문서'로 취급했다고 한다. 아예 암호로 기록된 것도 있고 작성자만 알아볼 수 있게 일부러 오기(誤記)를 섞은 것도 있다. 비밀에 접근이 허락되지 않은 자들은 딴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숨은 암초에 걸려 파선한 자들도 있다. 하지만 믿을만한 항해일지는 지평선 너머 비밀의 땅으로 가는 안전 항해의 열쇠였다.

물론 모든 항해일지는 각 항해사의 독특한 개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앞서 간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책만 읽고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의 통찰을 내 삶의 렌즈로 여과할 수 있다. 그럴 때 그 통찰은 나만의 신앙여정 위에서 초점을 찾게 된다"(50쪽). 신앙생활에 대리자란 없기 때문이다.

본서는 우리들이 '믿음의 길동무'와 함께 영혼의 순례 여정을 떠나는 법을 자근자근한 목소리로 가르쳐주고 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을 생각하는 '하나의 틀'을 소개한다. 물론 유일한 틀은 아니지만 잠시 멈추어 서서 묵상하고 우리의 신앙을 살피고 '대책을 세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J. I. 패커는 이 책을 가리켜 "여기, 고단한 믿음의 순례길에 우리를 고무하고 격려함으로써 묵묵히 그 길을 걷도록 이끄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보석처럼 빛나는 책이 있다"라고 극찬했다. 저자의 영적 순례 길에서 깨달은 통찰이 담긴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탁월한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필독서로 추천한다.

글/송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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