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소명(The Call)

송광택 | 2018.12.18 20:35


소명(The Call)

오스 기니스 지음,  IVP

 

               우리가 부름 받은 목적을 발견하기

 

통찰력 있는 문화 분석가 오스 기니스(Os Guinness)가 매우 탁월한 저작을 내놓았다. ‘소명은 그에게 지난 30년 동안 중요한 주제였다. 저자는 지난 60년대 초, 주님께 돌아왔다. 그분을 알아 가는 기쁨이 그를 사로잡았지만 마음 한 곳에서는 왜 현대 사회에서는 믿음이 감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너무나 하찮게 취급되는가하는 문제가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 그는 믿음이 역동적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절을 살펴보았고 그것의 동인(動因)이 된 진리가 무엇인지 연구하였다.

그가 연구를 거듭해 갈수록 그 동인으로 보여지는 두, 세 가지의 진리가 계속해서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소명이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한 역사의 발전 -시내 산에서의 유대 민족의 형성, 갈릴리 지방에서의 기독교 운동, 17세기의 종교개혁, 기독교 신앙에 의한 근대적 세계의 형성, 청교도 운동 등- 뒤에는 언제나 소명이라는 진리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와 더불어 소명의 진리는 역사상 다른 어떤 진리 못지않게 개개인과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을 발견했다”(99).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행위전체, 우리의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으로 그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

그런데 소명에 대한 왜곡이 있었다. 첫 번째 왜곡은 그가 구교적(舊敎的) 왜곡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성스러운/세속적인, 높은/낮은 이라는 구분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의 기원은 에우스비우스같은 사람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 그는 이 틀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한그리스도인과 용인된그리스도인이라는 두 부류로 구분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신부, 수녀 그리고 제사장과 같이 소명을 받은사람들이고, ‘용인된 그리스도인이란 군인, 농부, 상인과 같이 평범한 일거리를 가지고 있는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왜곡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영적인 계급 같은 것을 낳았다. 어거스틴과 아퀴나스를 비롯한 많은 교부들에게서 우리는 이러한 왜곡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영향은 오늘날에도 우리 가운데 뿌리깊게 남아있다. 심지어 복음주의권 내에서도 이러한 왜곡이 존재한다. 그것은 전임(專任) 사역과 같은 말들이 우리 가운데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지적하기도 했다.

두 번째 왜곡은 그가 신교적(新敎的) 왜곡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소명에 대한 영적 개념화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다. 종교 개혁자들이 소명을 직업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파악했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이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 직업과 일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직업’, 즉 사람들이 하는 소명이라는 말과 실질적인 동의어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이 한창일 때, 직업은 신성화된 반면, ‘소명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의미로 세속화되었다. 신교적 왜곡도 그 방향만 반대일 뿐이지 구교적 왜곡만큼이나 해악이 크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이 두 가지 왜곡을 극복할 수 있는 균형을 찾아보려고 애써왔다. 우리에게는 주님에 의한, 주님을 위한, 주님에 대한 소명이 있다. 이것은 근본적인 소명이다. 이 부르심은 무엇(자녀들을 양육하는 일, 가르치는 일, 정치하는 일)으로의 부르심, 어디(법조계, 캠퍼스, 아프리카)로의 부르심에 앞선 누구(하나님)에게로의 부르심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근본적인 소명을 따르고자 할 때 우리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행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부수적인 소명이다.

그가 소명을 근본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으로 나누는 데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 두 가지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순서를 뒤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근본적인 것은 언제나 부수적인 것 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교회는 이 두 가지 점에서 모두 실패하였고 그것이 바로 앞에서 지적한 왜곡의 두 형태이.

저자는 소명의 개념이 혼동되고 왜곡되어진 오늘날, 성경에 기초한 올바른 소명관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의 본래의 모습과 영향력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오스 기니스에 의하면, 소명은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다. “우리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성취하고 싶은 갈망이 도사리고 있다”(10).

그러면 소명(calling)이란 무엇인가?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행위 전체, 우리의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으로 그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13). “이 때문에 소명이야말로 인간 경험 중 가장 포괄적인 방향 전환이요 가장 심오한 동기를 유발하는 것, 곧 모든 역사에서 삶의 궁극적인 이유(Why)가 되는 것이다.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 당신의 인생의 중심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길이다”(16). 한 마디로 인간에게는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갈망”(62)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자신에 대한 독특한 설계, 곧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한다”(79). 저자에 따르면 하나님의 결정적인 소명에 귀기울이면서 산 인생은 다른 모든 청중을 밀어내는 단 한 분의 청중-유일한 청중- 앞에서 살아 낸 인생이다”(118). “청교도들은 유일한 청중이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매우 강조하였다”(119). 그리고 유일한 청중이신 그 분앞에서 사는 삶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120). “요셉에게는 인간 청중이 전혀 없었다. 유일한 청중이신 그분으로 충분했다”(151).

본서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소명의식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머리가 큰 아이로 태어났다. 그 머리 안에는 천재가 들어 있었다(너무 큰 머리 때문에 부모가 놀라워하자, 의사가 위로의 뜻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수상 4, 목사 10, 하원의원 10, 상원의원 7,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수 20, 정당의 의장 42, 일간 주간 신문 편집인으로서 47년이라는 놀라운 공적인 삶을 살았다. 뿐만 아니라 232권의 책을 썼다.

카이퍼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있던 딸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나의 소명은 높고 나의 과업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내 침대 위에는 십자가 상이 걸려 잇는데, 내가 그것을 쳐다볼 때면 매일 밤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만 같다. ‘나의 쓴 잔에 버금가는 너의 고통은 무엇이냐?’ 그분의 섬김은 너무나 높고 영광스러운 것이다”(256).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모든 영역의 주인이시다!”라고 외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당신의 믿음은 집에서만큼 일터에서도 일과성 있게 작동하는가?”(265)라고 묻고 있다.

이 책은 인생의 목적을 발견해서 그것을 성취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본서의 주장은, 이 목적은 우리가 창조된 구체적인 목적, 곧 우리가 부름받은 그 목적을 발견할 때에만 비로소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저서로는 3의 종족’(The Dust of Death, 신원 출판사 역간), ‘두 마음’(예찬사 역간), '도전받는 현대 기독교'(IVP 역간), '무덤 파기 작전'(낮은울타리), '교회 성장 운동의 새로운 기초'(생명의말씀사), In Two Minds, The American Hour, Time for Truth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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