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역사란 무엇인가?

송광택 | 2019.07.29 13:37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의 사실(the fact of the past)에 관한 학문이다. “역사는 인간의 과거에 대한 지식이다. 따라서 역사의 대상은 인간의 과거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과거는 오직 인간적 과거를 말한다”(김성태, 역사 안의 교회, 분도출판사, 12-13).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면, 역사는 사람들이 엮어낸 이야기이다. 사상, 운동, 사건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과거 기억 자체가 역사의식이 아닌 것처럼, 과거 자체가 역사는 아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살아나는 과거만이 진정한 역사가 된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문화적 영향 아래 있다. 또한 그는 현재의 제약 가운데 있다. 만일 그가 이러한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면, 그는 그의 시대의 안목이 아닌 다른 시대의 안목(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현재 안에서 과거를 받아들인다.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그리스도인은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보아야 하는가? 역사, 특히 교회사(敎會史)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역사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대개 이러한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국어사전은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 인류사회의 과거에 있어서의 변천 흥망의 기록

2) 어떤 사물의 금일에 이르기까지의 변화의 자취

 

역사란 낱말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일반적 의미에서, 역사란 인류사회의 과거에 있어서의 변천 흥망(變遷興亡)의 기록이다.

 

에드워드 기본(Edward Gibbon), “역사는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은 행위 그리고 불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볼테르(Voltaire)는 말하기를,“역사는 우리가 죽은 자들에게 행하는 속임수의 꾸러미일 뿐이다라고 했다.

 

객관적 의미의 역사란 역사적 사건 그 자체를 가리킨다. ,‘역사적 사건의 과정’,‘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all happened in the past)이란 뜻으로 사용될 때, 역사는 객관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일상대화에서 사용되는 역사라는 말은 대부분 객관적 의미의 역사다.

 

역사 연구에서 사료(史料)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사료가 없다면 역사도 없다. 우리는 사료를 통해서만 과거에 접근할 수 있다. 지난 날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접근할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다면 오늘의 우리에게 무의미하고 또한 역사가 되지 못한다. 역사가는 가능한 한 자기의 연구에 필요한 역사자료들을 발견수집하여 연구주제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는 찾아낸 사료들의 역사적 가치를 심사비판결정해야 한다. “역사는 항상 주어진 정보들을 앞에 놓고 사실을 해석하는 문제이다”(로널드 웰즈, 신앙의 눈으로 본 역사, IVP, 1995, 9.)

 

본래 라틴어 히스토리아(historia)는 탐구(inquiry)나 탐구와 연구의 결과로 얻어진 역사지식을 의미하였다. 이것은 단편적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사실과 사실간의 연관성을 그 전후관계에서 해명한 탐구와 지식이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헬라인과 야만인의 영광스러운 행적을 보존하려고 역사를 썼다. 9권으로 구성된 그의 역사는 동서 양대국이 충돌했던 페르시아 전쟁을 주제로 한 것인데, 그 사이사이에 많은 에피소드를 삽입하였으며, 대여행에서 얻은 견문도 진술하였다. 페르시아 인에게 공정하고 타민족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그는 언제나 페르시아의 노예들을 아무 주인도 없고 다만 법을 소유하고 있는 자유민인 헬라인과 대조시켰다. 그는 각 민족마다 풍속과 습관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관습에 대해서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동양에서 역사는 무엇을 의미했는가? 중국에서는 명말(明末)에 이르러서야 역사란 말을 썼고, 그 이전에는 단지 사()란 말밖에 쓰지 않았다.

()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1) 역사적 사실 그 자체, 2) 역사서(역사 기술), 3) 역사기록자(사관)의 의미가 있었다.

()는 손 수()자와 가운데 중()자의 합성어라고 한다. 여기서 중()은 바를 정()을 뜻하므로, ()는 곧 바르게 쓴다라는 뜻이다.

 

김동길 교수에 의하면, “우리가 역사라고 알고 있는 것은 결국 역사가가 잡다한 사실들(facts) 가운데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실만을 추려서 <역사>라고 단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사실이냐 하는 문제는 그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의 시대적 환경과 그의 철학, 인생관, 가치관 등등에 좌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어떤 면에서 현재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과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박성수 교수는 <역사학개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역사 속에서 태어나 숨쉬며 조금은 역사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단 역사학에 종사하는 사람만 역사를 생각하고 역사를 논하란 법은 없다. 그러나, 역사를 단지 생각한다는 차원과 연구한다는 차원은 다르다. 왜냐하면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는 반드시 역사연구의 대상, 목적, 방법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필요한 것이며, 역사와 역사학의 본질문제에 대한 식견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역사학개론, 삼영사, 1980, ‘머리말중에서).

 

그에 의하면, 역사에는 일종의 매력이 있다. 역사에는 다른 어느 과목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유의 심미적 기쁨이 있다. 이 기쁨은 역사학이 추상적 관념의 학문이 아니라, 인간적 냄새가 물씬 나는 구체적 사실의 학문이라는 데에서 나오는 강렬한 매력이다. 또한 역사에는 구경의 재미가 있다. 역사가는 마치 연극이나 영화를 구경하듯 역사를 감상할 수가 있다. 등장 배우들(역사적 인물)의 연기를 보고 칭찬도 해 주고 비난도 할 수 있다. 즉 역사가는 역사의 드라마를 구경하며, 그 구경의 재미로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재생하는 것인데, 이 때 역사가는 그 자신의 세계관이나 현재적 관심, 편견 또는 신념 등의 주관적 관점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재생하지 못한다.

 

존 브릭스(John Briggs)하나님과 시간과 역사라는 글에서 말하기를,“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인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역사가는 각 세대가 역사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개인의 기억상실이 의사의 치료를 요구하는 정신적 결함인 것처럼 역사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없는 공동체는 어려움을 경험한다라고 했다(라이온사 편, 교회사핸드북, 생명의 말씀사, 1989, 2).

 

그러면, 역사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인가? 필립 샤프는 말하기를, "역사는 참과 사랑의 정신으로(in the spirit of truth and love) 친구와 적의 원자료로부터 기록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다른 모든 것을 함축하는 역사가의 첫째 의무는 성실과 공정이다. 그는 역사 그 자체를 재생산해야 하고, 그의 진술에서 역사를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

 

필립 샤프에 의하면, 역사를 구성하는 작업은 예술이다. 그것은 단순히 사건들을 진술하지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과정 속에서의 교회의 발전을 재생산해야 한다. “역사는 해골의 무더기가 아니라 합리적인 영혼에 의해 채워지고 다스려진 유기체이다.” 그는 역사가에게 모든 사람과 사건에 대해 공정하라”(Do justice to every person and event.)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역사가들이 그의 선배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고 말한다.

 

근대 역사학의 확립자 랑케(Ranke)역사가란 자기 자신을 죽이고 과거가 본래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아야 하며 오직 사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 그 자체에 큰 비중을 두었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되는 역사인식론이 금세기에 크로체(B.Croce)나 콜링우드(R. G. Collingwood)에 의해 피력되었다. 그들에 의하면,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 “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적 요구이기 때문에 모든 역사에는 현대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여된다. 서술되는 사건이 아무리 먼 시대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역사가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요구 및 현재의 상황이며 사건은 다만 그 속에서 메아리칠 따름이다”. 그들에 의하면,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 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E. H. (Carr)는 중심을 과거에 두는 역사관과 중심을 현재에 두는 역사관의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과의 관계는 평등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역사가는 사실의 노예도 아니요,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하다. 역사란 결국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History is a continuing 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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