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안영혁서울대 철학과와 총신대학교(M.Div., Th.M., Ph.D.)에서 공부했다.
    현재 신림동의 작은교회, 예본교회를 목회하면서, 총신대학원 교수, 지역학교운영협의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작은교회가 더 교회답다」가 있으며, 「청년 라이놀드 니이버」 등을 번역하였다.

잠 못이라는 밤 감히 눈을 떼지 못하고

안영혁 | 2003.09.24 01:16


저는 될 수 있는 한 잠을 일찍 자려고 합니다.
원래 일찍 자는 것은 아니고 목사여서 새벽기도를 하거든요.
그런데 어떤 날은 좀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게 됩니다.
그것도 설교나 강의 등의 준비를 하다가 늦어졌을 때 잠시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다가 그만 마음을 뺏겨버리는 것이죠.
오늘 밤도 그랬습니다.
어디에 그렇게 마음을 빼앗겼느냐고요?

오늘은 고 이경해씨의 장례식 장면이 나왔습니다.
여러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의 첫 번 할복 때 입었던 피묻은 셔츠가 그들의 집에는 보관되어 있었더군요.
장의차에다 소화기를 품어버린 경찰들에게 서면으로라도 사과를 받아내라고 장의위원회에 소리치는 막내 딸의 절규는 가슴아팠습니다.
경찰 닭장 차 위로 넘겨올리던 상여가 가라앉는 것도 순간 섬찟 했는데,
그래도 그 안에 관이 있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정말 미치겠다고 말하는 장의위원 한 사람을 보면서,
이제 시위진압도 협상도 그리고 위로와 사과와 협상까지도 관료제를 통하게 하는 바람에
감정은 없고 사무만 있는 이 세상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계속 농민의 감정은 하늘로 치솟는데,
대통령은 화환을 보낼 뿐,
그의 사과는 들을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히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신경을 많이 쓰는 설교와 강의 준비,
거기서 조금 풀리고 싶어서 텔레비전을 켰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그 어딘가 오락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그럴수록 더욱 감히 그 처절한 장면에서 눈을 떼지를 못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계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곳에서는,
또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 국경을 넘다가 죽는다는 장면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거기서도 멕시코 농민이 살아남을 길이 없어서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더위에도 불구하고 월경을 한다고 하는군요.
멕시코에서 농사짓는 것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그들은 미국으로 넘어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WTO의 당국자는 공평한 이익을 위해서 몇몇 나라 사람들의 희생은 필연적이라고 참 똑똑한 소리를 하는군요.
그래서 더욱 감히 눈을 떼지 못하고 이 세계의 불행에 눈물을 흘립니다.

이제 무엇을 할까 하니,
당장은 내가 한달 쓰는 돈이라도 잘 조절해야겠구나 하고,
처절한 세계를 향해서 나약한 결론을 내리고 맙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이 처절한만큼,
그리고 오히려 그 이상으로 세상을 담아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의미였는데,
저는 그런 예수님의 정신이 실현이 안되는군요.
하겠습니다.
예수의 처절함이 저를 엄몰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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