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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이성호함경도 실향민의 아들로 서울의 유력한 산동네 돈암동 출생. 북악산과 삼각산을 닮은 작은 교회와 소박한 사람들을 가슴에 훈장처럼 여기는 포항의 작고 불편한 교회의 책임사역자. 한신대 신학대학원. 한신대 대학원 교회사 박사과정(Ph.D.Cand.)수료. 연규홍 교수와 「에큐메니칼 신학의 역사」(Vital Ecumenical Concerns) 번역,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집필. 포항CBS라디오 5분 메시지, 포항극동방송 ‘소망의 기도’ 진행자. 책에 한(恨)이 맺혀 ‘Book Party’할 수 있는 도서관 교회를 꿈꾸다.
성공과 교회공동체(상호연계성)
1. 다시 여름입니다. 그야말로 폭염입니다. 저에게는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이 있습니다. 여름방학이 달랑 3일이라 투털거립니다. 비록 교육정책이나 사회구조가 망측한 꼴을 하곤 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먼저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합니다. 아무리 사회가 뒤틀려 간다고 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역할의 게으름은 변명이 될 수는 없겠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저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2. In Seoul!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야 대학생으로 인정받고, 소위 일류대학은 나와야 취업이 가능해짐으로 해서, 우리 청년들의 생존 문제는 더 심화되었고 더 심각해졌습니다.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 빌붙어 사는 청년들이 가정마다 증가합니다. 재산이나 수입이 없는 가정의 청소년들은 반사회적인 구성원이 되어갑니다.
돈 있고 여유 있는 부모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집니다. 소득불균형은 계층불균형이 되고, 우리사회는 새로운 계급사회로 역행합니다. 우리의 아이들, 이 나라의 청년들이 그렇게 시들고 죽어가지만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3. 다시 수능일이 다가옵니다. 대학입시와 채용고시를 비롯한 각종 고시와 진급시험까지 시험을 잘 봤다는 사람보다 아쉬웠다는 사람들이 더 많기 마련입니다. 1990년대를 정점으로 학업성적은 이미 개인의 학습능력을 가늠하는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부모의 재산이나 소득에 따른 교육편차가 기회균등의 차원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단순히 성적이 좋다거나 이름난 대학에 입학하는 것, 높은 연봉의 기업체에 입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것으로 ‘성공’이니 ‘복’이니 남발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럽고 죄스런 사고입니다.
4. 그들이 그 만큼 서기까지 사교육에 쏟은 금액과 안락한 학업환경, 지대한 관심과 편의는 어디에서 왔는가요? 그런 지원이 없었어도 가능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결과만으로 속는 분은 아니십니다. 시험결과가 잘 나왔다고 자신의 노력만으로 된 일로 자랑하기보다는 받은 은혜에 감사해야할 것이고, 혹여 성적이 부실할 경우라면 지치지 말고 지나친 낙심에 빠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충분치 못한 지원에 가슴이 저린 부모들의 눈물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함께 공감하고 위로하며 절감해야 합니다. 자칫 자기들끼리의 축제가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기회의 불균형 앞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뜨겁게 안아야 합니다.
5. 교육의 목적이 이름 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되고 돈 많이 버는 수단으로 전락한 오늘의 세계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서로 서로의 ‘상호연계성’을 잊어버린다면 자선이니 봉사니 심지어 종교마저도 자기유익의 방편이 되고 맙니다. 교회는 특별히 빈곤에 처한 약한 이들을 살피는 일을 선행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그 같은 존재였으므로 마땅히 서로 돌아보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도 예수님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감사를 말로만 하지 마시고 보이십시오. 그리하여 감사를 교회를 넘어 세상에서 나누시는 성도다운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겔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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