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성욱계명대 영문학, 총신신대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구약 Th.M 수학), Calvin Theological Seminary(신약 Th.M), University of Pretoria(설교학 Ph.D),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두란노, 2014),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과 달란트 비유

신성욱 | 2021.03.18 09:13


*새해 첫 기적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이 시는 해석이 쉬울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를 해석해보라 하면 각기 다른 반응이 나옴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시의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시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황새나 말이나 거북이나 달팽이나 굼벵이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가는 모습을 봐요. 만일 이것을 거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황새가 가장 멀리 날아갔을 것이고, 맨 밑에 나오는 바위는 아예 한 일이 없는 놈팽이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거리의 관점에서 봐선 안 되고 일단은 시간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각기 열심히 움직였는데 모두가 새해 첫날을 맞았거든요. 가만히 앉아 있었던 바위에게도 첫날이 왔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해요. 이 시의 힌트는 맨 마지막 연에 있어요. 바위를 다른 것들과는 달리 한 칸 띄운 채 맨 나중에 위치해둔 저자의 의도가 뭔지 신경 써야 해요.

주께서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을 똑같이 칭찬하신 이유와도 같음을 기억해야 해요.

 

이것은 각자 자신의 재능과 사명이 다 다름을 보여주는 거예요.

황새, , 거북이, 달팽이, 굼벵이, 그리고 바위는 저마다 타고난 각기 다른 재능과 역할이 있단 말이죠. 황새는 날아야 하고 말은 뛰어야 하고 거북이는 걸어야 하고 달팽이는 기어야 하고 굼벵이는 굴러야 하고, 바위는 듬직하게 그 자리에 위치해야 하는 게 정상이에요.

거북이가 황새처럼 날려 하거나 말처럼 뛰려 한다면 그건 격에 맞지 않는 거지요.

 

황새가 굼벵이처럼 기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매일 일 년 내내 황새든 말이든 거북이든 달팽이든 굼벵이든 바위든 각기 저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거지요. 괜히 남과 비교해서 주눅이 들거나 기가 죽을 이유가 없어요. 남보다 덜 남겼다고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는 거구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청지기를 보세요.

 

왜 한 달란트 그대로 묻어두었다가 주인에게 결산보고를 드릴 때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정죄를 받은 지 아세요? 비교의식 때문이에요. 누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주고 자기는 달랑 한 달란트 줬다는 거지요.

그래서 주인을 사람 차별하는 나쁜 사람으로 보고 주인을 위해 땀 흘리고 일하지 않은 거예요. 원래부터 그가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다구요. 일부러 일하지 않고 게을러버린 거예요.

 

그의 관점에서 본다면 두 달란트 받아서 열심히 일해 두 달란트 남긴 청지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역시 다섯 달란트 받은 청지기와 비교했을 땐 역시 주인에게 불평거리가 있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그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어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주인은 각기 그 재능을 충분히 고려해서 그의 역량에 맞는 만큼의 현금을 준 거지요.

다섯 달란트 남길 능력이 없는 사람한테 다섯 달란트를 주는 것은 저주가 되겠지요.

 

다섯 달란트 남길 수 있는 사람에게 한 달란트만 준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건 엄청 손해나는 일 아니겠어요?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최선을 다했다면 한 달란트 남길 수 있었기에 한 달란트를 주신 거지요. 만일 그랬다면 세 명 모두 똑같은 칭찬을 받을 수 있었겠지요. 성경 속에서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 중 하나예요. 장사 밑천을 줄 때는 각기 그 재능에 따라 달리 줬는데, 나중에 결산할 땐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이나 두 배 반에 해당되는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똑같은 칭찬을 했어요.

 

이게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공평임을 아시나요? 똑같이 받아야 공평이 아니에요. 달리 받았다고 불평해선 안 돼요. 하나 밖에 남길 수 없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를 원하면 어떻게 되겠는지요? 그랬다가 결산할 때 두 배 이상 남기지 못했다면 오히려 큰 저주가 되고 말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한 달란트라도 받았다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주인을 위해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해요.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어요. 저마다 다 달리 태어나지요. 혈액형, 취미, 습관, 특기, 성격 다 다르게 태어난다고요. 황새는 날 수 있게 태어났고, 말은 뛸 수 있게 태어났고, 거북이는 걸어갈 수 있게 태어났고, 달팽이는 기어갈 수 있게 태어났고, 바위는 꿈쩍도 않고 제자리를 지키게 태어난 거지요.

거리로 보면 황새만큼 많이 못간 말과 거북이와 달팽이가 기죽지 않겠어요? 바위는 또 어때요? 기죽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고 싶겠죠. 한 걸음도 걷질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바위에게 부여된 사명이에요. 바위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굳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거예요. 광화문 뒷산의 큰 바위는 아주 먼 옛날부터, 그리고 세종대왕 시대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 서 있어요. 그게 바위의 사명이니 그걸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거리로 환산하면 황새 말고는 다 상처 입지 않겠어요. 하지만 오늘 시인은 거리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질 않아요.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거리가 아니라 때를 말하고 있어요. 어떤 사명을 가졌든, 얼마나 많이 벌고 잘 살았든 간에 그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어요. 모두가 새해 첫날을 맞았단 얘기겠죠. 새해를 맞기까지 황새를 포함해서 바위까지 모두가 각기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잘 살았단 말이에요. 오늘 본문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남긴 청지기도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청지기처럼 결산의 날이 왔다는 얘기예요.

 

한 달란트 받은 청지기도 주인이 자신의 역량에 적절한 최고의 것을 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하고 열심히 수고했더라면 배나 남겼을 것이고, 그랬다면 나머지 두 명과 조금도 차이 없는 주인의 칭찬과 상급을 받았을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나랑 틀리다고, 남들이 나보다 더 나아보인다고 속지 마세요. 나랑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에요. 사람이 다른데 당연히 달라야지요.

 

아무리 달라도 똑같은 새벽을 맞고 낮과 밤을 맞을 겁니다. 내 인생을 마감하는 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그분은 우리가 남보다 얼마큼 더 많은 거리를 달렸느냐, 얼마큼 영적으로 열매를 풍성하게 맺었나를 보시지 않아요. 얼마큼 자기 맡은 사명에 충실했는가를 보실 겁니다.

오늘 교회 안에 남과 자신을 비교하다가 상처 입거나 시험 든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요. ‘다른 사람은 나보다 얼마나 더 가졌나?’ ‘다른 이들은 나보다 얼마나 더 뛰어난가?’

 

이런 비교의식의 눈으로 보지 말고, 그것이 크든 작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나만의 사명이라면 거기에 내 모든 것을 올인해야 합니다. 그럴 때 똑같은 칭찬과 상급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거북이라고 기죽지 마세요. 굼벵이라고 불평하지 마세요. 바위라고 절망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의 사명만 보고 그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그분께 영광만 돌리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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