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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을이 점점 영그는 즈음에 우리의 가슴을 채울 책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C.S. 루이스/홍성사/[최명훈]
C. S. 루이스는 이미 삼촌 마귀가 조카 마귀에게 애정어린(?) 충고로 인간들을 더욱 타락하게 만들도록 격려한 내용으로 되어있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기독교작가이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그의 일생중 짧은 기간이었던 슬프지만, 애절한 결혼 생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섀도우랜드(Shadowlands)]로 더욱 잘 알려졌던 그의 대표적인 기독교변증서이자, 변론서인 [순전한 기독교]가 최근 번역되었다.
그는 현대 기독교지성의 대표적인 변론가 프란시스 쉐퍼와 더불어 생각하는 기독교를 대변하고 있다. 쉐퍼는 기독교에 대해 질문하는 현대 젊은 지성인들에게 답변해야 할 의무를 기독교인은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말은 현대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는 많은 젊은 지성인들에게는 정녕 유용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무조건 믿으라"는 메시지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항상 지식이 없는 신앙은 '맹신'과 '이단'으로 가는 지름길을 열어 놓기 때문이다. C.S. 루이스는 이러한 점을 기억하였다. 불신의 젊은 나날들을 보내야 했던 그는 불신자들의 의문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며, 변론을 위한 기독교를 이 책에서 전개해 나가고 있다.
목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평신도로서의 몫을 자신이 가진 모든 달란트를 동원하였다는 점이다. 문학적인 재능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불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불신자들이 궁금해하고, 의아해 하는 사항들을 질문하고 답변하는 식으로 이 책을 기록하고 있다. 즉, 세상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에 대한 구체적인 삶을 그는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목회자는 세상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을 현 시대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실제적인 삶의 지침을 모두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원리는 가지고 있으나 각론까지는 제공할 수 없는 것이 목회자의 목회적 한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경제원리에 있어서, 정직과, 지혜를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까지는 이야기할 수 있으나, 세부적인 경영정책을 제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C.S. 루이스는 자신이 배운 성경의 원리에 기초하여 불신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닌 교수로서 그의 철학과 문학을 모두 아낌없이 사용하여 이 책을 저술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이 지닌 신학적인 한계를 분명하게 언급하였고, 또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기독교의 주제들은 솔직히 다루지 않고 있음을 겸허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 책을 저술한 동기를 뛰어난 기독교 변론가들은 있었으나, 그 수가 많지 않다는 점과, 자신의 달란트를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는 분야이기에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그 집필목적을 밝히고 있다.
[순전한 기독교]는 본래 방송하였던 내용을 출간하였던 3권의 책([방송강연](Broadcast, 1942), [그리스도인의 행동](Christian Behaviour, 1943), [인격을 넘어서] (Beyond Personality, 1945))을 통합하고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부는 떨어진 독립적인 요소로 구성하지 않고, 모두 연결된 유기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1부는 [옳고 그름, 우주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로 시작된다. 그는 기독교의 시작을 창조나, 외부적인 우주의 신비로 시작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쉽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문제에 노크를 하며 시작하고 있다. 루이스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유일한 근거로 [인간 본성의 법칙]을 들어 설명한다. 본성은 본능과 다르다, 본능은 동물들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류 누구에게나 사회적 규율에 관계없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기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 본성의 법칙이다. 이것은 간단히 [자연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고대 이집트인이나, 바빌로니아인, 인도인, 중국인, 그리스인, 로마인들과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과의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나 갭을 발견할 수 없기에, 인간은 공통된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본능을 제어하고 억제하려는 인간의 본성은 분명 동물과 다름을 명쾌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는 반론을 가볍게 제압하며 우주의 존재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떠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로 본격적인 기독교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유물론적 관점은 진화적 우주의 우연한 생겨남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창조론을 설명한다. 그는 그러나 불신자를 자극할 진화론이나(대부분의 불신자들은 진화론에 대한 확신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창조론에(물론 창조론에 대해서도 불신자들은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대한 단언의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의 탁월함이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루이스는 인간의 절망적인 실존에 대해 묘사하며, 절대선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조금 꺼내놓고 있다. 이제 2부로 들어가 보자.
2부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믿는가?]로 시작한다. 루이스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하여 언급하기에 앞서 범신론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개념을 1부에서 그대로 받아 설명하고 있다. 범신론은 오랫동안 전세계종교인들에게 묘사되어온 신관념이다. 많은 지성인들이 [자연법]을 인정함으로 말미암아 받아들인 신관이다. 루이스는 범신론과 기독교는 다름을 설명하면서 불신자들에게 자신들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음을 비로소 제기한다. 범신론은 모든 세계에 대한 신의 책임이나 개입, 인간의 한계 등이 모두 혼합 합성되어있다. 왜냐하면 신 자체가 자연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특별한 책임을 질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다. 하나님은 독립된 인격체이며, 그는 자신의 뜻대로 인간의 창조하셨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도덕론자들과, 종교혼합주의자들의 질문에 친절히 답하면서 인간이 처한 공경에 대해 묘사한다. 그것은 타락한 삶의 현 인간의 실존을 제시하며 이루어지고 있다. 회개에 관한, 속죄에 관한 교리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법률적인 대속에 대하여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2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종교혼합주의자들과 도덕론자들의 주장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여타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선한 행동은 모두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요.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선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선하게 만드신다고 생각합니다. 창 자체가 밝아서 햇빛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햇빛이 먼저 창을 비추었기 때문에 밝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p. 111)
3부는 [그리스도의 행동]이다. 루이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기독교적인 논증을 시작한다. 그는 도덕의 3가지 기본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설명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으며, 또 다시 오실 이유에 대해 설명을 시도한다. 도덕은 공동체의 질서와, 각 개인의 내면의 조화, 인류 삶의 보편적 목적의 3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은 인류의 구원과 관계가 있다고 시작한다. 그가 도덕의 요소를 다룬 것은 이것과 관련이 있는 7가지 오래된 도덕의 덕목을 끌어오기 위해서이다. 네가지는 기본덕목(Cardinal virtues)으로 분별력, 절제, 정의, 꿋꿋함이다. 세가지는 신학적 덕목(Theological virtues)으로 믿음, 소망, 사랑이다. 그는 도덕률을 말하면서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존립목적과, 삶의 의미, 태도,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한다. 루이스는 세상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위치와 역할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었다. 목회자의 역할, 평신도의 역할에 대하여 그는 "실제로 사람들이 교회에게 세상을 이끌라는 것은 대부분, 목회자들이 정치적 프로그램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목회자는 '인간은 앞으로 영원히 살 피조물'이라고 볼 때 필요한 일들을 돌보기 위해 전체 교회 가운데 따로 구별되어 특별히 훈련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정치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라는 것은 전혀 훈련받지 못한 생판 다른 영역의 일을 하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일은 사실 우리 같은 평신도가 해야 합니다."(p. 139) 평신도의 기대치, 목회자의 역할에 대한 사역의 재고가 분명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새롭게 등장한 정신분석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과, 문란해진 성도덕에 관해 그리스도인의 결혼에 대해서도 친절한 해설을 곁들인다.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 의지를 통한 약속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사랑은 의지이다. 루이스는 교만의 정체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폭로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신학적 덕목인 믿음, 사랑, 소망에 대해 언급하며 도덕률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엇, 선을 뛰어 넘는 영생에 관해 길을 안내하며 3부를 마치고 있다.
4부는 [인격을 넘어서,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첫걸음]으로 시작한다. '신학은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루이스는 '그렇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경험과 이론의 대결을 그는 간단하게 지도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지도는 지역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지도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객관성이 있으며, 또한 처음 가는 사람에게 유용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 또한 미쳐보지 못한 부분까지도 전체를 보게 해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도가 유용하듯, 신학도 마찬가지로 설명되어지고 연구되어져야함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오늘날에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교육수준도 낮았고 토론도 흔치 않았으므로 하나님에 대해 간단한 개념 몇 가지만 알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누구나 글을 읽고 토론을 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p.242) 루이스가 기독교신학에서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삼위일체이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자신이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고 이 땅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사실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인간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자녀)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크고도 존귀한 사랑을 묘사하기 위함이다. "기독교가 제시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하시도록 자신을 그분께 맡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목적은 오직 이것 하나뿐입니다."(p. 273) 루이스는 새로운 삶을 살게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4부의 이야기를 맺고 있다. "자아는 그리스도를 찾을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p. 339-340)
20세기의 지성 C.S. 루이스는 가을이 점점 영그는 즈음에 우리의 가슴을 채우고 있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일으켜 세웠던 생각하는 기독교를 다시 세우고 있다. 루이스는 기독교는 충분히 설명되어지고, 설득되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었고, 역량있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루이스가 주는 통찰은 삶 자체에 대한 애정과, 그리스도인 각자에 대한 존귀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옳고 그름에서 시작된 우주를 푸는 실마리는 인격을 넘어 삼위일체를 이해함으로 말미암아 완성된다. 유난히 도덕론자(선행론자)들이 많아 그것으로 구원이 충분하다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종교다원론자들의 주장을 루이스는 여지없이 괴멸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가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것과 진정한 자아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불신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아직도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교회 안의 불신자들에게도 읽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맹신하는 신앙과 감성중심의 신비주의적 기독교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독교는 언제나 역사를 바꾸어 왔기 때문이다. [순전한 기독교]는 21세기의 그리스도인을 다시금 추수리게 만들고 있다.
* 이 글은 2001년 전국기독교서점 연합회에서 공모한 독후감에서 전체부문 최우수로 선정되었습니다.
저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루이스는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 문학과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면서 소설, 평론, 동화 들을 썼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그가 처음으로 쓴 동화이자 마지막으로 쓴 동화이며, 1957년에 <나니아 나라 이야기> 제 7권<마지막 전투>로 카네기 상을 수상했다.
C. S. 루이스는 이미 삼촌 마귀가 조카 마귀에게 애정어린(?) 충고로 인간들을 더욱 타락하게 만들도록 격려한 내용으로 되어있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기독교작가이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그의 일생중 짧은 기간이었던 슬프지만, 애절한 결혼 생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섀도우랜드(Shadowlands)]로 더욱 잘 알려졌던 그의 대표적인 기독교변증서이자, 변론서인 [순전한 기독교]가 최근 번역되었다.
그는 현대 기독교지성의 대표적인 변론가 프란시스 쉐퍼와 더불어 생각하는 기독교를 대변하고 있다. 쉐퍼는 기독교에 대해 질문하는 현대 젊은 지성인들에게 답변해야 할 의무를 기독교인은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말은 현대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는 많은 젊은 지성인들에게는 정녕 유용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무조건 믿으라"는 메시지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항상 지식이 없는 신앙은 '맹신'과 '이단'으로 가는 지름길을 열어 놓기 때문이다. C.S. 루이스는 이러한 점을 기억하였다. 불신의 젊은 나날들을 보내야 했던 그는 불신자들의 의문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며, 변론을 위한 기독교를 이 책에서 전개해 나가고 있다.
목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평신도로서의 몫을 자신이 가진 모든 달란트를 동원하였다는 점이다. 문학적인 재능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불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불신자들이 궁금해하고, 의아해 하는 사항들을 질문하고 답변하는 식으로 이 책을 기록하고 있다. 즉, 세상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에 대한 구체적인 삶을 그는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목회자는 세상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을 현 시대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실제적인 삶의 지침을 모두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원리는 가지고 있으나 각론까지는 제공할 수 없는 것이 목회자의 목회적 한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경제원리에 있어서, 정직과, 지혜를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까지는 이야기할 수 있으나, 세부적인 경영정책을 제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C.S. 루이스는 자신이 배운 성경의 원리에 기초하여 불신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닌 교수로서 그의 철학과 문학을 모두 아낌없이 사용하여 이 책을 저술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이 지닌 신학적인 한계를 분명하게 언급하였고, 또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기독교의 주제들은 솔직히 다루지 않고 있음을 겸허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 책을 저술한 동기를 뛰어난 기독교 변론가들은 있었으나, 그 수가 많지 않다는 점과, 자신의 달란트를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는 분야이기에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그 집필목적을 밝히고 있다.
[순전한 기독교]는 본래 방송하였던 내용을 출간하였던 3권의 책([방송강연](Broadcast, 1942), [그리스도인의 행동](Christian Behaviour, 1943), [인격을 넘어서] (Beyond Personality, 1945))을 통합하고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부는 떨어진 독립적인 요소로 구성하지 않고, 모두 연결된 유기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1부는 [옳고 그름, 우주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로 시작된다. 그는 기독교의 시작을 창조나, 외부적인 우주의 신비로 시작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쉽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문제에 노크를 하며 시작하고 있다. 루이스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유일한 근거로 [인간 본성의 법칙]을 들어 설명한다. 본성은 본능과 다르다, 본능은 동물들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류 누구에게나 사회적 규율에 관계없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기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 본성의 법칙이다. 이것은 간단히 [자연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고대 이집트인이나, 바빌로니아인, 인도인, 중국인, 그리스인, 로마인들과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과의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나 갭을 발견할 수 없기에, 인간은 공통된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본능을 제어하고 억제하려는 인간의 본성은 분명 동물과 다름을 명쾌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는 반론을 가볍게 제압하며 우주의 존재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떠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로 본격적인 기독교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유물론적 관점은 진화적 우주의 우연한 생겨남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창조론을 설명한다. 그는 그러나 불신자를 자극할 진화론이나(대부분의 불신자들은 진화론에 대한 확신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창조론에(물론 창조론에 대해서도 불신자들은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대한 단언의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의 탁월함이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루이스는 인간의 절망적인 실존에 대해 묘사하며, 절대선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조금 꺼내놓고 있다. 이제 2부로 들어가 보자.
2부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믿는가?]로 시작한다. 루이스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하여 언급하기에 앞서 범신론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개념을 1부에서 그대로 받아 설명하고 있다. 범신론은 오랫동안 전세계종교인들에게 묘사되어온 신관념이다. 많은 지성인들이 [자연법]을 인정함으로 말미암아 받아들인 신관이다. 루이스는 범신론과 기독교는 다름을 설명하면서 불신자들에게 자신들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음을 비로소 제기한다. 범신론은 모든 세계에 대한 신의 책임이나 개입, 인간의 한계 등이 모두 혼합 합성되어있다. 왜냐하면 신 자체가 자연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특별한 책임을 질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다. 하나님은 독립된 인격체이며, 그는 자신의 뜻대로 인간의 창조하셨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도덕론자들과, 종교혼합주의자들의 질문에 친절히 답하면서 인간이 처한 공경에 대해 묘사한다. 그것은 타락한 삶의 현 인간의 실존을 제시하며 이루어지고 있다. 회개에 관한, 속죄에 관한 교리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법률적인 대속에 대하여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2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종교혼합주의자들과 도덕론자들의 주장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여타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선한 행동은 모두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요.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선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선하게 만드신다고 생각합니다. 창 자체가 밝아서 햇빛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햇빛이 먼저 창을 비추었기 때문에 밝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p. 111)
3부는 [그리스도의 행동]이다. 루이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기독교적인 논증을 시작한다. 그는 도덕의 3가지 기본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설명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으며, 또 다시 오실 이유에 대해 설명을 시도한다. 도덕은 공동체의 질서와, 각 개인의 내면의 조화, 인류 삶의 보편적 목적의 3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은 인류의 구원과 관계가 있다고 시작한다. 그가 도덕의 요소를 다룬 것은 이것과 관련이 있는 7가지 오래된 도덕의 덕목을 끌어오기 위해서이다. 네가지는 기본덕목(Cardinal virtues)으로 분별력, 절제, 정의, 꿋꿋함이다. 세가지는 신학적 덕목(Theological virtues)으로 믿음, 소망, 사랑이다. 그는 도덕률을 말하면서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존립목적과, 삶의 의미, 태도,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한다. 루이스는 세상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위치와 역할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었다. 목회자의 역할, 평신도의 역할에 대하여 그는 "실제로 사람들이 교회에게 세상을 이끌라는 것은 대부분, 목회자들이 정치적 프로그램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목회자는 '인간은 앞으로 영원히 살 피조물'이라고 볼 때 필요한 일들을 돌보기 위해 전체 교회 가운데 따로 구별되어 특별히 훈련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정치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라는 것은 전혀 훈련받지 못한 생판 다른 영역의 일을 하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일은 사실 우리 같은 평신도가 해야 합니다."(p. 139) 평신도의 기대치, 목회자의 역할에 대한 사역의 재고가 분명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새롭게 등장한 정신분석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과, 문란해진 성도덕에 관해 그리스도인의 결혼에 대해서도 친절한 해설을 곁들인다.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 의지를 통한 약속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사랑은 의지이다. 루이스는 교만의 정체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폭로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신학적 덕목인 믿음, 사랑, 소망에 대해 언급하며 도덕률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엇, 선을 뛰어 넘는 영생에 관해 길을 안내하며 3부를 마치고 있다.
4부는 [인격을 넘어서,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첫걸음]으로 시작한다. '신학은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루이스는 '그렇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경험과 이론의 대결을 그는 간단하게 지도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지도는 지역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지도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객관성이 있으며, 또한 처음 가는 사람에게 유용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 또한 미쳐보지 못한 부분까지도 전체를 보게 해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도가 유용하듯, 신학도 마찬가지로 설명되어지고 연구되어져야함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오늘날에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교육수준도 낮았고 토론도 흔치 않았으므로 하나님에 대해 간단한 개념 몇 가지만 알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누구나 글을 읽고 토론을 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p.242) 루이스가 기독교신학에서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삼위일체이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자신이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고 이 땅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사실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인간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자녀)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크고도 존귀한 사랑을 묘사하기 위함이다. "기독교가 제시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하시도록 자신을 그분께 맡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목적은 오직 이것 하나뿐입니다."(p. 273) 루이스는 새로운 삶을 살게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4부의 이야기를 맺고 있다. "자아는 그리스도를 찾을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p. 339-340)
20세기의 지성 C.S. 루이스는 가을이 점점 영그는 즈음에 우리의 가슴을 채우고 있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일으켜 세웠던 생각하는 기독교를 다시 세우고 있다. 루이스는 기독교는 충분히 설명되어지고, 설득되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었고, 역량있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루이스가 주는 통찰은 삶 자체에 대한 애정과, 그리스도인 각자에 대한 존귀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옳고 그름에서 시작된 우주를 푸는 실마리는 인격을 넘어 삼위일체를 이해함으로 말미암아 완성된다. 유난히 도덕론자(선행론자)들이 많아 그것으로 구원이 충분하다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종교다원론자들의 주장을 루이스는 여지없이 괴멸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가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것과 진정한 자아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불신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아직도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교회 안의 불신자들에게도 읽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맹신하는 신앙과 감성중심의 신비주의적 기독교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독교는 언제나 역사를 바꾸어 왔기 때문이다. [순전한 기독교]는 21세기의 그리스도인을 다시금 추수리게 만들고 있다.
* 이 글은 2001년 전국기독교서점 연합회에서 공모한 독후감에서 전체부문 최우수로 선정되었습니다.
저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루이스는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 문학과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면서 소설, 평론, 동화 들을 썼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그가 처음으로 쓴 동화이자 마지막으로 쓴 동화이며, 1957년에 <나니아 나라 이야기> 제 7권<마지막 전투>로 카네기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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