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루터의 십자가 신학, 우리의 심장에서 계속될 수 있기를...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Edgar McGrath)는 1953년생으로 21세기 복음주의 신학자 중에서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그는 잉글랜드 국교회의 사제(Anglican priest)이다. 존 스토트(John R. W. Stott, 1921-2011), 제임스 패커(J. I. Packer, 1926-2020)는 잉글랜드 국교회 사제이다. 맥그라스는 전문 신학자이지만, 그의 많은 저술들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참고로 로이드 존즈는 웨일즈 회중주의자라고 위키페디아서 소개하는데, 다른 표현으로는 웨일즈 독립파이다. 웨일즈 장로파도 별도로 존재한다.
맥그라스 초기 작품에 <루터의 십자가 신학>이 있다. 그는 1985년에 출판했고 우리나라에는 2001년에 정진오와 최대열이 번역해서 컨콜디아사에서 출판되었다. 그리고 맥그라스가 2011년에 개정판을 출판한 것을, 2015년에 김선영에 의해서 번역되어 컨콜디아사에서 출판되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하면 ‘이신칭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루터는 십자가 신학, 십자가를 외치면서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고, 1518년 하이델베르크 토론을 주도했다. 그리고 결국 1521년 보름스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면서까지, 그 압박을 견디며 복음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심장을 굳건하게 한 것은 십자가이다. 루터의 눈에 보인 바티칸의 영광과 황제의 영광은 십자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때에 일고의 망설임이 없이 십자가를 붙잡은 것이다. 그의 가시적 업적, 신성로마제국에 새로운 길을 만든 것은 역사가들의 평가와 해석을 피할 수 없다. 기독교 신학자이든 세계 역사가이든 루터의 업적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독일사람이라면 결코 루터를 피해서 역사를 기술할 수 없을 것이다.
잉글랜드 사역자 맥그라스가 루터의 신학을 평가하는 것은 기독교 신학에서 루터가 차지하는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신교 신학에서 루터는 절대적 위치에 있다. 현재 개신교 내부에서 루터의 흔적 지우기에 열심인 것 같다. 대표적으로 새관점학파에서 주도적으로 개신교 신학에서 루터 지우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루터에 관해 연구 저술을 많이 출판한 맥그라스는 그러한 시대조류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며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필자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서 맥그라스는 루터가 세 흐름 속에 있다고 평가했다. 첫째 인문주의 영향, 둘째 유명론의 새길(via moderna), 셋째 신어거스틴주의이다. 그런데 맥그라스는 루터를 “중세 후기 신학자로서 루터”로 평가했다. 이러한 관점은 멀러 테제(Muller Thesis)와 유사하거나 일치되는 신학 관점이다. 멀러는 칼빈과 후기 칼빈주의와 연속성을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 중세 신학과와 칼빈주의의 연속성을 주장한다. 두 연구자의 공통점은 종교개혁신학도 중세 신학에서 연속성으로 평가한 것이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이 1513년 시편 강의에서부터 형성되었고, 1518년 하이델베르크 토론에서 구체화되었다는 정보가 나열되는 것도 좋은 학문이다. 그러나 신학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이해는 결코 가벼운 관점이 아니다. 맥그라스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서 십자가 신학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연속성 개념을 밝히고 있다. 그러한 관점을 독자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보는 정보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연결된 정보에서 의미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구슬은 서말이어도 필요 없고 꿰어야 보배가 된다. 그러나 부당한 실로 구슬을 꿴다면 구슬은 보배가 아니라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루터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Crux sola est nostra theologia 라는 아포리즘은 연구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심장에 박혀 있는 문장이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