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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길르앗의 유향은 유효한가?

크리스찬북뉴스 | 2016.05.30 11:06
길르앗의 유향은 유효한가? 길리아드/매릴린 로빈슨/마로니에 북스/문양호 편집위원

 아직 목회의 길을 들어서기 전 청년 때의 일이었다.

 

청년부에서 영적회복에 관계된 교재를 담당목사님이 택해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교재의 핵심구절 중 하나가 예레미야 8:2246:11의 길르앗의 유향이었다. 교재의 저자는 당시의 길르앗의 유향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였는데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과 상처를 이야기하며 그들이 길르앗의 유향을 통해 치유 받듯 우리도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 받아야 한다는 논조였다.

 

그런데 당시 대학부를 돕느라 청년부의 조장모임에만 참관하던 나는 그 교재를 보면서 한 가지 찜찜함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치유 받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하고 예레미야에서 이야기하는 길르앗의 유향이 치료제라는 것도 동의하지만 문제는 예레미야의 논조는 환자가 그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길르앗의 유향이 있음에도 나오지 않고 치료받지 않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심각한 타락과 죄의 상태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음으로 그들은 치료받을 수 없는 절망적 상태를 예레미야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소망이 아니라 절망을 나타내기에 교재에서 긍정적 이미지로 본 구절을 해석하고 중심구절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나는 본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이나 소그룹에서는 그러한 교재를 사용해도 별반 문제없지만 몇 백 명 되는 청년부에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할까하는 찜찜함이었다. 교재로는 은혜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경해석상의 문제가 있을 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적용인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조장모임 때 조를 인도하는 엘더에게 질문했다가 간접적으로 조장모임과 청년부 설교시간에 목사님이 그 문제를 다루시며 야단치신 아픈 추억이 내겐 있다.

 

매릴린 로빈슨이 쓴 길리아드는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 있는 길리아드라는 지방을 이야기하지만 은유적으로 예레미야서의 길르앗을 이야기한다. 어떤 책을 읽다가 이 소설에 대한 짧은 언급을 하는 것을 통해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고, 2013년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더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목사인 주인공은 아내 사후 홀로 오랫동안 지내다가 늙은 나이에 우연히 젊은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결혼한 후 어린 아들을 얻게 되는데, 소설은 목사가 이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글들을 모아놓은 형식을 띄었다. 주인공은 그 소설 속에서 대대로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그의 가족사를 이야기하면서 목회자로서의 삶을 잔잔히 그려낸다. 책 중반이 넘어서기까지 중심적인 이야기를 그려내지 않는 듯해서 독자를 좀 당황시키는 듯하지만 이후 소설은 그때까지 조금씩 조각조각 던져놓았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꿰어 잇는다. 목사였지만 남북전쟁 때 참전해 부상을 입기도 한 할아버지와 전통적이기에 무신론자가 된 아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그 배경을 그려 나간다. 특히 친구의 아들은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일종의 돌아온 탕자로서 이야기에 등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존이 회개하는 아들로서 왔는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길리아드로 왔는지를 의문스럽게 이야기를 펼쳐간다.

 

책의 후반으로 달려가면서 그전까지는 그저 주변이야기에 지나지 않던 존의 이야기는 소설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이 존의 이야기는 길르앗의 유향 앞에서 서있는 한 남자의 고민이다. 문제는 그 길르앗의 향유가 존에게 치료제가 되느냐의 문제이다.

 

앞서 청년 때 나의 생각은 지금도 그리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길르앗의 유향은 병든 자에게는 희망이 됨은 맞았다. 단지 이스라엘은 그 치료제인 유향 앞으로 나아오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절망이다. 지금도 이런 모습을 본다.

 

내 주변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소망이고 구원임을 알면서도 그분께 나아오지 않는 이들을 본다. ‘그래, 그래야지하면서도 그들은 주저한다. 그들은 상황 때문에 환경 때문에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두려움을 가지기도 한다. 마치 환자가 자기 상처에 대한 수치심으로 의사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의사의 진단으로 불치병이라고 사형선고라도 내려 질 것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에는 그 길르앗의 유향 근처에 맴도는 두 명의 사람, 에드워드와 존이 등장한다.

 

한 명은 화자인 목사의 형인 에드워드는 목회자 가정 속에서 자라나 누구보다 성경에 대해 잘 알지만 무신론의 길을 들어선다. 그의 아버지를 만나러 왔을 때 예의상의 식사기도마저도 거부하는 철저한 무신론자로 탈바꿈한다. 그는 길르앗의 유향을 알면서도 오지 않는 이다.

 

반면에 목사의 친구인 보턴의 아들인 존은 다르다. 그의 아버지 보턴이 친구인 목사의 이름을 넣어 짓기까지 한 존이었고 그의 아버지도 목사였지만 어릴 적부터 비열한 행동을 반복했던 그는 결국 안 좋은 환경의 어린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아기는 결국 죽고만다-그의 부모와 누이에게 고통을 주고 만다. 말년에 아버지를 다시 찾아오지만 자신의 사정을 아버지에게는 차마 털어놓지 못하고 아버지의 친구인 목사에게 자신의 사정을 고백한다. 그것은 흑인여자와의 결혼과 자녀였다-당시는 일부 주는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금지되었던 시대다. 비록 노예매매법 철폐를 위해 목사의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부상까지 입었을 정도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더구나 그의 부양가족을 책임질 수 없어서 아버지를 찾아왔지만 아버지에게 충격을 줄 수 없어 결국 다시 고향을 떠나는 존. 그는 길르앗의 유향이 자신에게 구원임을 알지만 그 구원으로 나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절망만은 아니다. 그의 고백 이전 목사와의 대화는 존의 중심에 있는 영적 갈망을 보여준다. 하지만 목사는 존의 비열했던 과거와 그에 대한 조심성으로 존의 영적 갈망에 거리를 두곤 한다. 비록 존은 떠나가지만 그에겐 길르앗의 유향에 대한 갈망이 있다. 지금은 떠나가지만 다시 돌아오고 싶은 갈망을 보인다.

 

지금 내 주변에도 그런 갈망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목말라 나아오다가도 문을 열어 주면 주저하고 다시 뒷걸음치는 이들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그들을 기다린다. 더 늦지 않기를...

 

길르앗의 유향이 그들에게 소망이 될지, 아니면 절망이 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결국 그들의 선택과 결단일 뿐이다.

 

추신

 

기독교 관련 소설은 우리주변에 꽤 있다. 길르아드를 읽으면서 두서없지만 대충 기독교 관련소설을 간략히 생각나는 대로 훑어보며 분류해보고 싶다. 기독교 소설이라 하지 않고 기독교 관련 소설이라 함은 기독교의 중심에 서있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아주 반기독교적 소설도 있고 그저 소재와 흥미로만 다룬 것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독교 관련 소설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문렬의 사람의 아들은 비교종교학을 넘나들며 기독교 역사의 화두 같은 예정과 자유의지, 구원에 대한 문제를 건드린다. 일종의 구도자의 몸부림을 보여주고 초판본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다시 기독교로 귀의하긴 하지만 기독교적 관심이 있는 이가 던지는 기독교적 화두를 보여준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성격은 다르지만 김성동이 만다라로 불교의 진리탐구적 면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조성기의 라하트 하헤렙야훼의 밤연작시리즈처럼 자신의 신앙간증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낮과 밤을 그리는 소설도 있다.

 

김성일의 소설들은 감명을 주는 기독교 소설이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적 교파의 경향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조심히 읽을 필요도 있을 듯싶다.

 

오두막갈림길의 저자인 윌리엄 폴 영처럼 소설의 형식은 갖추었지만 인간의 영혼을 후벼 파며 메스를 들이대는 변증적 소설도 있다. 반드시 읽기를 바라는 강추의 소설이긴 하지만 단단히 붙들고 씨름할 필요가 있는 좋은 소설이다.

 

그에 반해 단순히 기독교를 소재로 사용하여 반 기독교적인 소설을 그려내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같은 소설도 있다. 그는 철저하게 대중적인 차원으로 접근할 뿐 문학성으로나 기독교적 진지성도 없는-반기독교적 진지성도 없는-싸구려 소설이다.

 

차라리 만화이긴 하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댄 브라운의 소설처럼 비기독교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댄브라운보다 훨씬 진지하고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면이 있다. 물론 이런 책은 조심성을 가지고 보아야 할 책이다. 그에 반해 모세를 다룬 리들리 스코트의 영화-소설은 아니지만-는 아슬아슬하면서도 기독교적 고민과 새로운 이해와 감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에 반해 기독교면이 상당히 있고 성경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니코츠 카잔자키스의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유혹, 성 프란시스코이나 파울로 코엘류의 다섯번째 산-다섯번째 산은 파울로 코엘류의 다른 책과는 상당히 다르고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고 어떤 면에서 성경에 대한 해석과 상상에 날개를 달아주는 면이 있다. 분류로 니코츠카잔자키스와 같은 계열에 넣었지만 이 책 자체보다는 코엘류의 다른 책들로 인해 이쪽에 편의상 구분한다-은 신앙의 영역을 지나치게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앞서 다루었던 메릴린 로빈슨의 길리아드는 순수문학의 흐름을 지키면서도 기독교 환경과 문화-특히 목회자의 삶에 대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중요한 주제에 대한 사색을 하게 해준다. 카톨릭 쪽에서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신부의 일기도 순수문학 쪽이면서 신부의 고민과 세계를 보여준다.

 

조금 더 기독교 울타리를 벗어나고 대중적이긴 하지만,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성채도 신앙의 중심적 마음을 건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매릴린 로빈슨

 

1947년 미국 아이다호주 샌드포인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브라운여자대학의 전신인 펨브로크대학과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1980년에 발표한 데뷔작 하우스키핑(Housekeeping)으로 퓰리처상 소설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펜/헤밍웨이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2005년에 도리스 레싱의 황금노트북, 이언 매큐언의 속죄,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등과 나란히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로 꼽혔다. 이후 20여 년 만인 2004년에 두 번째 소설 길리아드(Gilead)를 발표해 200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과 2005년 퓰리처상 수상의 잇단 영예를 안았으며, 2008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 (Home)으로 제14회 오렌지문학상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거머쥐었다. 데뷔 이래 근 30년간 단 세 편의 소설을 발표한 과작(寡作)의 작가이지만 작품 발표 때마다 독보적인 작가 정신과 기예로 호평과 사랑을 받는 가운데, 인문학 연구를 병행하여 논픽션 저술로 모국(Mother Country)』 『아담의 조국(The Death of Adam)』 『정신의 부재(Absense of Mind)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1년 현재 아이오와작가협회에서 미래의 작가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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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성경을 많이 읽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볼 것은 성경을 읽기만 한다고 돈을 넣으면 음료수를 주는 자판기처럼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을 다독하고 곳곳에 숨겨져 있는 정보들을 다 암기하고 있어도 무슨 내용과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하면 하나의 정보일 뿐 하나님의 역사를 조망할 수도 없고 실제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으로도 역사되지 않는다.   또한 성경은 전체적으로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과 뜻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변죽만 울리는 형식이 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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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렸지만 무언가 충족감은 덜할 것 같았다. 지금 이 책이 그러했다. 말하자면 주제는 좋지만 솔직히 그것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일부 저자들이나 토론자들이 제자훈련에 적합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들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자훈련 전체를 조망하거나 그것을 보는 시각에 있어서 조금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서평을 쓰는 필자의 교만이나 또 다른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우려와 불안은 적잖이 가실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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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세기 후반 복음주의 교회와 역사에는 여러 가지의 논쟁으로 인한 분열이 있었다. 교회의 사회 참여 문제, 성경 무오성의 문제, 에큐메니컬 운동 참여 문제, 복음주의와 카톨릭과의 연합 문제, 천년왕국과 예수님의 재림시기로 인한 종말론 논쟁, 방언과 예언같은 은사주의 문제, 심리학과 마케팅 기법과 관련한 교회성장학 문제 등 다양한 논쟁과 이슈로 인해 복음주의 교회는 분열을 거듭하며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그중에서 성경무오와 관련된 문제와 교회의 사회참여 문제 그리고 복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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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목회의 길을 들어서기 전 청년 때의 일이었다.   청년부에서 영적회복에 관계된 교재를 담당목사님이 택해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교재의 핵심구절 중 하나가 예레미야 8:22과 46:11의 길르앗의 유향이었다. 교재의 저자는 당시의 길르앗의 유향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였는데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과 상처를 이야기하며 그들이 길르앗의 유향을 통해 치유 받듯 우리도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 받아야 한다는 논조였다.   그런데 당시 대학부를 돕느라 청년부의 조장모임에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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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한 면에서 지대한 도움을 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천상의 것에 우리의 마음이 머물수록 우리는 이 땅에 속한 것들을 멀리할 수 있다.   이 책과 더불어 제임스 더람의 주님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는 책도 성도의 죽음에 관한 명작이다. 구프린스턴 신학교의 위대한 성경 신학 교수였던 게할더스 보스 교수는 영원을 지척에 두는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칼빈이나 루터나 로이드존스나 순교자들의 마지막을 보면, 그들은 생애 마...
구원을 넘어 평안까지 구원을 넘어 평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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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중1때 참석한 교회 중고등부 여름수련회의 기본 주제가 함석헌의 『성서로 본 조선역사』였다, 하루 두 번씩 아마도 한 시간 반 정도는 족히 했을 강의를 꼬박 채우고도 모자라 교회에서 나머지 강의를 했을 정도로 꽤나 긴 분량을 당시 전도사님이 열정적으로 풀어갔다. 당시 나이를 생각하면 들어도 아무것도 제대로 몰랐을 나이지만 꽤나 진지하게 열심히 들었고 한으로 풀어낸 조선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가슴깊이 새겨져 나름의 사고나 책읽기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던 것 같다. 그때 강의를 들으며 등장한 성서조선과 김교신, 그리고 아마도 그들...
지금은 변증과 설득을 회복해야 할 때다 지금은 변증과 설득을 회복해야 할 때다
풀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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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자신의 간증과 신앙고백이 되어야 한다 신학은 자신의 간증과 신앙고백이 되어야 한다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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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모하다. 어떻게 보면 교파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교회 내 교리공부는 물론 교회 소그룹들이 그룹성경공부 모임 대신 교제중심의 그룹모임으로 변질되어져가는 흐름이 강한 현실 속에서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란 책제목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을 거북하게 할 수 있다. 그것도 600쪽이 넘는 엄청난 분량에, 두 권 중의 첫 번째 책이라니. 이것은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것 같고, 출판사 입장에서는 망하기를 작정한 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강단을 복음으로 풍성하게 하는 방법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강단을 복음으로 풍성하게 하는 방법
개혁신앙 기본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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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라울과 제임스 보이스와 존 프레임이 추천한 책이라면 독자는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이 책은 개혁 신앙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개혁 신앙은 신학의 한 분파가 아닌 성경에 충실한 진리임을 이 책은 방증한다.   삶과 연관된 것이 진정한 개혁임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미국의 보수 신학의 대변자이자 수호자였던 그레샴 메이첸이 설립한 교단의 신학이 무엇인지를 이 책은 잘 대변한다.   스펄전은 칼빈주의를 오직 성경적 기독교에 대한 별칭이라고 평가했다. 회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글은 더글라스 윌슨이 ...
말쟁이와 글쟁이가 만났다 말쟁이와 글쟁이가 만났다
직설
박영선, 김관성/두란노/김재윤 명예편집위원


말쟁이와 글쟁이가 만났다. 사도 바울을 가리켜 말쟁이라고 했듯이 박영선 교수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설교자다. 남포 교회를 개척해 특별한 프로그램 없이 설교만으로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기이한(?) 현상을 낳았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박 목사님의 설교를 권하면서 교회는 남포교회에 출석하지 못하지만 박 목사님의 설교를 매주 들으며 은혜를 받고 있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김관성 목사님은 페이스북 스타다. 진솔하고 소탈한 글들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낳았다. 책 제목인 직설은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
여전할 것인가, 역전할 것인가? 여전할 것인가, 역전할 것인가?
약자를 위한 예배와 저항의 책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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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라의 중심에서 대통령을 보필하고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모든 관할 부서를 지휘하며 살림을 책임지는 국무총리의 임명을 놓고 한 후보자의 말이 우리를 논쟁하게 하였다. “일제의 통치가 우리 나라의 근대화를 이룩하는 수단이었고, 하나님께서 이런 역사를 미개한 우리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사용하였다”는 내용에 승리주의적인 해석의 말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이 후보의 말을 듣고 그의 역사관과 국가관은 철저히 바벨론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땅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모든 비극적인 악들은 하나님의 허용적인 관점에...
성경에 충실한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선포 성경에 충실한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선포
오직 한길
존 라일/CLC/김재윤 명예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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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한국 교회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책 혼탁한 한국 교회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책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역사
로버트 레담/권태경, 채천석/개혁주의신학사(P&R)/김재윤 명예편집위원


개혁주의신학사(P&R)에서 출간된 이 웨스트민스터 총회 시리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크레이그 센터의 괄목할 만한 연구물로서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연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반가운 책이다.   이 책은 웨스트민스터 총회 교리의 발전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로버트 레담은 유능한 학자로서 이 책은 조엘 비키와 칼 트루만 교수가 추천한 책이다.   이 책은 여러 자료들을 섭렵해 밀도 있게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장로교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원하는 모든 학도들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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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신학자
제럴드 히스탠드/김장복/부흥과개혁사/조영민 편집위원


 “목사-신학자” 이 제목 자체가 나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정말 목사이면서 신학자이고, 신학자이면서 목사인 그런 목회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간절한 열망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역교회의 담임목사다. 그런데 굳이 목사가 읽지 않아도 될 법한 책들을 읽기 위해서 때로는 머리가 아프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왜 이 책을 읽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이유는 바른 신학이 없이는 바른 목회를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매주 찾아오는 수많은 일들을 하는데 가끔은 이런 글들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청교도들의 사상과 가르침 청교도들의 사상과 가르침
청교도 사상
제임스 패커/박영호/기독교문서선교회/김재윤


  이 책은 새롭게 읽기 좋게 잘 편집한 개정 증보판으로써 이미 오래전 이 책을 정독해 읽었었고 많은 유익을 얻었다. 제임스 패커는 청교도에 관한 전문가이지만 천주교와의 연합 운동에 배서인으로 참여함으로 빈축을 샀다.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께서는 제임스 패커와 함께 청교도를 다시 영국에 복원하는 일에 이안 머리 목사님과 함께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으나 후에 영혼 멸절설을 주장한 존 스토트와 복음적이지 않은 교단에 속한 교회들이 그 교단을 떠나야 한다는 논쟁으로 생애 후반기에 점점 고립되어 가셨다.   개...
기도신학을 세우기 원하는 자들에게 기도신학을 세우기 원하는 자들에게
기도란 무엇인가
한병수/SFC/방영민 편집위원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다. 기독교에만 기도라는 도구가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 종교에도 기도가 있어서 그들이 믿는 신에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행위가 있다. 불교에도 방언을 하며 신비한 기도의 세계를 경험하는 기도자들이 있고 우리 나라는 무속신앙이 강해서 장독대 앞에 정한수를 떠놓고 여러 가지 소원을 빌기도한다. 성경에도 보면 이방의 왕들도 아침 일찍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기도하는 장면을 볼 수 있고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도 미친 듯이 기도하는 장면이 있다.   기독교 내에서도...
초대교회는 예수를 예배하지 않았다, 다만… 초대교회는 예수를 예배하지 않았다, 다만…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
제임스 던/박규태/좋은씨앗/뉴스앤조이 강동석기자


   "신약성경의 대부분이 논쟁적이다." 존 그레셤 메이첸(John Gresham Machen)의 말이다. <기독교와 자유주의>로 당대 근본주의신학을 변호했던 메이첸조차 성경을 논쟁적인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 변증으로 이 문제를 풀어 가려 했다.   신약성경이 논쟁적이라는 메이첸의 말을 발판 삼아, 다음 질문을 던져 보려 한다.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 어처구니없는 질문일까. 이 질문은 세계적인 신약학자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이 던진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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