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틈이 생기면 그 틈으로 무엇이든 들어온다
살다보면 참 많은 사람과 일을 만나게 된다. 개중엔 도움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잡아먹을 듯 덤벼드는 사람 또한 있다. 일도 마찬가지.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얽히고설켜 도대체 끝이 확실치 않은 일도 있다. 골치 아픈 사람과 일을 마주하는 일이 잦다보면 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수순이다. 사는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처하는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우리 인생사인 것만 같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주인공이 바뀌었다. 일과 사람에 일희일비하는 존재인 나는 그 일과 사람에 견주면 주변인이다. 상황을 만들어가는 당당한 주인공이 아니라 그것들에 지배당하고 눌려있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태복음 8:17) 하지만 성경에서 본 우리는 그와 같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사단이 세상을 지배할 합법적인 권리를 양도받았지만 그 권리란 사단에게 틈을 주는 한에서 일 뿐 결정적으로 또는 항구적으로 우리에게 미치는 권세는 아니다.
비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요 구주임을 믿지 않으므로 믿기 전까지 사단의 지배하에 온전히 묶여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크리스천이 사단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크리스천이라 해도 그가 틈을 내주게 되면 사단은 언제라도 그 부분에서 합법적인 권리를 행사하게 되는 구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말씀은 어떻게 되는 건가?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데서 난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내가 그 말씀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말씀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말씀이 되고 만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다. 뿌린 대로 거두는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대로 되라” 하신 말씀과 맥을 같이 한다. 안 된다고 믿으면 안 되는 것이고 된다고 믿으면 그 믿음대로 되는 것이다. ‘이 정도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작은 행동(〈마귀의 출입구를 차단하라〉에서 저자 존 비비어가 든 예를 보면, 지금 당장 기도하라는 영적 부담을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로 미루는 것, 하나님이 원하신 제의가 아님에도 출판사의 출판 제의에 혹해서 끌려 다니는 것 등) 또한 그와 같은 믿음과 일치한다.
대수롭지 않다고 믿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사단의 전략이다. 사단은 그 틈을 파고든다. 이미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틈을 파고드는 사단의 공격은 집요하다. 그리고 그런 전략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잘 먹혀들고 있다.
하와에게 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지금의 경우로 따지면 ‘어느 정도 아는 선’에서 그치고 만 것이다. 그와 같은 태도가 말씀을 상대화시켰다. 하나님의 명령과 하와의 답변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하와가 뱀에게 상대화한 답변)
작은 틈이라고 섣불리 보지 말기를 바란다. 그 틈으로 인해 하와는 선악과를 먹었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줌으로써 인류 전체에 죄가 들어오게 됐다. 그 대가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그 틈을 어떻게 가볍게만 볼 수 있겠는가. 존 비비어가 겨냥하는 부분이 그런 것이다.
작은 틈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크게 낭패를 본다는 것. 그 낭패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진 뜻 전부를 무효로 할 만큼 큰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외침이 “마귀의 출입구를 차단하라”는 말로 형상화되었음은 물론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그 말은 우리에게 틈을 막는 결정적인 한 가지에 주목할 것을 아울러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순종’이다. 순종이야말로 그 틈을 막는 유일한 길임을 비켜가지 않는다. 순종의 극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알 때 우리의 순종이 어떠해야함은 말로 하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단에게 한 번도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저자를 통해 그와 같은 일이 가능했던 이유를 예수 그리스도가 보인 순종에서 찾게 된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요한복음 5:19) 이 말씀으로 우린 예수 그리스도가 나사로가 죽게 된 줄 알고도 여러 날을 지체한 이유와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치유하신 38년 된 병자 외에도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을 치유하시지 않은 이유, 그리고 진흙을 사용하시기도 하고 제사장에게 보내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신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된다.
불손종이 틈을 벌린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당신은 내가 왜 ‘합법적인 권한(legal right)'이라는 말을 썼는지 이해되는가?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은 영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질서의 법이다. 하나님의 신적인 법의 지배권 하에서 마귀의 권세는 단지 어두움의 영역에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불순종한 사람은 영적인 밝음에서 떠나 영적인 어두움에 속하게 된다. 이 어두움은 원수가 합법적으로 접근해 들어오는 장소이다.”(데살로니가전서 5:5, 마태복음 6:24)
틈을 내주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다.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친히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상관없는 삶은 느닷없이 오는 것이다. 겨울 찬바람이 문풍지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한꺼번에 몰려들어 온 방안을 점령해 버리듯이 우리 안에 난 틈은 사단의 합법적인 지배 공간이 되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전부를 무력화시킨다. 이 상태를 두고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호흡이 단절된 공간에 기댈 것이라곤 두려움과 불안이 전부다. ‘왜 이러지’ 하는 답답함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바뀌지 않는 상황뿐이다. 더 이상 지체할 틈이 없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 12:2) 이 책의 메시지이자 소망을 되새기자.
저자 존 비비어
전 세계를 누비며, 하나님의 진리 안에 하나 님이 만든 본연의 자유를 누리며 순종과 사랑의 사람으 로 오늘을 살아가도록 도전을 주는 사역자이다. 그는 성 령의 지시를 따라 시리즈로 책을 집필하였는데, 첫 번째 책이《존 비비어의 관계》이고, 두 번째 책이《존 비비어 의 두려움》이며, 마지막으로 성령님께서 계시적으로 주 신 예리한 통찰력과 지혜를 담은 책이《존 비비어의 분별 력》임을 본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존 비비어가 선 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그대로 전달하며,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분별력으로 순종하며 항상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탁월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그의 아내이자,《통제불능의 상황에서도 난 즐겁기만 하 다》의 저자인 리사 비비어와 함께 창설한 사역재단'메 신저 인터내셔널'은 국제적인 전도기관으로 성장했으며, 그의 사역재단에서 운영하는 TV 프로그램 <메신저>가 216개국에서 방영되고 있다. 존 비비어는 그의 책과 이야 기를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친밀 한 관계로 회복되기를 희망한다. 주요 저서로는《회개》, 《친밀감》, 《축복의 통로》, 《승리》(이상 순전한 나드), 《순종》, 《존중》, 《구원》(이상 두란노), 《관계》, 《임재》(이상 NCD)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