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자폐인 아들에 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아버지의 초상
이 책에서 폴 콜린스는 자폐아인 아들에 대한 수기와 영원한 아웃사이더의 세계로 떠난 여행기를 뒤섞는다. 콜린스는 잊혀진 천재와 묻혀버린 의학 기록을 들추어내다가, 왜 자기가 평생 동안 재능을 타고난 기인들을 찾아 헤맸는지를 깨닫게 된다.
콜린스는 자폐증을 이해하는 데 왜 이 이야기들이 상관이 있는지, 아니 반드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대니얼 디포가 <로빈슨 크루소>를 썼던 시대에 조너선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쓴 계기가 된 야생 소년 피터.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인간이 아니거나 인간과 동물 사이의 중간에 있는 종족이라 불렀다.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만든 칼 폰 린네조차 피터를 어떤 존재로 구분해야할지 몰라 호모 페루스, 즉 야생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의 생명체로 분류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30년대에 의사, 한스 아스퍼거는 ‘교육불가’ 판정을 받은 프리츠를 만난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뭐라고 지시를 하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질문을 던지면 단어 중 아무거나 하나를 되받아 무표정하게 아무 뜻 없이 되풀이하는, 그러나 수학적 재능은 뛰어난 아이.
동시대에 미국 볼티모어에서 레오 카너 박사도 간단한 대명사를 잘 쓰지 못해 ‘너’와 ‘나’를 혼동하는 프리츠 같은 아이를 만난다. 그들은 이러한 증상을 지칭하기 위해 자폐증(autism)이라는 단어를 만든다. 이때까지 자폐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모두 정신병원으로 보내졌으며, 실제 그 후에도 한동안은 정신병이나 장애로 분류되어 격리되었다. 정신지체인으로 분류된 이들은 전국 곳곳의 빈민수용소로 보내졌고, 이들은 그곳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들판의 짐승처럼 죽어나갔다. 베텔하임은 자폐증이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으로부터 기인한다면서 부모로부터의 격리를 주장했다. 물론, 그가 자신의 병원에서 아동을 학대하고, 자신의 이력과 의사라는 사실조차 거짓이라는 사기꾼임이 죽은 뒤에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 후 유타 프리스에 의해 복원된 한스 아스퍼거의 잊혀진 논문들에 의해 자폐증이란 인간이라는 범주의 거대한 연속체를 이루는 한 끝에 있는 영원한 아웃사이더들을 아우르는 부류로 분류된다. 아스퍼거는 자폐인이란 유아기의 외상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아니라, 자기만의 영역에서 살기는 하지만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재능 있는 괴짜들이라고 주장했다.
자폐증의 기원에 대한 의문은 자폐증 연구가 처음 시작되었을 무렵부터 제기되었다. 베텔하임은 부모의 탓으로 돌렸다. 아스퍼거도 가족에게 눈을 돌렸으나 관점은 달랐다. 그러다가 최근 베런 코헨의 연구조사 이후에야 그 어렴풋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베런 코헨은 영국에서 자폐아를 둔 부모 천 쌍을 조사했는데, 아버지가 엔지니어링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전국 평균의 두 배를 웃돌았다. 과학자나 회계사 등 집중력과 추상화 능력을 요구하며 주로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빈도도 자폐아 가정에서 훨씬 높았고, 예술가는 평균보다 네 배 가까이 많았다. 베런 코헨과 다른 연구자들은 학문적으로 가장 뛰어난 집단으로 범위를 좁혀 다시 조사했는데, 케임브리지 대학 학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과학 전공자 가족 중에 자폐인이 있을 확률이 문학 전공자 가족에 비해 여섯 배나 높았다. 베런 코헨의 연구 결과로 자폐증에는 ‘기크(geek;괴짜, 기인이라는 뜻) 신드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런 다른 세계에서 온 괴짜들은 예전부터 수학 분야에서 파이(π)값처럼 늘 상수로 존재해 왔다. ‘수학적 추상’이라는 제목의 19세기 만화 하나는 얼빠진 수학 교수가 아침 식사가 차려진 식탁과 벽난로 사이에 앉아서, 손에 쥔 달걀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고 냄비 안에서는 달걀 대신 시계가 끓고 있는 모습이 그려 있다. 이는 영국의 위대한 수학자 윌리엄 로언 해밀턴의 모습을 아주 살짝 과장한 만화였다. 그는 자기 집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식당에는 노트가 눈더미처럼 쌓였고 그가 사망한 뒤 식당을 치우게 되었는데, 문서 사이에 남은 음식이 그대로 있는 접시가 끼어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 자폐증은 정신병으로 취급받거나 격리수용하지 않는다. 자폐는 장애인 동시에 능력이며, 다양한 인간의 연속체 끝에 있는 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시대에 보통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앞으로도 존재할 다른 인지적 세계를 가진 사람들. 그들 또한 ‘네모난 못’이었다.
이러한 자폐인 서반트(천재)들로는 우리가 아는 위대한 학자들 중에서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작 뉴턴, 아인슈타인, 밴 핼런 형제, 앨런 튜링, 제임스 풀렌, 템플 그랜딘, 조지프 코넬, 헨리 다거, 파울 에르되시, 글렌 굴드, 앤디 워홀, 비트겐슈타인, 반 고흐, 스티븐 윌셔, 그리고 세계적인 문호 헤밍웨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 등.
자폐인과 자폐증 연구자를 찾아 떠난 역사 여행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하는 프로그래머들에게로 이어진다. 그들은 오직 회사에 일하러 가고 회사 마당 한쪽에 있는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다시 회사로 간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며 그밖에 뭘 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마이크로 소프트 직원 중에는 수학자와 프로그래머들의 이런 일을 대신 해 주는 전담 직원까지 배치해 놓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 속에 자폐를 가진 기인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전혀 다른 인식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부류의 사람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자폐인 스스로도 자폐인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외계인으로 묘사하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인 것은,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라는 점이다. 자폐인은 곧 우리이고, 자폐인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이해해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라. 장애란 일반적으로 무엇이 부족한 상태로 정의된다. 그러나 자폐증은 능력이자 동시에 장애다. 무엇이 부족할 뿐 아니라 무엇이 풍부하기도 한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고유한 특성이 지나치게 많이 발현된 경우다. 동물 중에도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 있지만, 추상적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자폐인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데, 우리는 그 존재를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 폴 콜린스(Paul Collins)
폴 콜린스는 196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다. 맥스위니스 풀판사의 임프린트인, 콜린스 라이브러리에서 절판된 책 가운데 특이하고 뛰어난 책을 새롭게 펴내고 있다. 그가 쓴 <밴버드의 어리석음>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1년 최고의 책으로 꼽혔고, <식스펜스 하우스>는 북센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톰의 문제: 토머스 페인의 이상한 사후와 시대>가 있다. 오리건 주에서 살다가 예산 삭감을 이유로 자폐아인 아들, 모건더러 일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으라고 해서 지금은 아이오와 주로 이사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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