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황무지에 생명이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황무지에 생명이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우리의 현실을 담아내다
학문적으로 우수한 서구 신학을 번역하여 보급하고 연구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초하여 우리 시대와 사회 현실을 분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일은 더 중요하다. 신학을 공부하지만 사회 문제에 관심 갖지 못하고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외면당하는 공부가 될 뿐이다. 교회가 각 나라와 지역에 흩어져 세워진 이유는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지 세상과 똑같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현대 교회를 보면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세상이 사랑하는 자본과 경쟁과 고지론과 번영을 교회가 더 간절히 원하는 것 같다. 이미 우리는 이런 정신과 가치관으로 달려온 지난 시절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었는지 세월호와 같은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이런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가치관은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사회를 비도덕적으로 변질시킨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교회 안에서만의 찬양과 경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우리 사회의 문제와 고질적인 질병과 청년들의 아픔을 분석하고 성경적인 대안을 내놓는다. 젊은 신학자요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도록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어두운 세상에 교회가 빛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 주제 아래 그것의 정의와 질서와 의미를 엣세이 형식으로 풀어간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그 쉬움 속에 담겨 있는 무게와 책임감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같은 마음을 느끼게 한다.
왕을 버리고 왕을 구하다
성경을 보면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에 접어 들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와 같이’(삼상 8장 5절) 왕을 달라고 요구한다. 광야시대와 사사를 중심으로한 지방체제 시대 동안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문명과 기술의 발전을 이룩한 이방나라를 보며 자신들도 그러한 부국강병과 물질문명이 찬란한 나라를 원했던 것이다. 광야를 걸으며 내리는 비와 만나에 만족하며 기다림과 여유와 함께라는 삶을 뿌리치고, 저수지와 창고를 만들어 민족중흥의 유구한 역사를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청동기를 지녔던 이스라엘이 철기를 지닌 주변 국가를 보며 우리도 왕을 세워 더 강한 나라가 되고 싶었던 것이 큰 죄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런 중앙집권적인 나라가 되어 가난과 소외와 차별과 배제와 혐오가 없는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는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하는 왕을 원했지만 욕망을 제어하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버린다. 자신들의 이기적인 소원을 이룩해줄 왕을 세웠지만 그 소원을 정의롭게 분배하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버린다.
하나님 나라는 주인이 바뀐 나라다. 하나님이 왕이시고 그분이 다스리는 곳이다. 하나님 나라는 물론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오늘 이루어지는 평화와 화해의 현장이다. 애굽과 가나안과 로마와 같이 피라미드 지배 아래서 자유를 잃은 평민들과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곳이 아니다. 생명을 가진 모두가 존중과 배려와 평등과 기회를 제공받는 곳이다. 신분과 부와 외모에 따라서 대우가 달라지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진정한 왕을 버리고 이기적인 왕을 세워 피라미드를 더 견고하게 하려고 한다. 이것은 분명히 사탄의 지배체제다. 하나님이 받아야 할 경배와 영광을 인간이 받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이런 나라와 체제를 거부하는 곳이다. 이런 가치관으로 물든 사회와 구조와 불의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왕이 임하셔셔 그곳에 정의와 평화가 임하도록 실천해야한다. 결코 정치적인 일이 아니라 영적이고 신학적인 일이다.
기독교의 목표
저자는 책에서 기독교의 목표를 보여준다. 기독교는 이 땅에서 기독교 왕국을 건설하지 않고 우리를 종교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기독교는 종교와 형식과 틀로 사람을 가두지 않는다. 오히려 더 본질적인 예수님의 정신과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도를 걸어가는 것에 가치를 둔다. 또한 기독교는 세상에서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섬기는 도구이고 세상의 정신과 반대를 선택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진리이다. 또한 그 진리가 현실에서 역사되는 것이다. 저자는 그 진리가 우리의 교회와 사회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후자에 더 강조점을 둔다. 누구나 천국을 소망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사는 것은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그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 어두움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공리주의와 단체의 유익을 위해 약자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것을 뒤짚는 것이다.
기독교는 체제 순응적이지 않고 가치 전복적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정부와 기업과 제도와 법들을 향해 대항한다. 기독교는 결코 개인적이고 협소하고 이기적이며 사사로운 진리가 아니다. 나를 넘어서고 교회를 넘어서고 사회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말씀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 정신을 반영하는 기독교의 목표가 선명하다. 배제와 혐오가 아니라 사랑과 긍휼의 종교이다. 전도와 포교 이전에 타인의 권리와 인격과 생명을 먼저 지켜주는 것이다.
교회의 기능
필자는 교회는 사람이 변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아들의 하늘의 아들이 되는 곳이고 어둠의 자녀가 빛의 자녀가 되는 곳이다. 교회 안에 이러한 영적인 변화와 거듭남과 회심이 없다면 교회는 영적 기능을 상실한 것이고 이 사회에서 존재할 이유와 가치가 없다. 이곳에서는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죄사함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땅에서 묶여 있는 것들이 풀어져 하늘을 향해 믿음의 비상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본질적인 기능을 넘어 교회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회복을 위한 곳이라고 한다. 땅에서 일어나는 불의한 일들에 침묵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외치는 불편한 양심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실과 교회는 분리될 수 없고 오히려 더 직접적이다. 그 구성원이 교회에 들어오기에 교회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사회도 살려내야 하는 곳이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평등한 공동체이다. 교회의 직분은 권력과 계급이 아니라 섬기는 도구이고 타인을 위한 은사이다. 교회의 기능은 사랑과 협력과 봉사이다. 체제 유지와 확장이 일순위가 아니라 세상과 다른 질서를 갖춘 곳이 되어야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소외와 차별과 외면과 서러움 당하는 이들의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와 그 가치와 정신을 드러내는 등불이 되어야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보면 가슴에 각인되는 문구가 있는데 바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이다. 필자는 노마드 교회를 덮으며 이 구절이 생각났다. 이 교회는 단순히 유목하며 나그네로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의한 사회를 향해 예리하게 비판만 하는 것도 아니다. 삶에 대한 희망과 목표를 포기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회복시켜주는 곳이다.
이 교회는 많이 모이는 것을 자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공의와 정의가 이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자랑하는 교회이다. 가정과 직장과 일터와 삶의 모든 현장에서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것을 기뻐하는 교회이다. 교회가 짙은 종교성을 가지고 폭력적으로 다가 가기 이전에 한 사람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과 생명의 존엄과 인격의 고유함을 먼저 소중히 여기는 곳이다. 그래서 이 교회의 특징은 비판과 정죄와 예리함이 아니다. 지극한 사랑이다. 그래야 죽어가는 것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죽어가는 것이 무엇이든 노마드 교회는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