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서양사상을 조명한 최고의 지성사
서양사상을 조명한 최고의 지성사
저자에 의하면, 사상사란 역사와 철학의 경계선에 위치하여 그 지향점을 공유하는 사색과 관련된 학문이다. 사상사는 대체로 지성사라는 이름아래 집단적 사회적 현상의 일환으로서의 사상을 다뤄왔다. 사상을 사상가의 개별적인 내면세계로부터 끄집어내어 역사적 사회적인 상황과의 관련에서 조명해 온 것이 지성사라고 할 수 있다.
750여 쪽에 이르는 이 저작을 해독하는 키워드는 유럽의 근현대사에 있어 항구적으로 제기된 물음들 이다. 즉 그것은 신, 자연, 인간, 사회, 역사라는 다섯 가지 주제이다. 본서의 구성과내용은 바로 시대에 따라서 제기된 그 물음들에 대한 해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본서에서 보머 교수는 17세기에서부터 20세기까지의 유럽사상의 흐름을 ‘존재’(being)로부터 ‘생성’(becoming)으로 점차 변화한 과정으로 이해한다(9쪽). 즉 고정적이라든지 절대적인 것이 있다는 인식의 틀에서부터 “새롭고 상이한 어떤 것”으로 영원히 발전돼 나간다는 쪽으로 사고의 들이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본서는 사상의 박물관이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근현대 사상사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그 중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니체, 찰스 다윈,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버트런드 러셀, 존 로크, 루소, 마르크스, 몽테스키외, 존 스튜어트 밀, 프랜시스 베이컨, 볼테르, 사르트르, 스피노자, 칸트, 콩트, 파스칼, 그리고 프로이트의 이름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미 언급한 다섯 가지 큰 주제에 따라 구성되어 있고 합리주의 계몽주의, 과학혁명, 낭만주의, 실증주의, 역사주의, 유물론, 이신론, 자유주의, 그리고 회의주의 등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사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우리 앞에서 펼쳐지므로 주의를 집중하지 않는 독자는 현기증을 느낄만하다. 하지만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읽는 독자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인간은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존재’(723쪽)로서 그의 본성과 운명, 신과 자연 등에 관한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진다. 저자에 의하면 지성사는 과거야말로 이 ‘중대한 질문들’에 대한 풍요로운 사상의 원천이라고 본다(725쪽). 저자에 의하면 모든 사상은 특정 환경에서 생겨나며, 어떤 역사적인 순간의 영감(靈感)의 산물이며, 개인이나 집단이 독특한 형태의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생겨난다. 즉, 그러한 사상이 처음 생겨난 것은 대체로 그러한 환경이 주어졌거나 역사상 어떤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성사는 의미를 찾는 작업이다. 모든 사상은 그 역사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이런 특성은 그 사상이 생겨나게 된 배경만이 아니라 그 사상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지성사는 그 사상이 형성된 ‘원초적 경험’ 속으로 진입하여 본래의 모습대로 그 사상을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서 진리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믿음이다.
끝으로, 독자는 이 책에서 적지 않은 기독교 변증가와 신학자 또는 과학자들이 유럽 사상사에 기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이름은 기독교 변증가의 반열에 들어 있는 파스칼(Braise Pascal)이다. 저자에 따르면, 무한한 자연 가운데서 상실감을 느낀 파스칼에게 있어서 인간의 불균형은 그의 위대한 사고의 주제였다. 자연의 무한성 가운데서 인간은 무엇인가 라고 파스칼은 묻는다. 저자에 의하면, 파스칼은 종교사상가이며 동시에 위대한 과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초자연적인 계시 속에서만 확실성과안정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86쪽).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비참함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인간의 비참함은 파스칼의 이런 신념을 위한 그리고 기독교 변증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121쪽). 원죄는 그의 인간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고, 인간은 하나님의 각별한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와 폴 틸리히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이 두 문화 사이의 분수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572쪽), 이 기간은 위기 신학 이라 불리는 새로운 신학사조의 탄생기이기도 하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적 개신교를 극복하고자 했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인 슐라이에르마허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자신이 루터, 칼빈, 바울, 그리고 예레미아에게까지 연결되는 노선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키에르케고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자연(피조물) 사이에 커다란 간격을 설정하였다.
한편 ‘철학적 신학’의 폴 틸리히는 자신의 학파를 세우지 않고 독특한 위치에서 기여를 하였다. 그는 20세기 중반에 “오늘날 우리의 시대를 불안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공리(公理)가 되다시피 하였다”라고 썼다(579쪽). 그는 이러한 불안감이 팽배하는 이유가 현대의 삶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감정(부조리)에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문화의 신학자로서, “종교란 문화의 내용이고, 문화는 종교의 표현이다”라고 했다(624쪽). 한편 저자는 틸리히의 ‘존재에 의 용기’를 인용하면서 틸리히가 전통적 유신론을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도 했다(626쪽).
본서는 철저히 1차 자료(원사료)에 기반을 두면서, 역사 속에서의 사상의 역할을 설명해 주고 있다. 21세기의 목회자는 오늘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견하기 위해 근현대 사상의 기원과 그 영향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학의 기본적 임무 가운데 변증적 사역이 있듯이, 현대 목회자는 그의 사역 가운데 동일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오늘의 시대정신을 간파해야 하고, 기독교 지성의 이름으로 대답할 말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 부터 디지털 자본의 등장과 새 유럽의 건설에 이르기까지, 반기독교적 사조와 미래사회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도 목회자의 지적 무장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근현대 유럽의 중요한 사상가들에 대한 안내서인 이 책은 자세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