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나의 정경으로 구약 읽기
개론서를 읽는 것은 여러모로 유익하다. 무엇보다 그 학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 큰 유익일 것이다. 즉 그 학문의 핵심적 논의와 과정을 빠르게 조망함으로 그 학문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집중해야 할 주제들에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할 수 있다. 또한 파편적인 정보들을 큰 흐름과 맥락 가운데서 통전적으로 볼 수 있다. 꿰어내지 못한 정보는 유의미한 적용까지 이르기 힘들다. 더불어 세부 영역에서 핵심적인 주제들을 다룰 수 있다. 이는 앞의 유익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각 세부 영역의 역사를 알고, 그러한 파편적 정보들을 모아 더욱 세부적 주제 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
좋은 개론서가 많지만 정작 개론서를 꼼꼼하게 읽지 않거나 혹은 성급하게 세부적인 주제로 뛰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모든 개론서가 유익한 것은 아니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저자의 관점이 투영되고, 따라서 객관적 정보는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많은 논의들 가운데 어떠한 주장들을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론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저자의 책이 필수적이다. 처음에 방향을 잘못 잡으면 되돌아오기에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효율적 독서의 비결은 어떤 책을 읽을지 선택할 수 있는 분별력을 키우는 것이며, 반대로 어떤 책을 읽지 않아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일 것이다.
롤프 렌토르프(Rolf Rendtorff, 1925-2014)는 게르하르트 폰 라트(Gerhard von Rad, 1901-1971)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 렌토르프는 그의 스승인 폰 라트의 주요한 통찰들과 함께 브레바드 차일즈(Brevard Springs Childs, 1923-2007)의 정경비평 관점으로 구약성경을 바라본다. 렌토르프는 역사 비평적 방법을 비판하면서 최종적으로 주어진 구약성경의 본문을 존중한다. 현재의 형태를 존중한다는 것은 이전의 다양한 층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성경이 형성되고 편집되었던 다양한 층과 이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한다. 그는 그러한 인식을 배제하지 않고 현재의 형태가 아주 정교하게 결합된 구성을 보인다고 강조한다.
렌토르프의 『구약정경개론』은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ein kanonischer Entwurf의 1권으로 이미 국내에 번역 출간된 『구약정경신학』(새물결플러스, 2009)과 짝을 이루는 책이다. 출간의 순서는 『구약정경개론』이 10년가량 늦지만 저자의 의도대로라면 이 책을 읽은 뒤 2권으로 넘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제1권에서 현재 주어진 성경 본문을 존중하며 첫 구절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정경을 한 차례 관통 한 뒤, 각 주제의 관련성을 더욱 부각한 2권을 읽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구약성경을 포괄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히브리 성경의 순서에 따라 구성된다. 히브리 성경의 정경은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구성된다. '토라'는 '모세오경'이라고 명명되며, 히브리 성경의 '예언서'는 '여호수아로 시작하여 열왕기에 이르는 '전기 예언서'와 우리가 흔히 아는 예언서인 '후기 예언서'를 지칭한다. '성문서'는 앞의 두 부분에 속하지 않은 모든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히브리 성경이 어떤 이유로 이러한 순서와 구성으로 정경화 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순서와 구성을 통해 통찰과 새로움을 경험한다.
이 책 곳곳에 저자의 통찰이 담겨있다. 꼼꼼하게 읽어 가다 보면 성경의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구약 성경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세부적 본문들을 큰 맥락 가운데서 볼 수 있다. 또한 '토라'의 중요성과 더불어 '토라'와 '예언서', '성문서'와의 긴밀한 관계를 인식할 수 있다. 저자는 정경적 흐름 가운데 꼼꼼하게 본문을 살핀다. 중간중간 박스로 삽입되어 있는 설명을 통해 정경적 관점에서 비판받아왔던 본문들은 다시 한 번 학문적 첨언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