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트럼프가 당선되어서 더 읽어야 할 책
2009년 두분의 대통령이 몇 달을 간격으로 서거하셨다. 그해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안식년이어서 교회 내외의 관계된 목회자들이 주일설교를 대신했었다. 그런데 나도 그 빈자리를 대신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분의 대통령이 돌아가신 직후에 설교를 하게 됐었다. 그중 김대중 대통령의 장례식이 있었을 때 그러한 부분을 언급하며 짤막하게 설교 중 애도의 말을 했었다. 정치적 언급은 전혀 없었다-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을 본당 앞에서 인사할 때 교인은 아니었지만 주일예배는 가끔씩 참석하던 어떤 성도분이 약간은 굳은 표정으로 내게 한 마디 했다. 지금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시죠라고 말하곤 갔다. 애도의 표현을 그 분은 정치적 편향성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했던 것 같다.
이번에 읽은 ‘나라, 권력, 영광(팀 앨버타, 비아토르)’을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하다는 기사를 들으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트럼프 현상과 기독교의 지나친 정치적 편향성을 다루는 시의적절한 이 책을 미국 대선전 다 읽고 싶었는데 미국대선의 결과를 보며 다 읽게 되었다. 변명하자면 내가 게을러서라기 보다는 찾아보기까지 치면 700쪽이 넘었고 본 내용만으로도 600쪽 중반이나 되는 어마무시한 벽돌책인 탓이 컸다. 출판사인 비아토르도 좀더 일찍 이 책을 출간하고 싶었는데 대선 임박해서 나오게 돼서 많이 아쉬워 했다. 사실 이 책은 기독교 출판사에서 나와서 종교서적 같지만 정치적 칼라가 강하다. 게다가 저자가 발로 현장을 뛰어다녀 쓴 저널리즘과 르포같은 면이 있기에 종교라는 테두리에 가두기에는 많이 아쉬운 책이다. 그렇다고 기독교적 정치관 문제를 다룬 다는 점에서 정치서적이나 시사서적의 울타리에만 가두기에는 그 울타리가 너무 협소하다.
그런데 이런 시사적 정치 문제를 다룬 책들은 그 이슈가 끝나고 나면 그 효용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거나 그 주목도도 사라져 중고서적으로도 거의 무의미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 수명을 다한 걸까? 게다가 이 책은 해리스가 전면에 나서기 전 쓰여졌기에- 해리스의 등극을 한번 언급은 한다. 아마도 역자의 첨언이 아니었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이 든다- 더더욱 그 입지가 좁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읽을 가치가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었기에 이제 이 책은 더 주목할 가치가 있는 듯 싶다. 이것은 그저 트럼프의 당선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또 다른 정치와 기독교의 동반자 관계의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국내독자들은 대부분 느끼겠지만 이 책에서 언급되는 교회들과 목회자들의 이름은 생경함에도 국내 정치와 기독교의 모습을 읽는 듯한 기시감 또는 데자뷰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주의라고 주장하거나 보수 기독교라는 간판을 가진 미국교회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윤리적으로는 최악의 후보라 할 수 있는 트럼프를 옹호하고 그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기독교의 중진들에게 강단을 내어주고 지지하는 기현상의 현장을 누비며 다닌다. 심지어 클린턴에게 들이댔던 윤리적 잣대를 트럼프에게는 외면하는 이중성을 저자는 폭로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했다. 우리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결과는 만들어낸 촛불혁명을 보았지만 그 촛불혁명과 더불어 적잖이 보수 기독교와 결부된 태극기 부대라는 또 다른 세력의 태동을 보았고 그 몸집이 커져 지금 우리 나라의 중심부에 또아리 틀고 있고 적지 않은 교회들과 성도들이 그들과 손을 잡고 있다. 동성애는 비판하면서도 무속과 사이비 신앙과 추문으로 얼룩진 지도자는 지지하는 이중성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목회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 교회에 자리하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성도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가 했던 2009년 애도의 표현을 2024년 했다면 아마도 예배후가 아니라 예배 중간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성도를 접하게 되고 항의하는 성도를 다수 만날지도 모르는 것이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부터라도 이에 대한 고민을 심각히 해야할 우리로서는 이 책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고 슬픔을 느꼈다. 정치적 중립을 표하고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교회가 텅텅 비는 일과 목회자를 쫓아내려는 압력이 들어오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도 염려해야 할 듯 싶다.
이 책을 읽는 중후반까지는 아픔과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이런 토네이도 같은 현실 속에서 희망을 갖고 걸어가는 이들을 책 후반에서는 담아낸다. 단지 정치적 갈등을 넘어 복음을 수호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워가려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히 트럼프를 넘어 세상에 경도되고 지배당하는 교회에서 비롯된 문제들이고 결국 그것은 교회를 병들게 했음을 인지하며 싸워 나가야 함을 그린다.
트럼프는 당선됐고 이제 이전과는 다른 파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에 대해 대비하고 풀어가야겠지만 우리는 우리 내부의 정치와 한국교회의 문제를 이 책을 통해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은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정치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이 책은 알려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