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목회자와 식사대접
<목회자와 식사대접>
예전에 섬기던 청년이(이제는 애 아빠지만) 점심 때 전화가 와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하자고 약속을 하고 교회에 도착을 하면 전화를 하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따뜻한 순대 국밥 한 그릇을 했습니다. 저를 찾아 오면 점심 값을 내는 데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이번에도 점심 값을 계산하고 나오는 그에게 점심 잘 먹었다고 했더니 최고로 모시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오늘 먹은 밥이 최고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제가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는 비싼 음식 대접을 꽤 많이 받았습니다. 대구에서 유명한 식당은 많이 다녔죠. 그래서 좋은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다녔고 그런 곳을 가지 못한 동역자를 좀 무시하기도 했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랬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세상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돈을 벌어서 헌금을 하고 그 돈으로 자신들은 먹지도 못했던 음식과 갈 엄두도 못한 식당을 거리낌 없이 갔던 지난 날의 나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운 것입니다.
최근에 백종원씨가 식당을 컨설팅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어제 오전에 재방송을 보았는데 학교 앞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의 사연이었습니다. 하루에 10만원을 판 것이 최고의 매출이었고 백종원씨가 분식집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해서 실행한 검증단이 분식집에서 주문을 하는 방법이 분식집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에게는 너무 벅찬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주문에 당황했고 너무 힘겹게 일을 해 냈습니다. 그러나 백종원씨는 이런 환경을 창업을 하시는 분들이 너무 모른 채 시작하기에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식당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나도 힘들게 돈을 벌고 하루에 10만원을 벌면 무조건 적자이고 20만원을 벌면 조금은 나아진다는 말 속에서 라면과 김밥을 몆 개를 팔아야 20만원을 벌 수 있을까요? 그런 성도들의 땀을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한 채 한 끼에 몆 만 원씩 하는 것을 아무런 꺼리낌 없이 먹었던 저의 모습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참석한 어떤 부흥회에서 우리나라의 이름난 부흥사인 이모 목사가 자신은 자연산 회가 아니면 안 먹고 그날 저녁에 1인분에 15만원짜리 돔을 먹었다고 설교 시간에 자랑하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치가 떨렸습니다.
내가 비싸다고 생각되는 그 음식은 대접하는 성도들의 생각도 비싼 음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라는 이유로 대접을 하고 그 대접을 아무런 꺼리낌 없이 받는다면 진짜 이건 아닙니다. 적당한 선에서 대접하는 문화를 우리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겨울에 따뜻한 순대 국밥 한 그릇. 여름이면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에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라고 한다면 그 어떤 음식보다 더 좋은 식사의 시간일 것입니다. 식사는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겠죠^^ 맘 편하게 부담 없이 먹는 식사가 진짜 좋은 대접이고 훌륭한 음식일 것입니다. 저와 국밥 한 그릇 하실 분 언제든지 오십시요. 맘 편히 밥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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