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냥이 목욕

문양호 | 2017.01.06 16:23
『냥이 목욕』

새해들어 처음으로 집사의 직분을 다했다.
교회 집사 말고 냥이 집사로서의 역할 말이다.
연말가기 전 한다고 작정한 것이 괜히 마음이 분주하고 어수선해 미루며 못하던 것을 새해들어 이제사 하게 됐다. 냥이화장실이 지저분해 모래를 교체하는 김에 목욕까지 감행했다. 밤이긴 했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목욕 후 춥지 않을 듯 같기도 했다. 여러 동물을 과거에 키워보았지만 동물들이 그래도 날 잘 따르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강아지나 고양이 목욕을 시키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아마도 동물 목욕의 은사(?)가 있는 듯 하다.

냥이 두 마리중 한 마리는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에 담아두면 그것이 줗은지 무척 평안해 보인다. 물속에 놔두면 한 나절이라도 그냥 있을 듯한 모습이다.
미루었던 일을 끝내고 나니 내자신도 마음이 개운하다.

갑자기 목욕이 하고 싶어진다. 그저 샤워가 아니라 냥이마냥 뜨거운 탕 속에 푹 담그고 싶다.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새해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계획은 커녕 내겐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미진한 일들과 버리지 못한 것, 해결못한 일들이 숱하게 쌓여 있다.

추상적으로 계획한 것들은 여럿 있지만 그것을 위한 실제적인 노력도 아직 별로 없다.
사실 2016년 마지막 날이나 2017년의 새해는 그리 다를 것은 없다. 달력이 바뀌는 것마냥 새해라고 새로운 해가 뜨는 것도 아니고 변화된 것은 없다.
다시 기준을 잡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기준이 있기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를 새롭게 설정하고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운동장에 줄하나 긋고 출발선을 잡을 때 백미터 달리기는 시작되고 파놓은 턱을 도움받아 제자리 넓이뛰기라도 할 수 있듯이.

환경은 달라지지 않아도 나는 달라질 수 있다.
이미 달력은 바뀌고 다이어리도 여러 장 넘어갔지만 조금 늦게라도 결심하고 시작하는 것이 가만 주저 앉아 뭉개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시작해보자.
살부터 빼야겠다. 내 영혼 속 덕지덕지 붙은 내부지방을...
혹좀 떼어내야겠다. 내 머리속에 자리한 죄와 욕심, 쓴뿌리들을...
켜켜이 쌓여 빛을 잃은 영성의 등잔 갓도 뜨거운 물에 푹 담가 씻어내고 아구의 진액처럼 나를 둘러싼 게으름과 만성적인 태만도 말씀의 강한 용액에 씻어내는 작업을 해야겠다.
이젠 집사가 아니라 목사로서 말이다.

게으른 목사의 때늦은 출발에 대한 변과 한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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