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통로
축복의 통로라는 말이 있다.
목회자는 누구보다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말 하면 목회자가 복 많이 받고 사례 많이 받으라는 말로 오해할 수 있다. 좋은 차타고 다니고 목회자에게 잘 대접해야 한다는 말로 오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통로는 통로일 뿐이다. 곧 지나가는 통로, 전달하는 통로일 뿐이다.
누군가 목회자는 파이프 같다고 했다. 파이프는 거쳐 가는 통로이기에 깨끗해야 한다.
좋은 물을 보내도 파이프가 더러우면 물은 구정물이 된다. 물이 문제가 아니라 파이프가 문제다. 이 시대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은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통로가 되어야 할 전달자의 문제이다. 전하는 이가 정결하지 않고 거룩하지 않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경건에 힘쓰고 거룩을 추구해야 할 이유다. 목회자에게서 경건의 모습이 없는데 무언가 강한 메시지가 나온 다면 그것은 거짓일 수도 있다. 막말하는 설교자가 있다면 최소한 그 막말은 하나님과는 무관할 것이다.
또한 통로는 다시 말하지만 지나가는 곳이다.
통로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나 지도자에게 많은 물이 임하긴 해야 한다. 단지 잘 지나가도록 힘써야 한다. 특히 머물러선 안 된다. 고여서는 안 된다. 고이면 썩은 물이 되고 뜨거운 물이 고이면 식어버리게 된다. 물이 고일 때 목회자도 같이 썩는다.
지도자는 그저 지나가는 물로 인해 메마름을 면하는 곳이고 따뜻한 물이 지나감으로 인해 온기를 느끼는 것이지 그 물을 소유함이 아니다
그러기에 지도자는 많은 물을 받고 많은 물이 골고루 적절하게 흘러가도록 기도하고 힘쓰는 것이다.
그것이 중보기도이든, 사람이든 물질이든 말이다.
설교든 축복이든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축복의 통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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