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내 비문엔 어떤 내용의 글이?
1세기 전, ‘편도 선교사들’(one-way missionaries)이라고 알려진 일단의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갔다가 돌아올 왕복 배표가 아닌 선교지행 편도 표만 구입하여 짐 가방 대신 단출한 개인 물품만을 미리 준비한 관 속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항구를 빠져나가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교사들 중 밀른(A. W. Milne)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꿈은 남태평양 뉴헤브리디스(New Hebrides) 제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거기 원주민들은 앞서 파송했던 모든 선교사들을 살해한 잔혹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그곳으로 가려했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모두가 “얼마 못가서 죽을 터인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극구 만류를 했지만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떠나기 전 자신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선교지 편도 배표만 구입해서 뉴헤브리디스로 떠났다. 그의 짐은 자기 시신을 담을 수 있는 ‘관’ 하나와 단기간 사용할 간단한 일용품뿐이었다. 그는 항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장례식을 하는 것처럼 ‘소식이 없으면 죽은 줄 알라’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에콰도르 아우카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모두 피살된 짐 엘리어트 선교사와 4명의 동료들 얘기와 매우 흡사한 사람의 리얼 스토리이다.
물론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밀른은 짐 엘리어트 일행의 케이스와는 달리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그 섬에서 35년 동안 원주민을 사랑하며 선교하여 많은 교회와 신자를 세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 떠났을 때 원주민들은 마을 한 가운데 큰 무덤을 만들어 그를 묻고 묘비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겼다.
“그가 왔을 때 빛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때 어둠이 없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내용이다.
과거 미주신보에 실렸던 대조적인 실화 하나가 떠오른다. 한 때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했던 미주한인 교회가 분란 속에 휩싸였다. 교인들이 시험 들어 교회를 떠나게 되니 하루아침에 교세가 팍 줄어 작은 교회가 되고 말았다. 다름 아닌 원로 목사의 은퇴 사례금과 관련되어 벌어진 내홍이었다. 그는 은퇴 사례금으로 교회 앞에 300만 불을 요구했다고 한다.
한 은퇴목사의 지나친 개인 욕심이 행복했던 교회를 불행한 교회로 만들어놓고 만 것이다.
만일 이 은퇴 목사가 죽고 나서 교인들에게 그를 위한 비문의 글을 새기라 했다면 어떤 내용의 글이 새겨질까? 아마도 이런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그가 왔을 때 어둠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땐 빛이 없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를 위해선 어떤 시문이 새겨졌으면 좋겠는가?
빌 2:1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세상에서 죄 많은 불신자들 가운데 빛으로 나타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먼저 흠이 없고 순전해야 한다.
우리 무덤 비문에 새겨질 내용으로 다음 두 글보다 더 멋진 문장이 또 있을까?
“그가 왔을 땐 빛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땐 어둠이 없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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