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락 서평

구원을 팝니다(상)(하)(글 김민석/그림 김영화, 새물결플러스)
◎ 구원을 팝니다(상)(하)(글 김민석/그림 김영화, 새물결플러스)
종종 교회문제를 지적하며 비판하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자신은 자신이 비판하는 교회공동체와는 차원이 다른 이들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일견 그 말이 옳을 수는 있지만 결국 우리도 부족한 점과 결여가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하므로써 내 문제는 보지 못할 수 있다. 또는 비판을 하되 내가 비판하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지체라기 보다는 적대 세력인양 여기고 약간의 사랑도 없이 적대시하는 경우들도 있다. - 물론 비판받는 이들, 문제있는 이들도 비판하는 이들을 그렇게 여기곤 한다. -
김민석 작가의 만화를 처음에 접했을 때는 앞서 언급한 이들같다는 인상이 있곤 했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분명 그 비판은 날카롭지만 그들도 한 지체이고 한 공동체임을 잊지 않는 것을 보곤 한다. - 그의 만화에 빌런처럼 등장하는 이들이 그들의 문제를 돌이키지 않거나 그들의 옹성(甕城)을 깨뜨리지 못하고 작품을 끝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한국교회의 예민한 문제나 신앙상의 민감하고 고민되는 문제들을 건드림으로써 온전한 해답까지는 제시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생각해 볼만한 주제들을 우리들에게 제시하곤 한다. 이번 만화도 그렇다. ‘구원을 팝니다’란 제목마냥 구원이 마치 기독교에서 파는 인기상품처럼 소비하는 것이 교회의 한 일면이긴 하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시절 모 보수적인 선교단체에서 구원의 확신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멈칫했던 기억이 난다. 그 공부를 통해 신앙의 전환점이긴 했지만 당시 분명 인지했던 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과 ‘구원의 확신’은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 내게 지도자가 구원의 확신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제시했던 열 가지 정도의 질문은 모 유명 기독교출판사의 제자훈련 교재중 ‘구원의 확신’에 대한 공부에서도 나오는 질문이고 꽤 유명한 이단의 양육 내용에서도 거의 똑같게 나오는 질문이다. 이것은 그 질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좋은 내용이어도 악용될 경우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원을 받음’과 ‘구원의 확신’은 다른 의미를 지닌 것처럼 말이다.
김민석의 이번 작품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에 나아간다는 것을 상품화 하고 기복화 하는 이들을 비판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들 중 일부를 막는 우리의 이중성과 판단을 꼬집는다. 마치 하나님은 받으시는 이들을 우리가 선별해 들여보내고자 하는 완악함을 보인 다는 것이다.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부분적 접근을 하는 측면이 있기 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인 취지와 의미에서는 우리가 주목할만 하다. -동성애 문제는 사실 성경에서 본질적인 문제나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어질 주제는 아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양쪽 진영 모두 이 문제를 극대화 시키고 이슈화 함으로써 분란을 자초하는 면이 없지 않다.-
주인공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상적인 교회는 여러 작품에서 여러모양으로 비슷하게 등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꿈꾸는 교회는 우리의 꿈이기도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