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추천도서

책의 늪에서

어릴 적 나의 책읽기에 대한 본격적인 시작은 초등학교 2학년 땐가 교회수련회에 가서 내 별명을 책벌레라고 거짓말한데서 기인한 듯싶다. 본격적 시작이 그때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거짓말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듯싶다. 집안이 여유있다라고 말할 수 없기에 책 한권 사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학교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나 계림문고나 소년중앙으로 그 갈급함을 달래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안네의 일기’를 삼중당문고로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말을 갈아타게 됐다. 중2 때부터는 삼중당에서 벗어나 일반소설과 에세이집으로 무게중심을 옮겼고 중고시절 지금은 사라진 새로나 백화점 기독교서점이나 종로서적, 광화문생명의 말씀사, 종로5가의 교문사에서 간혹 기독교 서적들을 더해갔다. 대학교 시절은 도서관을 꽤나 이용했고 반포의 남서울교회에 정착한 후로는 주석과 기독교세계관과 연관된 책들로 그 관심사가 상당히 바뀌었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그동안 모았던 책들 중 자의반타의반 천권 이상을 정리했다. 신혼 초 도서관 라벨지까지 사다가 정리를 시도했지만―나의 반쪽이 주로 고생했지만―이사 몇 번으로 그 책들은 엉키고 엉켜 다시 정리와 분류를 시도하는 지금도 책분류는 난감 그 자체다. 책꽂이 십여 개에 두 겹씩 켜켜이 싸놓은 책들은 그 자체가 미로다. 지도가 되어야 할 책들이 내게는 헤어날 수 없는 늪이 된 듯싶다.
그래서 이번 송인규 교수님의 ‘책의 미로 책의 지도’는 더더욱 눈에 박히게 되었다. 부제인 ‘텍스트 숲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는 더욱 마음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저자가 송인규 교수님이다.
대학시절 이 분의 기독교 세계관 관련 소책자는 그 분류와 세심함으로 주목하게 되었는데 이후 아마도 ‘성경의 적용’인가로 기억되는 QT 관련 책은 설교묵상보다 더 지독한 깊이를 보여줘 동 출판사에서 나온 설교묵상에 관계된 묵상보다 더함을 보여줘 고개를 흔들게 했었다.
사실 송인규 교수님의 책 중 가장 꼽는 책은 역시 평신도 신학을 다룬 책 두 권이다. ‘정말 쉽고 재미있는 평신도 신학 1, 2’이다―이즈음 약간 관점을 다른 곳에 둔 책 한 권도 더 있다.
제목만큼 쉽지도 재밌다고도 볼 수 없는 책이지만 평신도 신학에 대해 가장 탁월하게 다룬 책이고 우리가 놓치기 쉬운 부분을 잘 다룬 명저라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저자는 ‘한국교회탐구센터’의 세미나를 통해 한국교회의 민감한 중요이슈들을 다룬 세미나집을 통해 그 영역을 넓혀갔다. 그런 저자가 책 자체를 다룬 책을 내놓았기에 더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사실 책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별로 무의미하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책을 읽지만 무언가 회의에 빠지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 자신이 책을 읽게 된 과정과 그 책의 영역을 어떻게 넓혀나가고 더해갔는지를 보여준다. 또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책을 읽어 나가야할지를 보여주는 점도 상당히 인상적이고 도움이 된다. 독서광이고 게다가 기독교인이라면 빠지기 쉬운 책에 대한 편식을 하나님, 사람, 세상과의 관계로 균형 잡히도록 돕기도 한다.
또 하나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표현대로 책집이 형성되어가면서 그 쌓인 책들을 분류해나가는 방법들은 상당히 흥미롭다. 아마도 책분류에서 길을 잃은 이들이라면 하나의 불빛을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방법이 학적인 도움도 받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책을 읽는 이로서의 경험과 개인적 노하우이기 때문에 더 실제적이다. 그리고 이후 저자의 책 추천은 상당히 재미있고 유익하다. 그 책들 추천이 기독교서적이지만 그저 우리들만의 책(?)이 아니라 세상과의 다리를 잇는 책들이 상당수라는 것은 기독교인이 갖기 쉬운 편견과 폐쇄성을 벗어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런데 이 책들 중 적지 않은 책들이 IVP 관련 책들이 많은 것은―그것도 국내에서 출간된 지 오래된―어쩌면 저자 자신이 그 읽음에 균형성을 갖지 못한 모습도 보이는 듯하지만―최근 가장 활발한 모 출판사의 책들이 별로 없는―아마도 지금까지 기독교 세계관 관련도서를 오랫동안 꾸준히 내어온 IVP의 내공에 기한 것이라 할 수 있을 듯싶기도 하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난후 저자가 이 책에 또 다른 분야의 책들까지 소개하고 논하는 추가적 책을 내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책을 읽다가 몇 번씩 책 읽는 것을 중지하고 서점 앱으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찾기를 몇 번씩 하기도 했는데 그중 여러 책들이 검색자체가 안되거나 절판인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 책을 읽으며 커다란 후회를 하게 된 것 중 하나는 이번 이사를 하면서 버린 책들 중 여러 권들이 저자가 언급한 리스트에 속해있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어차피 내가 가지고 있었다면 고인물밖에는 안되었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