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추천도서
담백한 이야기가 건네는 아름다운 일상으로의 초대
담백한 이야기가 건네는 아름다운 일상으로의 초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인상이 아직 짙다. 슬프면서도 가벼운 웃음이 입가에 번지고, 연민을 느끼다가도 문학적 감수성에 탄복하게 하는 글이었다. 과하지 않은 문장으로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 이야기를 고백적으로 들려주던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벅찼던 가을이었던 것 같다(『하나님을 향한 여정』<요단, 이문원 역, 2003>). 그 뒤로 그의 독창적이고도 발랄한 책 『통쾌한 희망사전』(복 있는 사람, 이문원 역, 2005)이 나왔을 때도 얼른 챙겨 즐겁게 읽었다. 그의 이름을 잊은 적이 없고, 필립 얀시의 책에서나 다른 저자들의 책에서 종종 인용되는 그의 저작들이 적지 않았기에, 서점이나 도서관에 갈 때면 그의 다른 책들을 찾곤 했었다. 하지만 아쉬울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얼마 전 별 생각 없이 들른 동네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 무채색의 표지를 입은 그의 책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오래 두고 읽었다. 과장과 힘은 들어가지 않되 분명 오래 보고 자세히 귀 기울여서 얻은 글들이었음에 호흡을 같이 해야 했다. 우리 안의 성소에서 급히 물러나지 않음으로 그가 들은 왕의 속삭임이다. 그럴 때에야 내면의 성소 밖에서도 우리를 둘러싼 그분의 위대하면서도 섬세한 이야기에 눈뜰 수 있음을 그의 글은 보여준다.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글쓰기, 나아가 예술에 대한 통찰과 나눔이다. 하이쿠를 인용하면서 예술이 주목하는 평범한 순간을 재치 있게 예시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에게 멈출 것을 요구하고, 또 멈춰서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게 함으로 일상에 새겨져 있는 신성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 자신의 거룩한 부분, 예술과 사랑이 생겨나오는 근원과 접촉하게 함으로 우리의 인간다움이 깊어지게 하는 예술이야말로 참된 예술이라는 그의 말은 참으로 옳다(52쪽). 따라서 참된 예술은 우리로 사랑하도록 만드는데, 그 예로써 아이들과 추억, 그가 만난 외로운 할머니와 인쇄업자와의 에피소드, 그가 즐겨본 TV 시트콤의 한 장면 등 이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를 둘러싼 사소한 사랑에 눈 뜨는 순간들이 얼마나 눈부시고 황홀한지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2부에서는 특히 우리 자신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서로를 조명하며 공통적으로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그것은 모두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인간이 되는지, 어떻게 불신앙의 세계에서 신앙을 갖게 되는지”, 어떻게 우리 삶이 허락 없이 우리에게 떠맡기는 삶의 무게와 상처들을 “견디고 살아남게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라는 그의 말은 잔잔한 울림이 되어 우리의 귀를 이야기로 잡아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다 같은 이야기를 지닌 것이고, 누구의 이야기든 그 이야기는 내 이야기를 조명해준다”는 그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인다(64-65쪽).
특히 신앙적 의미에서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살아내는 과정에서 불현듯 만나게 되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와 교차하는 지점으로 ‘꿈’을 이야기하는 그의 방식은 대단히 흥미롭고 사랑스럽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꿈은 내게서 나오는 말이지만, 또한 나를 향한 말이기도 합니다”(79쪽).
“이 꿈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실마리는, 충분히 멀리 기억한다는 것, 충분히 깊이 기억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요, 에덴을 기억하는 것,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는 것이고, 기억을 통해서 우리가 모종의 진리,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우리를 치유하는 진리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는 것입니다”(80쪽).
그래서 3부에서는, 앞에서 했던 그 모든 이야기들을 담아 저자가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책(『하나님을 향한 여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잠깐 들려줬으나, 전에는 문학적 산문 가운데 언급한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인 스토리텔링이며 우리말 번역도 그것을 아주 잘 살려냈다. 그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는 어쿠스틱 연주처럼 담백하나 묵직하다. 입에 침을 튀기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데도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점점 가슴이 벅차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들어왔던 그 소리와 이야기들이 그를 데려간 곳에 우리도 도달하게 되는데, 거기서 우리도 그가 그랬던 것처럼 별안간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예수는 자기를 믿는 사람들의 고백과 눈물과 ‘큰 웃음’ 가운데 그들 마음속에서 거듭 왕관을 받으십니다”라는 설교(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솟았다고 하는데(109쪽), 그의 고백은 사실 모양과 정도의 차이이지 우리 모두의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 뒤로도 그는 이제껏 그를 이끌어왔던 어떤 이야기가 계속해서 그를 이끌어가는 여정을 여과없이 들려준다. 이 여정 가운데 그는 현재에 사는 것, 지금을 사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임을 알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지금을 사는 것은 ‘포착하기 어렵게, 암시적으로, 절대 강요하는 일 없이, 나무들처럼 그저 때에 맞춰 미풍에 흔들리는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시는 그분의 속삭임에 경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42쪽). 설령 그것이 선명하지 않아 언뜻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언뜻 보이는 광경이 더욱 많아지기 바라며.
그가 3부의 마지막으로 저녁 뉴스 같은 ‘기도’를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이는 우리의 날들 가운데 특히 ‘기쁨’을 나타내신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 모든 이야기의 적절한 결말이라 할 수 있다. 무거운 짐 같은 우리의 하루하루를, 또 그 날들이 쌓여 오늘까지 이어진 우리 인생을 지탱해주는 거룩한 분이 계시다는 진실을 믿으며, 그 영원하신 팔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 곧 기도일 것이다. 그날의 뉴스처럼 하루를 되짚어보며 오늘 내 삶을 지탱해주었던 그 거룩하고 든든한 팔을 일별하는 것으로서 말이다. 이 거룩한 분께 무거운 우리 삶을 내어드릴 때 임하는 화평과 참된 기쁨으로 충만한 우리 삶의 이야기의 결말을 그는 바랐으리라.
목사이자 작가로서, 과거의 굳고 무른 부분이 만나 빚어낸 삶의 무늬를, 멈춰서 바라보고 귀 기울여서 섬세한 언어로 담아내는 예술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저자의 책들을 기대를 갖고 또 찾아 읽을 수밖에 없다(비아토르에서 『진리를 말하다』, 포이에마에서 『어둠 속의 비밀』이 이미 출간되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의 글을 읽는 이라면, 진실하여 아름다운 이야기에 이끌려 새로운 시선과 뿌듯한 마음으로 더욱 인간다움이 깊어지는 삶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소 짓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