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추천도서
한국초대교회사의 소중한 자료

“나는 한국과 한국인들
그리고 이곳에서의 사역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1891년 10월 27일 일기에서-
로제타 홀이 한국에서 맞이한 둘째 해 기록을 오롯이 담다
한국에서 2대에 걸쳐 77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홀 선교사 가족 중 가장 먼저 한국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세 번째 육필일기를 책으로 엮은 《로제타 홀 일기 3》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로제타가 서울에서 맞은 둘째 해인 1891년 5월 15일부터 1891년 12월 31일까지, 약 7개월 동안의 일들이 담겨 있다. 로제타는 1890년 10월 14일 선교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했고, 이후 선교지의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의료 활동에 진력했다. 미국을 떠나 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내한 첫해 8개월 동안의 행적은 《로제타 홀 일기 1》과 《로제타 홀 일기 2》에 소개되어 있다.
《로제타 홀 일기 3》은 그녀가 어느 정도 한국에 적응한 뒤에 기록한 일기다.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 동료 선교사들 사이의 갈등과 우정, 그리고 자신의 뒤를 따라 한국에 온 약혼자 윌리엄 홀과의 재회가 그려져 있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느끼고 생각한 바가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료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해 가는 로제타 홀
로제타는 당시 조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선교사로서 자신의 사명이 결국 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일기 곳곳에는 그녀가 겪은 다양한 치료 사례가 기록되어 있으며, 열악했던 당시 민중, 특히 여성들의 의료 환경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일기 뒷부분에는 일기에서 기록하지 못한 치료 사례를 별도로 정리해 수록했다.
특기할 만한 내용으로 당시 병조판서였던 민영환의 초청을 받아 만찬에 참석한 1891년 5월 18일 일기를 들 수 있다. 만찬에는 로제타를 비롯해 2대 제중원 원장을 지낸 빈턴 선교사 부부와 1년 전 별세한 헤론 선교사의 부인 헤티 헤론 선교사, 벙커 선교사 부부, 군사고문으로 내한한 윌리엄 다이 장군과 닌스테드 대령 등 당시 조선에 와 있던 고위급 인사들이 초대되었다. 미국 공사였던 알렌 부부도 초청받았지만 선약으로 불참했다고 기록했다.
로제타는 이날 민영환이 준비한 만찬의 규모와 격식이 참석한 이들이 모두 놀랄 정도였다며, ‘surprised party’라고 표현했다. 준비된 음식은 열두 가지 코스였고, 만찬 순서와 음식 질이 미국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였으며, 응대하는 이들의 매너도 최고였다고 적고 있다. 이날 일기는 당시 풍전등화 같았던 나라의 운명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던 민중의 삶과 견주어, 당시 조선 궁정과 고위 양반들의 모습과, 개신교 선교사에 대한 조선 조정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선교사 사이의 갈등과 극복 과정
또 흥미로운 점은 동료 선교사와의 우정과 갈등에 관한 기록이다. 무엇보다 이화학당 책임자였던 로스와일러 선교사와의 갈등이 꽤 깊었다. 의료 선교사와 복음 선교사 사이에서 서로의 일에 대한 견해 차이가 적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해소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미국에서부터 함께 한국에 온 벵겔 선교사, 선교사 사회의 어른으로 활동한 스크랜턴 대부인, 아펜젤러와 윌리엄 스크랜턴 등 선배 선교사와의 관계에 대한 기록도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특징적인 내용은 그녀를 따라 한국에 온 윌리엄 홀과 로제타의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중국으로 파송하기로 결정되어 짐까지 부쳤던 윌리엄 홀이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는 과정은 로제타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극적인 반전이었다. 그것도 그녀의 생일 날, 윌리엄 홀의 한국 파송이 결정된 것이다.
2017년까지 《로제타 홀 일기》 시리즈 완간 예정
《로제타 홀 일기》 시리즈는 로제타 홀이 한국으로 파송된 1890년부터 의료선교사로 함께 헌신한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이 소천한 1894년까지 약 5년 동안의 기록으로, 선교 일기 네 권과 두 자녀(셔우드와 에디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한 육아 일기 두 권으로 되어 있다.
로제타 홀 선교사의 유족(손녀 필리스 홀 킹과 에드워드 킹 부부)은 2015년 4월 이 일기 원본 여섯 권을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부설 양화진기록관에 기증했다. 100여 년 전 한국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의 생각과 당시 한국의 선교 상황을 잘 보여 주는 그 일기에는 그녀가 행한 선교 사역의 구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함께 일했던 선교사들의 모습, 한국 여성들이 서양 의사의 치료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가 된 에스더와의 만남과 의학을 가르치게 되는 과정, 여메리 전도부인의 전통 결혼식 장면, 양반집 부인과 가난한 여인들을 똑같이 치료하는 모습 등이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한편, 일기에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진, 로제타가 구매하거나 사용한 물건과 관련된 영수증이나 카탈로그, 티켓, 주고받은 편지 등을 실물로 첨부하였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일기 내용을 보완하거나 정정하는 메모를 덧붙여 사료적 가치를 높였다.
《로제타 홀 일기》의 특징
*각 권 제1부는 일기 원본 사진 아래에 해당 부분의 우리말 번역을 실었다. 로제타 홀이 필요에 따라 일기 중간 중간에 붙여 둔 스크랩도 일기 원본 사진과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제2부는 로제타 홀이 쓴 일기를 영문 활자화하여 실었다.
*이 같은 편집을 통해 한국을 위해 헌신한 첫 의료선교사 로제타의 의료사역은 물론, 그녀의 인간 됨과 신앙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이해할 수 있다.
저자 로제타 홀
1890년 의료선교사로 내한. 1892년 6월 윌리엄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과 서울에서 결혼했다. 윌리엄이 평양에서 의료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아내 로제타 홀은 여성 전문병원인 서울 보구여관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했다.
윌리엄 홀은 평양에서 청일전쟁의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불철주야 전념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1894년 11월 24일 소천한 뒤 양화진에 안장됐다. 이후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로제타 홀은 189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듬해 유복녀로 태어난 딸 에디스(Edith M. Hall, 1895~1898)를 아버지 곁에 묻어야 했다.
로제타 홀은 평양에서 약 20년 동안 헌신하면서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병원과 여성을 위한 광혜여원을 설립하여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법을 개발하여 광혜여원에서 맹인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고, 1917년부터는 서울 동대문병원에서 일하면서 여자의학원을 설립하여 나중에 경성의학교로 발전시켰다. 이 학교는 훗날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성장했다.
1935년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미국 뉴저지에서 소천한 로제타 홀은 화장되어 남편이 묻힌 양화진에 합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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