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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추천도서
신선하고 난해한 복음 전유법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전도: 세 개의 이야기로 된 세상에서 살기/월터 브루그만/이철민/터치북스/조정의 편집인
월터 브루그만은 미국 컬럼비아 신학교에서 교수와 학장으로 25년간 가르친 잘 알려진 신학자이다.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IVP, 2020),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성서유니온선교회, 2012) 등 많은 서적으로 국내 신자들에게도 잘 알려졌고, 무엇보다 신학을 전공한 목사에게 특별히 성경 신학이라는 분야에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 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구약개론>(CLC, 2014) 그리고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에 이어서 세 번째로 접한 책이 바로 이번에 터치북스에서 출간한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전도>이다. “세 개의 이야기로 된 세상에서 살기”라는 부제가 독자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신선도를 평가하는 로튼 토마토 지수가 있는 것처럼 신앙서적의 신선도를(단지 신선도만) 평가하는 지수가 있다면 이 책은 아마 엄청나게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 복음과 전도를 이런 측면에서 설명하는 책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성경 전체 이야기 구조를 마음껏 활용하며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새롭게 구성하고 전달하는 저자의 논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따라올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특별히 성경 본문에서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삶에 일반적인 원칙으로 적용하는 데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많은 의문을 남긴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성경 본문의 의미를 어떻게 발견하고 활용할 것인지 이렇게 밝힌다: “성경 본문은 ‘본문 사용자,’ 즉 교회와 회당 안의 독자들에게 참여하라고 초대하는 창의적인 현실 모델의 표현이다. 본문은 ‘거기’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고 항상 ‘현재 시제’와 동시대성을 고수하기 때문에, 본문은 계속 살아서 독자들을 초대한다. 따라서 성경 본문은 단순히(단번의 신적 계시나 저명한 인간 저자에 의해) 확정되고 고정되지 않는다. 성경 본문은 공동체에서, 특히 예배를 실천할 때, 또한 다른 여러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반복적인 사용으로 형성되었고, 또한 반복적인 사용을 위해 형성되었다”(8p). 저자는 불트만의 비신화화를 반대하면서도 불트만이 신화로 취급하려고 했던 고대의 내러티브가 실제로 일어난 역사이고 당시에도 분명한 의미를 가졌던 그리고 지금도 분명히 의미를 부여하는 ‘진리’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는 않는다. 바로 여기에서 브루그만이 오늘날 독자에게 복음과 전도를 제시하기 위해 성경 본문을 새로운 맥락에서 사용하고 활용하려는 시도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브루그만이 성경 본문을 통해 점진적으로 드러내신 하나님의 구원 자체를 묵살하거나 그것이 실제적으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구원이라는 것이 세상을 이롭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구제하는, 그래서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사회 복음 모델에 가깝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 전도는 세상과 이웃, 자신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낳고 그 세상에서 다르게 사는 권한 부여를 낳는 변화된 의식의 활동이다. 하나님이 승리하셨다는 소식은 변화된 삶을 의미한다. 즉 그 소식을 듣고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노예를 해방하고, 언약을 맺고, 약속을 지키고, 정의를 명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개인과 공공의 삶을 점차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201p).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문은 때로 거침없이 활용된다.
브루그만이 말한 세 가지 이야기는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 “종살이로부터의 이야기”, “땅의 선물”이다(11p). 그리고 그 이야기가 유대인에게 민족 대대로 전수된 것처럼, 신약의 그리스도인에게 또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에게 각각 그들이 처한 시간과 공간 안에 “수용되고, 전유되고, 재연되기를” 기다리는 소식으로 삼으라고 저자는 권면한다. 그것이 바로 전도이고 그렇게 만드는 내용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이다(9p). 저자가 복음 전도 대상으로 삼은 계층은 외부인, 지친 내부인, 어른으로 성장하는 자녀들이다(15p). 이스라엘 밖의 외부인(이방인), 언약을 힘겹게 붙들고 있던 내부인, 그 안에서 자라나는 언약 백성의 후손들에게 구약 내러티브가 효과적으로 작용했던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복음이 구도자, 성도, 성도의 자녀에게 재구성되고 힘을 발휘하기를 저자는 간절히 바란다. 복음이 실제로 삶의 모든 영역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은 십분 공감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직접 선포하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복음(마 4:17), 사도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고 힘써 외친 복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한 복음이 우리에게 수용되고 전유되고 재연되어야 할 복음이 아닌가? 우리는 브루그만처럼 복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설명해야만 할까?
복음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담고 있어서 사람의 지혜로 다 알 수 없고 사람의 능력으로 다 헤아릴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이 무엇인지 성령의 감동으로 쓰신 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고 충분하게 알려주셨다. 어떤 면에서 브루그만이 강조한 복음의 능력이 발현되어야 할 개인과 사회의 다양한 영역과 그렇게 하기 위해 단순하고 고집스러운 복음 전도 이상의 노력, 재구성하고 새롭게 수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는 것이 복음+전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고전 2:2). 그리스도와 그분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보다 선명하게 제시했다면, 브루그만이 하고자 한 이야기가 더 설득력을 얻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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